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년간 퇴직자 5명 로펌行…김앤장 등
의결권 행사 로비·소송 관련 대응 등 역할
접촉 금지 규정 신설했지만…실효성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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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도 정기 주주총회(이하 주총) 시즌을 맞아, 어김없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에 시선이 모인다.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은 상장사의 주총 안건 통과에 있어 '캐스팅보트'를 쥔 경우가 많은 까닭이다.
국민연금 의결권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퇴직자들의 로펌행을 둘러싼 이해상충 논란도 다시금 재점화되고 있다. 로펌들이 퇴직자를 앞세워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개입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은 최근 내부통제규정을 신설했지만, 실효성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2022년부터 최근 3년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퇴직자들 가운데 5명이 로펌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3명으로 가장 많았고, 법무법인 율촌과 지평이 각 1명씩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밖에도 상당수의 퇴직자들이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 국민연금 거래 기관들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주총에서 국민연금의 역할론이 커지면서, 최근 로펌들의 국민연금 퇴직자들에 대한 '러브콜'이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현재 김앤장에는 정재영 전 해외채권실장과 박성태 전 전략부문장, 최성제 전 수탁자책임실장 등이 재직하고 있다. 이들 전직 고위 운용역들은 모두 국민연금에서 수탁자책임 관련 업무를 담당한 바 있다.
로펌들은 수탁자책임 업무를 담당한 국민연금 인력들을 영입함으로써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성을 예견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들의 역할이 단순한 자문에만 그친다고 보지 않는다. 로펌의 고객 상장사들에 유리한 의결권 행사를 요청하는 '로비'가 이루어지다는 설명이다.
단순히 의결권 행사와 관련한 로비뿐만 아니라, 향후 주총 의결 결과에 대한 소송 관련 대응에 있어서도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직 국민연금 운용역 출신 한 관계자는 "보통 의결권 행사 과정에서의 로비 정도만 생각하는데, 그 이후의 많은 과정에서 퇴직자들이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라며 "주총 의결 결과에 따라 소송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이 과정에서 로펌에 있는 퇴직자들의 '말빨'이 잘 먹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이러한 논란을 방지하기 위한 규정을 신설했다. 구체적으로 기금운용 내부통제규정 시행규칙 제16조 이해충돌 회피의무에 퇴직자 사적 접촉 금지라는 제16조의2를 신설했다. 해당 규정에 따르면, 기금본부 전략부문장 및 수탁자책임실 직원은 퇴직자와 국민연금이 투자한 회사의 주총 소집 공고일로부터 주총일까지 사적으로 접촉하는 것이 금지된다.
이해상충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되지만, 이러한 규정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를 두고는 평가가 엇갈린다. 퇴직자와의 접촉을 금지하는 규정이 생겼다는 것이 가지는 상징성과 그동안 빈번했던 로비 활동을 일부 억제할 수 있을 것이란 평가가 있는 반면, 현실적으로 사적인 접촉은 적발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국내 기관투자가 한 관계자는 "사적인 접촉을 적발하려면 사실상 '사찰'을 해야한다는 이야기인데,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지는 잘 모르겠다"라며 "접촉 금지 기간도 주총 소집 공고일부터 주총 당일까지로 제한돼있어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충분히 가능할 걸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올해 1월 기준 국민연금은 국내 268개 기업의 지분 5%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주요 주주다. 특히 올해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주목도가 더 크다. 원종현 수책위원장이 그동안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의결권 행사 방향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원 위원장은 과거 경영상 문제가 있거나 공정위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기업 등을 대상으로 주주 대표소송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던 인사라는 평가다.
국민연금이 주주로 있는 상장사의 주총 안건 대부분은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회에서 결정하지만, 일부 사회적 논란이 되는 기업들은 수책위에서 결정한다. 수책위는 국민연금의 지분율이 1% 이상 또는 보유 비중이 0.5% 이상인 경우, 수책위 전문위원 3명이 요청하면 안건을 논의할 수 있다. 고려아연과 한미약품 등의 경영권 분쟁에 있어서도 수책위에서 의사결정을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