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하면 배임?"…상법개정안 도입에 상장 준비중인 대기업들 불안감 커져
입력 2025.03.14 15:24
    자회사 IPO시 모회사 주가 하락땐 배임죄 리스크
    SK·한화·LS 등 상장 준비 중인 대기업 '혼란'
    겸직 임원들 이해상충 우려에 자문사 질의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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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에게까지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상장을 준비 중인 대기업 계열사와 자문사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자회사 상장이 모회사 주가 하락으로 이어질 경우 배임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SK온, LS MnM 등 IPO(기업공개)를 추진 중인 기업들은 상장 전략을 재검토하는 분위기다.

      야당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지난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에는 "이사는 총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조항이 담겨 있다.

      핵심 쟁점은 배임죄 성립 요건이 과거에는 '회사의 손해'였지만, 앞으로는 '주주의 손해'도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자회사 상장으로 인해 모회사 주가가 하락할 경우, 상장을 의결한 이사회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경로가 열리게 된다. 현재로서는 명확한 면책 조항이 없어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다.

      상장은 보통 이사회 의결만으로 진행되지만, 인수합병이나 물적분할 직후 상장의 경우에는 대개 모회사 또는 지배주주의 결정도 필요하다. 이 때문에 결정에 참여한 임원들, 특히 모회사와 자회사에 동시에 재직 중인 겸직 임원들은 배임죄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 자회사 상장이 모회사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경우, 두 회사 모두의 이사로 의사결정에 참여한 임원들은 이해상충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소에 따르면 현재 SK그룹과 한화그룹, LS그룹은 다수 계열사 상장을 준비 중이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온과 SK엔무브는 내년 이후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SK에코플랜트도 상장 기한이 다가오고 있다.

      한화그룹은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한화에너지의 상장을 계획하고 있다. 한화에너지 측은 부인하고 있지만, 투자자들은 한화에너지 상장 후 ㈜한화와 합병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과거 제일모직-삼성물산, SK C&C-SK㈜ 합병 사례처럼 지주사 주가가 낮아질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LS그룹의 경우 KOC전기, LS MnM, LS이브이코리아, 에식스솔루션즈, LS이링크 등 여러 계열사가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LS그룹은 사촌 간 지배구조를 가진 특성상 배임죄 논란에 더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구자은 LS그룹 회장이 "중복상장이 문제라면 상장 후 주식을 사지 않으면 된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것도 당국으로부터 '괘씸죄'가 적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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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 때문에 대기업들은 최근 주관사에 "LG에너지솔루션처럼 물적분할을 통한 상장이 아니어도 배임죄가 성립되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등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질문 세례를 받는 로펌, 증권사들도 혼란스럽다는 분위기다. 아직 판례가 형성되지 않은 데다 '손해'라는 개념을 단기적 주가 하락으로 한정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가는 다양한 외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자회사 상장만으로 인한 손해를 명확히 산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IPO 전문 변호사는 "중복상장을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기업가치가 상승하고 주주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면 배임 소지는 없다는 입장"이라며 "미시적으로 주가가 하락했다고 해서 회사나 주주 이익이 침해됐다고 볼 수 있는지는 법리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자문사들은 상법개정안으로 인해 일감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대기업들이 늘면서 IPO 대신 공모 교환사채(EB) 발행이나 유상증자 같은 우회적 자금조달 방식을 검토하게 되면, 이는 상대적으로 수수료가 낮은 거래로 이어진다. 무작정 '중복상장' 논란으로 이어지게 되면 결국 자본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이복현 금감원장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상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경우 "직을 걸고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