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사태의 교훈]③
"이러다 심판의 날 온다"…기업회생 사태 전부터 새 나온 불안감
펀드 실력 검증보다 빠른 펀드 대형화…수년새 빅딜 쏟아졌는데
투자 직후 잡음 불거진 사례 늘면서 결국 LP까지 확산한 불안감
GP 단기수익 누려도 LP 최종 성적표는 깜깜이…이해관계 불일치
홈플러스 사태 이후에도 줄줄이 예정된 그간 성적표 확인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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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K파트너스 내부 인력들 사이에서 '이제 곧 심판의 날이 올 것'이라고 푸념하는 걸 들었다. 덮어놓고 펀딩하고 레버리지를 일으켜 비싸게 지르고, 또다시 더 크게 펀딩에 나서는 패턴에 언젠가 끝이 보이지 않겠느냐는 투였다. (그들도) 일찌감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따로 떼서 매각하는 불가능할 거라고 보고 있더라"
1년 전 한 외국계 투자은행(IB) 관계자가 전해준 MBK 내부 분위기다. 당시 MBK는 2조원 규모 지오영 인수와 1조3000억원 홈플러스 리파이낸싱(재융자) 작업을 앞두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사상 최대 규모라는 6호 블라인드 펀딩이 한창이던 때다. 7조원 들여 인수한 최대 포트폴리오 기업이 금융사 외면 속에 메리츠금융 문을 두드리고 있을 때에도 조 단위 자금을 쏟아붓고 또 새로 모집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내부에서 겁에 질린 소리가 나온 이유가 뭘까
비단 홈플러스만을 두고 나온 걱정으로 보기 어려웠다. 10년 전 투자한 기업의 회수도 불투명한데 비슷한 행보를 되풀이하는 듯하니 결국 내부 직원들 걱정까지 밖으로 새 나온 것으로 비쳤다. 실제로 MBK는 지난 수년 6호 블라인드 펀드 조성을 전후해 가장 많은 조 단위 투자를 치러왔다. 대형사 모두 자금 소진 압박을 받고 있었다고는 해도 유독 MBK에 대해서 '돈을 써야 해서 지른 거래'라는 평가가 뒤따르는 듯했다.
이런 평가를 가장 먼저 접하게 된 건 2022년 연말이었다. 당시 구강스캐너 기업 메디트 인수 우선협상대상자가 칼라일-GS그룹 컨소시엄에서 돌연 MBK로 바뀌었다. 일찌감치 과감한 조건을 제시했던 칼라일이 본사 차원에서 실적 하락을 문제 삼자 MBK가 틈을 파고들어 거래를 성사시켰다. MBK는 9000억원의 인수금융을 일으커 2조4250억원에 메디트를 인수했다.
이듬해 MBK는 유니슨캐피탈코리아(UCK)와 손을 잡고 2조5000억원을 들여 오스템임플란트까지 인수했다. 직후 2호 스페셜시추에이션(SS) 펀드도 컨소시엄을 꾸려 SK온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 IPO)에 1조5000억원을 투입했다. 시중금리가 치솟으면서 너도 나도 돌다리를 다시 두드려보던 분위기였던 터라 단연 돋보이는 행보였다. 덕분에 시장에 활기가 돈다고 반기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의문이 여기저기서 오르내렸다.
당시 은행권 한 관계자는 "인수금융 금리가 7%대로 튀어 오르면서 일감이 뚝 끊길 판에 MBK가 조 단위 거래를 몰아쳐준 덕에 숨통을 튼 면도 있었다. 그러나 갈수록 성급하게 빅딜을 치른다는 말이 많았다"라며 "국내 주선기관 대부분은 MBK의 출자자(LP)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다음 펀딩을 위해 드라이파우더(미소진자금)를 서둘러 털어내는 작업으로 비치니 저래도 되나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PE 한 관계자는 "LP 입장에선 운용사(GP)들이 쌓아둔 돈을 묵히지 않고 계속해서 투자처를 발굴하고 자금을 쓰는 것도 역량으로 평가하는 게 맞는다"라며 "그러나 딜 플로가 꾸준하고 좋다는 거랑 투자를 잘했다는 거랑은 별개다. 아무리 좋은 자산도 진입 가격이 높고, 사업에 대한 이해도나 운용 역량이 떨어지면 투자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올라간다"라고 설명했다.
펀드 대형화에 비례해서 늘어나는 투자 직후 사고 소식
실제로 메디트의 경우 1년도 채 못 가서 너무 비싸게 샀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오스템임플란트까지 합쳐 구강 전문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는 기대와는 달리 진짜 인수 첫해부터 실적이 급락했다. 금융권에선 바로 인수금융 재무약정(커버넌트) 위반 우려가 고개를 들었다. 거래를 놓친 측이 뒤늦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였다.
자문을 담당한 실무자는 "메디트의 당해 3분기까지 성적을 기반으로 거래를 진행하던 와중 10월 실적 하락 소식이 나오면서 제동이 걸렸는데, 하필 이때 MBK가 계약을 채간 것"이라며 "아쉬움이 컸는데 얼마 못 가 천운이 따랐다는 상반된 평가가 나왔다. LP들에게서도 메디트와 오스템임플란트 인수 직후 이런 잡음이 불거지는 걸 두고 불편한 심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라고 말했다.
같은 시기 SK온은 1년 만에 유동성이 말라 또 새로운 투자자를 물색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룹이 대대적으로 계열 간 합병 작업까지 거쳤지만 상장을 통한 회수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교보생명에 이어 11번가 사태까지 모회사가 약속한 보장수익률이 분쟁의 불씨로 돌아오는 사례도 늘고 있다. 그러니 인수금융 차입을 일으키기엔 수익성이 너무 낮다는 얘기가 나왔던 2조원대 지오영 M&A에 대해서도 불안하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시중은행 다른 한 관계자는 "은행들이 출자를 꺼려 하기 시작한 게 단순히 IFRS17이나 위험가중자산(RWA) 관리 때문만은 아니다. 목록별로 대조해 보니 GP들에 출자한 자산 수익성이 가장 불확실했다. 조 단위 포트폴리오 중 나아진 게 안 보인다"라며 "바이아웃 펀드의 비싼 수수료나 캐피탈콜 매칭 문제 등을 감안하면 15% 이상 IRR을 기록해 줘야 타산이 맞는데 덩치를 키우고 운용보수를 챙기고 내부 인력들의 자리를 마련해 주는 데만 급급한 것처럼 보이니 갈수록 투자할 필요를 못 느끼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별 성과 없이 끝난 한국앤컴퍼니 인수 시도에 이어서 고려아연에 대한 공개매수 방식 경영권 인수마저 난관에 봉착하자 이 같은 시각은 출자시장 전반으로 확산했다.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겨냥한 운용 전략을 높게 평가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았으나, 실패로 돌아가면 고스란히 MBK에 대한 평판 문제로 돌아갈 것이란 얘기였다. 한번 재벌 대기업과 척을 지고 난 다음에는 후배 세대들의 부담만 커지지 않겠냐는 불만도 오르내렸다.
출자시장 한 관계자는 "재벌들의 고질적인 거버넌스 문제를 개선해서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역할이 필요한 것은 맞는데 LP 입장에선 예상 수익 대비 리스크만 너무 높은 딜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라며 "결국 공개매수 가격이 치솟으면서 도대체 누구에게 어떻게 팔 것이냐는 물음만 남았다. 앞으로 국내 대기업 중에 PE 손을 거친 조 단위 기업을 인수할 곳이 얼마나 있겠냐는 것"이라고 전했다.
MBK는 누구를 위해서 쉬지 않고 달려왔던 걸까
이달 홈플러스가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수면 아래 깔려 있던 이런저런 걱정들이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사모펀드가 수조원을 들여서 인수한 자산을 제때 처분할 수도 없게 된다면 얼마나 큰 혼란이 벌어지는지가 드러나면서다.
회계법인 한 관계자는 "인수 이후 기업회생까지 10년이라는 시차가 있었다. 실제 회수 성과를 검증하기도 전에 계속해서 빅딜이 쏟아진 상황을 다시 짚어봐야 한다"라며 "투자 구조를 잘만 짜면 청산하기도 전에 GP의 실제 실력과 동떨어진, 이론상 매력적인 IRR 추정치를 만들 수 있다. 홈플러스 법정관리를 보고 난 뒤에도 LP들이 이런 수치를 믿어줄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GP들의 운용자산(AUM)과 수수료 수익 증대 같은 단기 성과와 LP의 장기 이익이 불일치할 수 있다는 게 홈플러스로 증명됐다는 시각도 있다. 이 기간 MBK는 2~3년마다 새 펀드를 결성해왔다. 뒤로 갈수록 펀드 규모는 물론 포트폴리오 기업의 평균적인 덩치도 커졌다. 동북아 최대 펀드를 키워낸 MBK 1세대 역시 재벌에 버금가는 대부호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이들이 화려하게 M&A를 치를 수 있게 자금원천과 보수까지 두둑이 지불한 LP들은 법정관리라는 결과물을 마주했다. 10년 만에 진짜 성적표를 받아보는가 했더니 법원 처분이나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홈플러스 인수에 활용된 3호 블라인드 펀드가 이제 막 청산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이런 사례가 누적적, 비례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1년 전 내부에서 새 나온 목소리는 결국 지난 15년 MBK 행보의 후폭풍이 다가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