고성장에 국내외 투자시장 관심은 여전하지만
몸값 눈높이 차이 커…'핵심 경쟁력'이 관건
"껍데기만 사는 꼴"…꼼꼼히 따지는 투자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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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침체한 국내 M&A(인수합병) 시장에서 K뷰티 업체들의 존재감이 부각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이 여전한 가운데 시장 과열로 눈높이 차이 역시 맞춰지지 않는 분위기다. 뷰티 시장을 향한 투자업계의 긍정적인 시각이 이어지는 것은 맞지만, ‘핵심 경쟁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거래 성사까지는 이어지기 어렵다는 평이다.
23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화장품 브랜드 '라운드랩' 운영사로 알려진 서린컴퍼니는 경영권 매각을 진행 중이다. 앞서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CVC캐피탈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가 협상이 중단됐고, 구다이글로벌이 나섰다가 발을 뺀 바 있다. 매각자 눈높이와 원매자들이 제시한 가격 차이가 큰 것으로 전해지는 가운데 가격 조정이 이뤄진다면 협상이 다시 진행될 여지도 남은 것으로 파악된다.
미용의료기기 제조업체 클래시스의 지분도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다. 솔브레인그룹이 인수를 검토하고 있고, 일부 PEF들도 검토에 나선 것으로 파악된다. 이번 매각 대상은 베인캐피탈이 보유한 클래시스 지분 61.57%다. 베인캐피탈은 2021년 초 해당 지분을 6700억원에 인수했다. 시가총액이 최근 3조3000억원대인 점을 고려하면 매각 대상 지분 가치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해 2조원대가 거론된다.
화장품 및 뷰티 산업은 규모가 비교적 작기 때문에 확장에 한계가 있다는 평이 있다. 다만 단기간에 소위 '대박'을 터트리는 브랜드들이 나오다 보니 시장에도 단골 매물로 출회되고 있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수요도 공급도 많다 보니 K-뷰티 업체 딜들이 여전히 많다"며 "언제까지 지금의 성장이 이어질지 우려도 있지만 어쨌든 이만큼 성장하고 있는 섹터가 드물다 보니 관심을 다들 갖고 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수합병 등의 거래뿐 아니라 투자 거래도 활발하다. 앞서 21일 글랜우드크레딧은 K-뷰티 유통사 실리콘투에 1440억원의 투자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글랜우드크레딧의 블라인드펀드 1호 투자로, 실리콘투는 투자금으로 채무상환 및 해외 물류 네트워크 확장과 시장 점유율 확대에 쓸 계획이다. 실리콘투는 K-뷰티 제품을 자사 플랫폼을 통해 해외에 역직구 판매하고 있는 업체다.
뷰티 산업은 현재 글로벌 투자자들이 국내 산업 중 가장 눈여겨보는 분야기도 하다.
CVC캐피탈은 지난해 10월 '리쥬란'이 대표적인 피부미용 의료기기 전문 업체인 파마리서치에 2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다. 지난달에는 PS얼라이언스·펄인베스트먼트로부터 ‘오렌즈’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콘택트렌즈 전문회사 스타비젼의 지분 49%를 인수했다.
지난해에는 헬스케어 분야에 특화된 프랑스 PEF 아키메드가 9116억원에 미용 의료 기기 제조사인 제이시스메디칼을 인수했다. 지난해 모건스탠리PE도 메디필, 더마메종 등의 화장품 브랜드를 보유한 스킨이데아를 인수했다.
K-뷰티가 ‘고점’이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시장 내 눈높이 차이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기도 하다. 결국 딜 성사를 가를 관건은 해당 브랜드의 '핵심 경쟁력'이라는 평이다.
K-뷰티 산업 성장과 함께 뷰티 브랜드들이 우후죽순 탄생했고, 단기간 내 폭발적인 성장을 한 곳들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다만 대부분의 브랜드가 실제 제조 공장 및 기술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브랜딩에 집중돼 있는 경우가 많다.
대다수의 인디 브랜드들은 화장품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ODM(제조업자개발생산) 강자인 한국콜마와 코스맥스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사실상 각각 인디 브랜드의 차별점은 상품 기획, 판매, 마케팅에 치중돼 있는 셈이다. 국내에서 상품 기획부터 개발, 생산까지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화장품 업체는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등의 대기업 정도다. 2023년 아모레퍼시픽이 코스알엑스를 약 1조원 가량에 인수한 것도 자체 연구개발 능력을 높게 산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외 투자자들도 뷰티 업계 투자에 대한 과거 경험치가 많이 쌓인 상황이기 때문에 ‘잭팟’은 더욱 까다로워질 것이란 관측이다. 로레알의 3CE와 고운세상코스메틱(닥터지) 인수, 에스티로더의 해브앤비(닥터자르트) 인수, IMM PE의 에이블씨엔씨 인수 등이 대표적인 대규모 뷰티 M&A다.
2017년 국내 M&A 시장에서 가장 화제가 된 유니레버의 카버코리아 인수는 인수가가 3조원이 넘어 국내 화장품 업계 M&A 사상 최대 규모로 남아 있다. 유니레버에 인수된 이듬해 카버코리아 매출은 약 6600억원으로 최고조였는데, 이후 하락세를 탔고 그 뒤에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효자 역할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글로벌 화장품 기업 록시땅 그룹은 지난 2012년 국내 중소 한방 화장품 회사인 심비오즈를 인수했다. 심비오즈가 자체 개발한 화장품이 해외에서 인기를 얻자, 록시땅이 인수에 나선 것이다. 현재 해당 브랜드 ‘에르보리앙’이 그룹 내에서도 독보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고 전해진다.
한 글로벌 PEF 관계자는 "K-뷰티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있는 건 맞지만, 결국 '이 회사의 무엇을 인수하는 것인지'를 정확히 답하지 못하면 글로벌 투심위를 통과하기 어렵다"며 "차별점 있는 핵심 경쟁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사실상 '껍데기'를 인수하게 되는 셈이기 때문에 투자 검토 단계에서도 굉장히 꼼꼼하게 따져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