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부터 찾아간 MBK에 부글부글…메리츠, 홈플러스 2라운드 준비
입력 2025.03.07 16:24
    금융권 단체로 등돌린 리파이낸싱 해줬다가 법정관리 한복판에
    메리츠, "정해진 것 없다"지만 자문기관 접촉하며 준비태세 돌입
    MBK, 메리츠 한곳으로 채권단 좁혀 법정행 택한 것이냐 의혹도
    경영실패 책임은 결국 MBK에…의도대로 끌려가지 않겠단 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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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며 메리츠 내부에서 부글부글 끓는 기류가 전해진다. 시중 금융사 모두 홈플러스를 외면할 때 1조3000억원 규모 위험한 대출을 받아줬더니 메리츠만 기업회생에 끌려들어 간 모양새가 됐다. MBK파트너스 의도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메리츠도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6일 MBK파트너스(이하 MBK)는 메리츠금융(이하 메리츠)을 찾아가 홈플러스 대출 문제를 처음 논의했다. 4일 오전 법원에 홈플러스 기업회생을 신청하고 이틀이 지난 시점이다. 이전까지 메리츠는 MBK로부터 홈플러스 문제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공유 받지 못했던 상황으로 확인된다. 

      메리츠가 홈플러스에 대한 대출금을 언제까지, 어떤 식으로 회수하려 들 것이라는 여러 추정이 나오지만 현 상황에선 회사가 전면 부인하고 있다. 현실적으로도 이제 막 사태가 벌어진 터라 추가적인 대응 방안을 구체화하긴 이른 시점이다. MBK가 자구안을 내놓지도 않았는데 메리츠가 우산을 빼앗는 식으로 주목을 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 

      메리츠 관계자는 "공식적으로는 홈플러스에 대한 담보채권(신탁)을 보유하고 있어 자금회수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고, 추가적인 조치에 대해선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메리츠도 이대로 MBK에 끌려다니지는 않겠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미 자체적으로 법무법인과 회계법인을 접촉하면서 자문을 구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메리츠로선 당연한 수순이다. 앞서 MBK는 홈플러스 단기 신용등급이 강등되면서 대금 지급이 어려워지기 전 선제적으로 법원을 찾았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작년 메리츠가 홈플러스에 제공한 리파이낸싱(재융자)의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이 같은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많다. 

      작년 홈플러스의 리파이낸싱은 메리츠가 아니면 소화가 불가능한 거래였다. 은행과 증권을 가리지 않고 10여년 동안 홈플러스 인수금융에 시달린 금융사들이 모두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10%대 고금리에 남은 부동산을 모두 담보로 잡았다는 건 바꿔 말해 메리츠가 그만큼 위험한 대출을 받아줬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MBK가 홈플러스를 법원으로 보내면서 메리츠만 말려들어간 모양새가 됐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지난 수년 홈플러스 리파이낸싱 문제는 인수금융으로 쳐주기도 어려운, 다들 난색을 표하는 딜로 통했다. MBK가 '갑'이니 주선기관 모두 울며 겨자 먹기로 맡고 있었을 뿐"이라며 "결국 막판에는 은행, 증권사 모두 발을 뺄 수밖에 없었고, 메리츠가 다른 금융사보다 지독한 조건을 내걸긴 했으나 그 덕에 홈플러스가 잠시 수명을 연장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기존 주선사·대주단 등 금융사 대부분은 법정관리 직전에 홈플러스에서 벗어났고 메리츠는 홀로 이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현재 홈플러스의 위험노출액은 약 1조4000억원으로 추정되는데, 거의 대부분이 작년 리파이낸싱을 도와준 메리츠증권·메리츠화재·메리츠캐피탈 몫이다. 

      기존 인수금융에 참여했던 한 실무자는 "메리츠도 설마 MBK가 홈플러스를 법원에 맡길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돈을 빌린 입장에선 갚아야 하는 상대를 하나로 줄이고 법원에 맡겨버리면 협상이 수월해지겠지만 반대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회수 여부를 떠나서 괘씸죄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도 MBK가 메리츠증권으로부터 이자를 깎는 등 더 유리한 대출 조건을 끌어내기 위해 전략적으로 법원행을 택했다는 분석을 쏟아내고 있다. 회생절차에 들어간 이상 메리츠는 좋건 싫건 핵심 채권단으로서 회생계획에 참여해야 하는데, 고통 분담을 요구받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홈플러스가 상거래 채권(납품 대급) 지급을 재개하고 노동자 권익을 지키겠다는 등 메시지를 내놓는 것도 메리츠를 향한 은근한 압박 아니냐는 관전평이 나온다. 

      메리츠가 대응책 마련에 들어간 이상 MBK의 의도대로 흘러갈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메리츠의 고금리 대출이 홈플러스 회생에 가장 큰 부담이라고 하더라도 경영 실패에 대한 최종 책임은 결국 MBK에 있기 때문이다. 회사를 잘못 운영한 MBK가 가장 먼저 자구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면 메리츠는 물론 채권단 대부분이 회생계획에 동의해 주기 어려울 거란 얘기다. 

      출자시장 한 관계자는 "메리츠도 아직 뚜렷한 방안은 찾지 못했지만 MBK 의도대로 끌려가지 않겠다는 방향은 확정한 것으로 전해진다"라며 "메리츠의 기존 스타일도 있고, 작년부터 시중은행, 증권사 중에서도 이미 MBK와 대놓고 대립하게 된 금융사들이 많아서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