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는 곰이 부렸는데'…퇴직연금 기금화 논의에 긴장하는 증권사들
입력 2025.03.04 07:00
    디폴트옵션 후속 과제는 퇴직연금 기금화
    금융당국·노동부, 지속 논의중…올해 화두
    기금화하면 NPS 운용 주체 가능성 가장 커
    증권사들은 '긴장'…미래證 특히 '예의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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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감독원이 퇴직연금의 수익률 제고를 올해 최우선 과제로 삼으면서, 다양한 방안들이 논의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디폴트 옵션(사전 지정 운용제도) 도입 이후 후속 과제로 떠오른 기금화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퇴직연금 시장을 선도해 온 미래에셋증권 등 증권사들의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과 고용노동부는 퇴직연금 기금화에 대해 지속적으로 협의 중이다. 고용노동부는 현재 기금화 자체에는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이를 국민연금공단이 운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기금화가 현실화되면, 국민연금이 운용 주체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연초 정부가 발표한 '2025년 경제정책방향'에 '공적·민간기관 등이 참여하는 기금형 제도 도입 검토'와 관련한 내용이 언급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설(設)' 정도에 그쳤지만, 이번에는 정부 차원에서 관련 내용을 공식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퇴직연금 담당자는 "퇴직연금 기금화 논의는 올해 내내 업계의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라며 "다만 이 경우 '재주는 곰이 부렸는데 돈은 왕서방이 버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논의 과정에서 증권사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금화가 현실화할 경우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단연 증권사다. 현재 실물이전 제도 도입 이후 사업자들 가운데 가장 가파른 시장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연금이 새로운 사업자로 등장할 가능성이 큰 기금화 논의가 더욱 달가울 리 없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3개월(2024년 10월 31일~2025년 1월 31일) 동안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를 통해 약 2조4000억 원의 적립금이 이전했는데, 이 중 증권사로의 순유입 금액이 4051억원으로 가장 컸다. 반면 은행은 4611억원의 순유출을 기록했다. 사실상 은행의 자금이 대부분 증권사로 이동한 셈이다.

      특히 미래에셋증권은 업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퇴직연금 부문에 공을 들여왔다. 박현주 회장이 퇴직연금을 신성장동력으로 제시하고 2005년부터 사업을 시작해왔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퇴직연금 기금화 논의 역시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2005년 국내 증권사 가운데 최초로 퇴직연금본부를 구성해 시장에 진입했다. 특히 퇴직연금 시장을 일찌감치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박현주 회장의 의중이 컸다는 평가다. 현재까지도 증권사들 가운데 퇴직연금 부서의 규모가 가장 크고, 인력도 가장 많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연금사업 강화를 위해 조직 개편을 단행하기도 했다. 기존의 연금1·2부문을 연금혁신부문과 연금RM1·2·3부문으로 세분화하며 실물이전 제도에 발맞춰 조직을 정비했고, 그 결과 올해 1월 23일 기준 증권업계 최초로 퇴직연금 자산 30조원을 넘어서며 증권사 가운데 퇴직연금 사업자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기금화가 현실화한다면, 상황이 급변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퇴직연금 시장에서 증권사의 수익 모델은 주로 운용 수수료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 선점 경쟁이 한창인 현 상황에서 증권사들은 낮은 수수료로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을 하고 있어 관련 부서의 수익은 크지 않은 상황이다. 미래 성장성을 보고 현재의 손해를 감수하고 있는 셈이다.

      다른 증권사 퇴직연금 관계자는 "퇴직연금 시장은 현재보다는 미래를 보고 여러 증권사들이 뛰어 들고 있는 시장"이라며 "이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새로운 사업자로 등장한다면 다른 증권사들도 타격이 일부 있겠지만, 가장 장시간 많은 돈을 들인 미래에셋증권의 타격이 가장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당국은 국민연금의 시장 진입은 차후 문제이며, 기금화 논의가 우선이란 입장이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일단 눈 앞에 놓인 과제는 퇴직연금 기금화에 대한 것이고, 국민연금을 사업자로 참여시키고 말고의 문제는 그 다음 단계"라며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의 입장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현재 범정부로 구성된 퇴직연금 제도개선 TF에서는 기금화 논의 외에도 현행 70%로 설정된 위험자산 총 투자한도를 100%로 상향하는 안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증권사들은 중개나 운용 수수료 수익 증대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퇴직연금 기금화가 도입될 경우 외부위탁운용관리(OCIO) 사업 등으로 이미 체계를 갖추고 있는 증권사보다, 은행ㆍ보험이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시각도 제시된다. 지난해 말 기준 은행권 퇴직연금 총 적립금은 225조원, 보험사는 97조원이다. 증권사는 지난해 말 기준 104조원으로, 지난해 3분기말 대비 8조원 늘어나 4조원 증가한 보험사 대비 증가폭이 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올 한해는 퇴직연금 사업자들이라면 민감할 수 있는 제도적 변화가 다수 예고돼 있다"라며 "당국과 국회에서 어떻게 논의가 진행되는지 더 유심히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