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C도 안 팔리는데?"…LP들, 광화문 등 CBD 투자 금지령
입력 2025.03.04 07:00
    취재노트
    공제회 등 주요 LP들, CBD 투자 전면 중단
    年 20만평 신규 공급 예정에 매수심리 '싸늘'
    SFC 매각 실패가 결정타…공사비도 만만찮아
    을지로 개발사업 선행조건 미충족으로 무산되기도
    • 서울 도심 오피스 시장이 위기를 맞고 있다. 주요 기관투자자(LP)들이 광화문·남대문·명동·을지로 일대의 중심업무지구(CBD) 투자를 전면 중단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으면서다. 대규모 공급 물량이 예정된 상황에서 정치적 리스크에 대한 불안감까지 높아지며 투자 심리가 얼어붙었다.

      복수의 투자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행정공제회를 비롯해 국내 주요 공제회, 보험사 등이 최근 CBD 투자를 당분간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여의도(YBD)와 강남(GBD) 권역에 대한 투자는 유지하되, CBD만 골라서 제외하겠다는 것이다. 

      한 부동산 운용사 임원은 "글로벌 블라인드펀드를 비롯해 주요 LP들이 CBD는 이제 아예 안 본다는 입장"이라며 "강남권은 기업들의 사옥 수요가 꾸준하고 클로징도 잘 되지만 CBD는 투심위 통과부터 조달까지 힘겨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투자청(GIC)이 추진했던 서울파이낸스센터(SFC) 매각 무산이 결정타를 날렸다는 평가다. SFC는 서울 중구 태평로에 위치한 연면적 11만9646㎡(3만6192평) 규모의 프라임급 오피스다. 매입한지 20여년 만에 1조원 이상의 가격에 매각을 시도했으나 최근 두 차례 입찰이 모두 실패로 끝났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GIC가 평당 3500만원 이상 입찰가를 제시하는 원매자에게 2차 입찰 기회를 부여하겠다고 제안했음에도 응찰자가 없었다"며 "계엄 이후 상황이 급박해졌고 외국계 투자자들이 소극적으로 변한 상황에서 랜드마크 딜의 실패는 매우 상징적"이라고 설명했다.

      CBD 오피스를 두고 매도자와 매수자 간 가격 기대차도 좁혀지지 않고 있다. 매도자 측은 현재를 고점으로 판단하고 매물을 쏟아내고 있다. 반면 매수자 측은 매년 10만~20만평 규모의 신규 공급이 예정된 상황에서 현재의 매매가격이 과도하다며 관망세를 유지하는 분위기다. 시장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매도자들의 가격 기대치를 굳이 맞춰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종로와 을지로 일대 노후 오피스들의 리노베이션 부담도 매수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청계천 인근의 종로타워(1999년 준공), SFC(2001년), 센터포인트 광화문(2010년) 등이 20년 전후의 연한을 기록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들 빌딩의 경우 매입가에 더해 평당 1000만원 이상의 대규모 리모델링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CBD에는 대형 잠재 매물들이 줄줄이 쌓여있다. SFC 외에도 센터포인트 광화문(코람코자산신탁), 시그니쳐타워(이지스자산운용), 타임워크 명동(이지스자산운용), 광화문 동화면세점빌딩(롯데관광개발 등) 등이 매각을 추진 중이다.

      최근 성사된 매각 사례마저도 수익성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 않다. 대표적으로 두산타워의 경우 마스턴투자운용이 2020년 8000억원에 매입한 후 4년 만에 9000억원대에 한국투자증권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지만, 800억원가량의 부대비용을 감안하면 사실상 원가 수준의 매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간 임대료 상승률이 1.5% 미만으로 낮은데다, 세금 인상분이 임대료 상승분을 상회해 실질적인 수익 개선이 어려웠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형 개발 사업들은 더욱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현재 CBD에서는 세운구역(1조7500억원), 서소문동(1조6150억원), 공평지구(1조2000억원) 등 조 단위 메가 프로젝트들이 진행 중이다. 여기에 서울역 일대에서는 '이오타 서울'(옛 힐튼호텔 부지)과 '서울역 북부역세권 개발사업' 등 초대형 오피스 복합개발도 추진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CBD에 위치한 대형 PF사업들의 자금조달도 난항이 예상된다. 브릿지론 만기 연장엔 성공했지만, 서울역 힐튼호텔 재개발 사업에선 대주단의 불안감도 일부 감지된다. 최근 을지로 일대의 한 개발사업은 선행조건 미충족으로 무산되기도 했다. 여기에 건설원가 상승과 금리 부담으로 인한 사업비 증가는 준공 후 임대료 상승 압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부동산PF업계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악화되면서 대주단 구성이 어려워졌고, 공실 우려가 큰 상황에서 높은 임대료를 책정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