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 리파이낸싱하러 제2금융권 찾아가니…"홈플러스 방지 각서 써라"
입력 2025.03.17 07:00
    홈플러스 사태 여파에 은행·증권사 기피 심화
    메리츠 갈등 속 캐피탈사는 '방지 각서' 요구까지
    네파 등 만기 임박한 리파이낸싱 곳곳 난항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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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인 MBK파트너스(이하 MBK)가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홈플러스 사태의 후폭풍으로 펀드 청산 및 포트폴리오 기업들의 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고 있다. 자금 시장이 일제히 MBK와의 거래를 기피하는 가운데, 이례적으로 '기업회생 금지 각서'를 요구하는 등 국내 금융권에서 MBK의 불신이 커지는 모양새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MBK는 최근 포트폴리오 기업들의 리파이낸싱(재융자)을 위해 캐피탈사 등 제2금융권을 집중적으로 접촉하고 있다. 홈플러스 법정관리 여파로 전통적인 인수금융 시장인 은행권과 증권가가 등을 돌리며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자, 기존에는 거의 접촉하지 않았던 여러 금융사들을 찾아 나서는 모습이다.

      투자업계에선 사모펀드 자금조달 시장의 '갑을관계'가 역전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과거에는 MBK 같은 대형 운용사가 자금 주선사를 선택하는 위치였다면, 이제는 MBK가 여러 금융기관의 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MBK는 지난 2023년 메디트 인수금융 주선 과정에서 삼성증권에 네파 리파이낸싱 관련 협조를 요청한 바 있다. 당시 삼성증권은 네파 리파이낸싱을 직접 제공하지는 않았으나, 네파 매출채권 유동화를 맡은 것을 계기로 메디트를 비롯한 MBK의 여러 투자건에서 인수금융 주선 자격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당시 자금 시장에서 MBK의 협상력을 보여주는 사례지만, 현재는 2년만에 대조적인 상황이 됐다.

      A증권사 기업금융부 관계자는 "현재 홈플러스 회생건 때문에 은행이나 주요 증권사들은 MBK와의 거래를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협력업체 지원에 나선 은행권이나 홈플러스 건으로 감정이 나빠진 메리츠와의 거래는 당분간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MBK는 홈플러스의 법정관리 신청 과정에서 주요 채권자였던 메리츠금융그룹과의 소통 부재가 도마 위에 올랐다. MBK는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한 이후에야 메리츠에 이 사실을 알렸고, 메리츠는 자체적으로 법무법인과 회계법인을 접촉하며 대응책 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이로 인해 최근 MBK가 접촉한 금융기관들은 파격적인 요구사항을 내걸고 있다. 일부 회사의 경우 '제2의 홈플러스 사태가 없을 것'이라는 내용의 각서를 요구하거나, 인수금융 약정서에 특약까지 넣으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으로 확인됐다. MBK는 이러한 요구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MBK는 홈플러스 외에도 다른 포트폴리오들의 파이낸싱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국내 기관들에 유리한 금리 조건은 물론이고, 제2의 홈플러스 사태가 벌어지면 손해를 배상하라는 각서까지 수용하라는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각서가 법적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MBK를 향한 시장의 불안감이 커졌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B증권사 인수금융 담당자는 "MBK 입장에서는 펀드 운용 행위에 제한을 가져가는 일인 만큼 수용할 수 있는 제안은 아니다"라며 "그만큼 MBK는 급하고, 대주들이 MBK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MBK는 2013년 조성한 3호 블라인드펀드의 청산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펀드에서 남은 대표적인 포트폴리오는 홈플러스 외에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가 있다. 이 외에도 블라인드펀드를 활용해 투자한 몇몇 건들이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는 MBK의 장기 보유 포트폴리오 중 하나다. 2013년 약 1조원에 인수한 네파는 현재 동종업계 K2로부터 9.5%대의 고금리로 대출을 받아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이 대출의 만기는 오는 4월6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홍콩 브로드밴드 네트워크(HKBN)도 MBK의 골치 아픈 포트폴리오 중 하나다. HKBN은 지난 2016년 MBK와 TPG 컨소시엄이 12억2000만달러(한화 약 1조3600억원)에 인수한 워프T&T가 전신이다. MBK와 TPG는 그동안 HKBN 지분 매각을 시도했으나 밸류에이션 불일치로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다.

      그외에도 MBK는 오스템임플란트, 메디트, 넥스플렉스 등 과거 7%대 고금리로 조달한 인수금융의 리파이낸싱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선 금융권 관계자는 "애초에 홈플러스 기업회생 신청도 3호 블라인드펀드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만큼, 3호 펀드를 청산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상황"이라며 "문제는 홈플러스 상황이 네파를 비롯한 다른 포트폴리오 회사들의 자금 조달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