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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파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주주인 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의 부실한 경영 능력은 물론 투자자와 고객들에 미칠 여파를 고려하지 않는 자본시장 ‘먹튀의 종합선물세트’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1. 기업회생절차 직전까지 CP 판매…동양사태 판박이
지난 2013년, 법정관리를 시작한 ㈜동양과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등이 발행한 1조원대 기업어음(CP) 중 약 4563억원어치가 동양증권을 통해 개인투자자 약 1만5900명에게 판매됐다. 회사채의 경우 개인투자자 3만1000명이 동양증권을 통해 약 1조원어치를 사들였다. 낮은 신용등급으로 기관이 사들이지 못한 회사채와 CP가 고금리를 내세워 개인 투자자들에게 대거 팔렸고, 해당 회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손실을 떠안게 됐다.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개시로 동양 사태의 악령이 10여년만에 다시 불어닥치는 분위기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CP 및 전단채 잔여 물량은 총 1940억원에 달한다. 올해 들어서만 280억원이 발행됐고 회생 절차에 들어가기 직전 주간에도 6개월 만기로 50억원이 발행됐다. 그 주간 홈플러스의 CP 및 전단채 등급은 A3에서 A3-로 떨어졌고 그 다음주 회생절차 개시로 최종 ‘디폴트’를 받았다.
홈플러스의 신용등급을 고려하면 CP 및 전단채 투자자 대부분은 리테일일 것이다. 그렇다보니 일부 증권사 채권영업 부서나 영업점 등에선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에 관한 질문이 쏟아지기도 했다. 홈플러스의 채무 재조정이 불가피한 만큼 손실 가능성도 커졌기 때문일테다. “설마 국내 2위 대형마트가 망하겠어?”라는 생각을 갖고 개인들이 사들였겠지만 그 우려가 현실이 될 수도 있게 됐다.
2. 당근에 쏟아진 홈플러스 상품권…제2의 티메프 우려
유통업계에 따르면 신라면세점과 CJ푸드빌, 에버랜드, CGV 등은 홈플러스 상품권 사용을 막아둔 상태다. 신라호텔, 다이닝브랜즈그룹 등도 이를 검토 중이다. 상황이 악화하게 되면 제휴사들의 이탈 현상은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제휴사들이 상품권을 받지 않기로 한 것은 상품권 사용액을 홈플러스로부터 돌려받지 못하거나, 변제가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 있었던 티메트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티몬과 위메프에서 판매한 상품권과 해피머니가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됐다. 당시 한국소비자원이 역대 최대 규모인 총 1만3537명의 집단분쟁조정 절차에 돌입했지만 신속한 구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지금 중고거래 사이트 ‘당근’에 들어가 홈플러스를 검색하면 다량의 상품권들이 올라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로선 10% 정도 저렴하게 살 수 있는데 상황이 악화하면 대량 투매도 배제할 수 없다.
3. 이렇게 문제될지 몰랐다?...레고랜드 판박이
MBK 입장에선 이 정도로 일이 커질지 몰랐을 수 있다. 본인들이 봤을 때 신용등급이 개선이 됐으면 됐지, 떨어질 이유가 하등 없다고 생각했다. 이에 신평사에서 등급 하향 시그널을 주니 재심사는 요청했지만 추가적인 근거를 제시하진 않았다. 그냥 한 번 더 잘 봐달라는 식이었다. 그런데 등급이 떨어졌고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법원으로 가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니 ‘팩트체크’라는 이름으로 보도자료를 내놨을테고 말이다.
그런데 그 파장은 홈플러스 안에서 끝나지 않고 있다. 이는 마치 레고랜드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2022년 9월,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강원도 레고랜드의 개발을 맡은 강원중도개발공사의 기업회생을 신청하면서 한국의 채권 신용도는 모두 폭락했다.
강원중도개발공사가 발행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은 강원도의 지급보증이 아니었다면 아무도 사지 않았을 채권이었다. 김 지사는 “제가 잘했단 건 아니다”라면서도 “정식으로 대국민 사과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자체가 보증을 서도 디폴트가 날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었다.
홈플러스 사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최대 사모펀드가 대주주이자 국내 대형마트 2위인 홈플러스다. 누가 이 회사가 법원으로 갈줄 알고 CP를 사겠느냐 말이다. 물론 MBK가 투자 책임은 투자자에 있다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MBK 같은 덩치가 큰 PEF가 가진 회사도 언제든 법원으로 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법원으로 가면 그만이라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 나설 자격은 있나
상황이 이렇다보니 김병주 MBK 회장이 사재라도 내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생기고 있다. 본인의 돈이 아닌, 펀드의 돈으로 투자를 한만큼 ‘사재’ 이슈가 말이 안된다고 하더라도 한국 최고의 거부로서 책임감은 가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MBK의 경영 능력에 대한 의구심도 한층 더 키웠다. 투자자 유치를 잘 한다는 것, 그리고 투자를 잘한다는 것까지는 인정하더라도 기업 경영 능력 측면에서 MBK가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는 게 이번 홈플러스 사태에서 재확인됐다는 평이다.
타이밍도 좋지 않다. 고려아연과 MBK의 경영권 분쟁은 끝날 기미가 안보인다. MBK가 이 싸움에 들어가면서 내건 명분은 “고려아연의 수익 악화는 최윤범 회장 탓”이라는 거였다. 그런데 6년 동안 신용등급이 A2에서 D로 떨어진 홈플러스의 상황을 보면 MBK의 경영 능력을 의심할 만 하다. 유통업계 전반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홈플러스만큼 극적인 추락은 거의 없다. 과연 MBK가 고려아연을 인수할 자격은 있을까.
투자시장에서도 MBK에 대한 의구심이 한층 커진 와중에 터진 홈플러스 사태다. 국민연금을 위시한 LP들이 이제는 이름값, 덩치만 보고 투자하는 사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는 그 주역이 MBK가 됐다.
입력 2025.03.07 07:00
Invest Column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3월 06일 11:13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