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법원서 열리는 M&A 큰장…지금, 누가 건설사를 인수할까
입력 2025.03.10 07:00
    취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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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2015년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의 단골손님은 건설사들이었다. 동부건설, 경남기업, 삼부토건, 극동건설, 쌍용건설, 남광토건, 벽산건설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네임드 건설사'들의 CEO들은 매일같이 파산부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판사들에겐 일감이 쏟아졌다. 한 기업당 사람 키보다 높은 서류 뭉치가 수십 개에 달하는데 주심판사 1명당 적게는 7~8곳의 기업 사건을 담당했다. 야근과 주말 출근은 당연시됐고, 과도한 업무에 못이겨 병원에 실려가는 판사들이 늘어났다. 결국 서울지법은 2017년 파산부를 독립시켜 서울회생법원을 설립했다.

      당시 회생절차에 들어갔던 건설사들 상당수는 새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쌍용건설, 동부건설 그리고 최근에 다시 법원을 찾은 삼부토건도 회생에 성공했다. 2018년 때마침 부동산 호황기가 찾아오자 건설사들의 도산은 크게 줄었고 오히려 활발한 개발사업으로 몇 년 간은 승승장구 할 수 있었다.

      2025년 현재, 법원 앞에 또 다시 건설사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신동아건설, 삼부토건, 안강건설 등 시공능력평가 기준 비교적 상위권에 위치한 건설사들이 회생절차를 신청하기 시작했다. 우량 대기업군 건설사들도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에서 또 어떤 건설사들이 도산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기업회생절차의 결론을 내기 위해선 M&A가 필수부가결한 조건이다. 기업의 채무를 대거 탕감해주는 대신, 기업의 주인인 오너와 주주의 주식 가치는 거의 '0'에 수렴해야 한다. 새주인은 깔끔해진 재무제표를 믿고 회사가 가진 라이선스를 획득한다.

      2015년 건설사들의 줄도산과 2025년 건설사들의 위기를 촉발한 게 미분양과 PF위기, 이로 인한 채무 부담이란 점에선 유사하다.

      단 새주인을 찾을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었던 10년전과는 달리, 현재는 건설사들이 M&A를 통해 회생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단 평가가 지배적이다.

      치솟는 원자재 가격의 상승, 특히 건설현장의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인건비는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을 지탱해온 PF(프로젝트파이낸싱) 사업의 수익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됐다. 널뛰는 환율은 해외 일감 확보가 가능한 일부 대형사들엔 호재이지만 회생절차에 돌입한 기업들은 해외 일감을 따내고 또 수행할 능력이 없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부동산 경기가 다시 살아나면 건설사들 역시 활기를 되찾을 것이란 기대감도 크지 않다. 수도권과 지방, 강남과 나머지 지역으로 구분되는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 현상은 대형 건설사와 중소형 건설사의 간극을 더욱 벌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부는 시행사들의 자본 비율을 늘릴 것을 주문했다. 결국 부실 시행사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부지 매입부터 시공, 분양까지 직접 도맡아하는 대형 디벨로퍼 위주로 시장으로 재편되고 있다.

      지방 건설 경기를 살려보겠단 정부의 대책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정부는 지방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고 지방 SOC 사업을 활성화하겠단 대책을 발표했지만 실효성 있는 방편으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2010년 전후엔 금융사들이 직접 나서 1~3차 건설사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며 살릴 곳은 살리고, 정리할 곳은 정리하겠단 노력이 있었다. 정부와 금융권, 그 누구도 앞장서 실질적인 대책을 내지 못하는 현재와 조금 다른 양상이다.

      올들어 단 두 달만에 100곳이 넘는 건설사들이 폐업하거나 업종을 전환했다. 새롭게 건설업에 뛰어들 주체보다 문을 닫는 곳들이 많은 형국이다.

      십수년 전만해도 지방 사업장, 골프장 개발 사업 등 '쌈짓돈'을 마련하겠단 요량으로 건설사를 인수하는 오너들의 사례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턴 중대재해처벌법을 비롯해 건설사 오너들이 짊어져야하는 리스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자칫하면 징역형을 감수해야 하는데 갈수록 수익성도 장담할 수 없는 건설사를 인수할 유인들이 사라지고 있다. 건설업에 매력을 느끼는 젊은 자산가들도 별로 없다.

      과거 파산부에 재직했던 한 부장판사는 '골든타임'을 강조했다. 기업의 회생을 위해선 손을 쓸 수 있을 때, 살릴 수 있을 때 법원의 손을 빌려야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는 기업의 환부를 도려내고 온전한 상태로 새주인을 찾겠단 계획이 유효하고, 어디까지나 회생이 전제다.

      곧 법원 앞에는 건설사 M&A의 큰 장이 선다. 과연 몇이나 새주인을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