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 공매권 있는 메리츠금융 안정권
공익채권 외 리스·금융부채는 후순위
김병주 사재 출연해 소상공인 지원
법원 판단에 개인투자자 회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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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홈플러스의 채권이 어떻게 분류될지 채권자들은 얼마나 자금을 상환받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신탁 담보채권을 갖고 있는 메리츠금융그룹이 최우선권을 가진 가운데 나머지 금융 채권자와 리스 채권자, 상거래 채권자 등은 사실상 동순위에서 빚잔치를 벌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일부 상거래 채권은 보다 우선적으로 변제를 받을 수도 있다.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소상공인 거래처'에 재정 지원을 하겠다 했는데 이는 회생계획안 수립 과정에 반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이 불완전판매 논란이 불거진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 채무를 어떻게 분류하느냐에 따라 변제율도 달라질 전망이다.
지난 18일 서울회생법원은 홈플러스의 채권자 목록 제출 기한을 4월 1일에서 4월 10일로 연장했다. 조사보고서는 5월 22일, 회생계획안은 6월 12일까지 제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채권 규모와 홈플러스 측의 채무 변제 계획이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회생절차에서 채권은 크게 공익채권, 회생담보권, 회생채권으로 나뉜다. 공익채권은 조세, 임금·퇴직금, 일부 상거래채권 등으로 회생채권과 회생담보권에 우선한다. 회생절차에 의하지 않고 수시로 변제하며 강제집행이나 추심도 가능하다. 회생담보권은 채무자에 대해 담보물권이나 법적 우선권을 갖는 채권으로 금융사가 이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반 회생채권은 가장 권리가 약하다.
현재 홈플러스 관련 부채는 크게 금융채무와 상거래채무로 나뉜다. 금융채무는 메리츠금융그룹 등에서 빌린 1조2000억원, 기업어음(CP)과 ABSTB, 리스부채 등이 있다. 나머지는 상거래·기타 채무다. 이런 부채가 어떤 채권으로 인정받느냐에 따라 변제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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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가장 상환 안정성이 큰 곳은 메리츠금융그룹의 채권이다. 현재 홈플러스의 모든 부동산은 신탁에 담보로 제공돼 있고, 메리츠금융은 이 신탁에 대한 1순위 수익권을 갖고 있다. 분류상으론 일반 회생채권이지만 사실상의 자산 처분권을 갖고 있다. 판례는 담보신탁의 수익권은 회생절차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원칙(도산절연)을 인정한다. 메리츠금융도 자금 회수 자신감을 보였다.
그 다음은 조세, 임금, 그리고 회생절차 개시 신청 전 20일 이내에 발생한 상거래채권 등 공익채권이다. 홈플러스는 14일 기자간담회에서 상거래채권 중 3400억원을 상환했다고 밝혔는데, 상당 부분이 공익채권에 해당하는 상거래채권일 것으로 예상된다. 홈플러스와 MBK파트너스는 상거래채무 전액을 변제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것은 리스부채다. MBK파트너스는 2015년 홈플러스를 7조2000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인수금융 2조7000억원을 일으켰고, 회사의 기존 차입금 1조3000억원도 떠안았다. 이후 MBK파트너스가 매각후재임차(Sales & Lease Back) 전략을 펴며 차입금 상당 부분이 리스부채 형태로 바뀌었다.
통상 매각후재임차 계약에는 워크아웃, 회생절차 등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발생할 경우 잔여 차임을 일괄지급하는 조항(make whole payment)이 포함돼 있다. 홈플러스 측이 임대차계약을 해지하면 앞으로 남은 계약동안 내야할 임차료 전체가 회생채권으로 오른다는 것이다.
홈플러스 입장에선 다른 임차인을 구할 수도 있는데 미래 차임 전액을 내는 것은 부당하다는 점을 피력할 수도 있지만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과거 STX팬오션(현 팬오션) 회생절차 때도 선주나 특수목적회사(SPC)들은 잔여 선박임차료 전액을 회생채권으로 신고한 바 있다.
기업어음이나 사채, 전자단기사채, ABSTB 등도 회생채권으로 분류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중은행의 채권은 회생담보권일 가능성이 있지만 부동산 전부가 신탁 담보로 잡힌 상황에선 큰 의미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치가 거의 사라진 홈플러스 주식이 담보라면 사실상 일반 회생채권보다 우선권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일부 대기업은 홈플러스로부터 담보를 받았을 수도 있다.
결국 공익채권과 메리츠금융 채권 상환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를 제외한 리스부채와 일반 금융채무, 기타 채무 등은 같은 순위에서 자금을 나눠 받아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홈플러스의 부동산 자산은 4조7000억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회생채권자가 전액을 변제받을 가능성은 작아진다. 과도한 채권 감액이나 이자 감면이 포함된 회생계획은 채권자 동의를 얻기 어려울 수 있다.
한 회계법인 구조조정 담당 임원은 "회생절차와 별개로 부동산 자산 공매에 나설 수 있는 메리츠금융이나 일부 공익채권자 외에는 대부분 동순위 회생채권자로서 자금을 나눠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익채권에 포함되지 않은, 즉 회생절차 개시 20일전 이전의 상거래 채권은 상환 순위가 밀린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이 대금을 제때 변제받지 못하면 경영이 휘청할 수밖에 없다. 김병주 회장은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 거래처를 지원하기 위해 사재출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직 출연 규모나 방식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법원이 이를 허가한다면 일반 회생채권자인 소상공인도 보다 앞서 자금을 돌려받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가장 큰 논란거리는 홈플러스가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을 알았는지, 회생절차를 염두에 두고도 증권사를 통해 유동화채권을 팔았는지다. MBK파트너스의 '기획 회생절차' '사기 판매'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이달 초 홈플러스 CP, ABSTB, 단기사채 등 단기채권 판매잔액은 약 6000억원에 이른다. 이중 개인에 팔린 규모는 약 2000억원이고, 일반 법인엔 3300억원이 팔려 나갔다. 일반 회생채권이면 상환 순위가 밀린다. MBK파트너스도 사재 출연금과 이 채권 상환은 거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법원이 ABSTB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순 있다. 이를 상거래채권으로 보거나 계속 영업을 위한 금융 채무로 분류해 조기 변제받도록 하는 식이다. 법원이 기존 판례나 관행을 벗어나긴 어렵지만 이번 사안이 중하고 수많은 개인투자자의 손실 여부가 걸린 만큼 최대한 유연하게 판단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한 도산 전문 변호사는 "사회적으로 주목도가 높은 상황이고 법원도 효율적으로 사안을 처리하고 싶어하는 만큼 최대한 채권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