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빅딜 어려운 때 트럼프 2기가 파운드리 놔줄까
美 목표는 첨단 제조업 부활…결국엔 대만 협상카드 평
협상 결과는 미지수…글로벌 반도체 지형 재편 이어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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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매각설을 두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파운드리(비메모리 위탁 생산) 사업은 TSMC가, 설계 사업은 브로드컴이 인수한다는 식인데 역학관계를 따져보면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많다. 인텔을 내세워 미국의 첨단 제조업을 부활시키겠다던 기존 이해관계와도 거리가 있다. 결국 대만과 TSMC를 압박해 인텔을 살리는 데 힘을 보태라는 의도가 아니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은 브로드컴과 TSMC가 인텔을 나눠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TSMC는 부동의 세계 최강 파운드리이고 브로드컴은 팹리스(설계 전문) 영역에서 엔비디아와 퀄컴에 이은 세계 3위 기업이다. 이들이 인텔을 나눠가지는 게 사실이라면 로직과 파운드리 시장 지형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뒤바뀌게 된다. 위기에 빠졌다곤 하나 작년에도 매출액 기준 세계 2위 반도체 회사는 인텔이었다.
업계에선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반응이다. 작년 9월에는 퀄컴이 인텔에 인수 의향을 타진했다는 소식이, 10월에는 팻 겔싱어 전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삼성전자에 파운드리 동맹을 제안했다는 소식이 차례로 전해지기도 했다. 연말 팻 겔싱어가 3년 만에 구원투수 자리를 내놓고 사임한 뒤 오르내린 구조조정 방안도 다양하다. 그간 정황을 감안하면 내부 사정이 그만큼 어렵다는 점을 드러내는 여러 변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일단 세계 수위권 반도체 간의 인수합병(M&A) 자체가 명맥이 끊긴 분위기다. 반도체가 패권 경쟁의 수단이 된 상황에 여간해선 기업결합 장벽을 넘어서기 어려운 탓이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작년 TSMC의 점유율이 65%를 넘겼는데 인텔 파운드리까지 확보하면 70%를 훌쩍 넘겨 반독점 규제에 걸린다"라며 "엔비디아가 ARM을 가져가는 것도 반대하는 마당에 3위권 팹리스가 인텔 중앙처리장치(CPU)를 가져가게 둘까 싶다. 인수 여력이 있는 규모의 반도체 회사들은 무조건 각국 기업결합 승인에서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역을 가리지 않고 "우리(미국) 땅에 공장을 지으라"고 통상 카드를 휘두르는 상황에 인텔 파운드리를 TSMC에 내어줄 가능성도 낮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인텔은 삼성전자에 이어 3위 파운드리로 꼽혀왔으나 내부 물량을 포함한 시장점유율은 2위다. 팹리스나 아날로그 파운드리, 부품·장비 업체만 남은 미국 현지에서 유일한 첨단 반도체 제조사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대(對)중국 견제의 핵심 관계국인 대만에 자국 유일의 선단공정 파운드리를 넘기는 건 정무적 부담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자연히 대만과 TSMC에 협상을 펼치려 인텔을 활용하는 움직임이라는 분석에 시선이 쏠린다.
실제로 TSMC는 미국이 탐낼 만한 전략 자원을 두루 갖춘 협상 상대로 꼽힌다. 인텔의 위기는 '종합반도체기업(IDM) 2.0' 전략의 실패에서 비롯됐는데, 해당 전략은 처음부터 미국 정부 차원의 기획으로 받아들여졌다. 설계는 물론 제조, 생산까지 해내는 자국 기업을 키워내려고 했지만 관련 인력과 노하우도 부족하고 결국엔 자금력까지 말라버린 것이다. TSMC는 이 모두를 확보하고 있는 사실상 유일한 기업이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TSMC가 미국 현지에 선단공정 파운드리를 짓는 것을 넘어서 인텔을 살리는 데 적극 나서주기를 바라는 상황으로 보인다"라며 "TSMC도 본국의 산업용 전기료 인상 문제나 지진으로 인한 정전 우려 등이 불거지고 있어서 압박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양측 협상이 어떤 형태로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인텔이 TSMC와 파운드리 전·후공정에서 합작법인(JV)을 꾸리는 등 방식으로 협력하면 부족한 자본력과 기술력을 단숨에 보완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인텔의 부족한 재무 여력이나 파운드리 인력·양산 노하우를 타국 기업에 전수하기 쉽지 않다는 현실적 한계 등도 함께 거론된다.
어떤 결론이 나건 트럼프 2기 중 글로벌 반도체 산업 지형이 또 한 번 재편될 거란 전망이 나온다. 당장 삼성전자에 미칠 영향을 특정하긴 어려우나,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도 인텔 못지않게 위기를 겪고 있어 완전히 자유롭긴 어려울 거란 평이다.
다른 한 반도체 연구원은 "전임 바이든 행정부 당시 보조금을 내세워 현지에 지어지기 시작한 파운드리의 영향도 아직 드러나기 전"이라며 "외교적 이해관계도 많이 얽혀 있고 새로운 협상 테이블도 이제 막 차려지기 시작한 터라 여러모로 예측이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