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늘었지만 금리 경쟁 강도는 여전
産銀 다시 가세하며 금리 인하 가속화
홈플러스 사태로 시장 위축될까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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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금리가 떨어지며 인수금융 주선사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지만 이면엔 조심스러운 분위기도 감지된다. 여러 금융사들이 인수금융 분야에 힘을 실으며 주선 금리 경쟁이 치열해졌고 재매각(셀다운) 부담이 커졌다. 저금리를 앞세운 산업은행이 다시 움직이는 데 대해 경계의 시선도 있다. 홈플러스 기업 회생절차 신청 후 사모펀드(PEF) 차주에 대한 시선이 엄격해진 것 역시 부담이다.
현재 M&A 시장엔 SK에코플랜트의 환경사업, 클래시스, HPSP, 모던하우스 등 조단위 거래가 즐비하다. EQT파트너스의 SK쉴더스, 한앤컴퍼니의 에이치라인해운,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의 서브원 등 금리 인하 목적의 인수금융 차환 거래도 이어지고 있다. 금리 인하기 대형 거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면서 주요 금융사들도 수년간의 부진을 만회할 기회로 보고 고삐를 조이는 모습이다.
시장에 온기가 돌고 있지만 경쟁 강도가 눈에 띄게 낮아지는 상황은 아니다. 위험가중자산(RWA)을 관리해야 하는 시중은행은 투자보다 대출, 그 중에서도 특히 안정성이 높은 인수금융에 힘을 싣고 있다. 정기인사에서 인수금융 전문가들의 승진 행렬이 이어졌다. 메리츠증권, 대신증권 등이 인수금융 분야에 관심을 가지면서 경쟁자들이 늘었다.
금융사들은 대출 조건을 두고 눈치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차주들도 금리 인하기를 십분 활용하려 금융사 조건을 두고 저울질을 한다. 몇몇 금융사가 경쟁하다보면 결국 마진이 많이 남지 않는 선에서 대출 금리가 정해질 때도 있다. 한화그룹의 아워홈 인수금융 금리가 '상징적으로' 4%대로 정해졌는데, 곧 4%대 금리는 흔해질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금융사 입장에선 사실상 미래 금리 할인분까지 당겨와서 주선하는 셈인데 이 경우 셀다운 난이도가 높아진다. 대형 거래는 캐피탈,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자금도 필요하다. 이들의 현재 조달 금리를 감안하면 4%대 자산을 담기 쉽지 않다. 증권사든 시중은행이든 미매각은 부담스럽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조단위 거래는 제2금융권의 도움도 받아야 하는데 현재 시장금리로는 참여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위험을 감안하면 너무 낮은 금리의 거래를 걸러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금리 인하 압박이 커진 가운데 산업은행이 다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도 변수다. 국가신용도를 등에 업은 산업은행은 코로나 이전 시중은행보다 낮은 조달 금리를 활용해 인수금융 시장의 '메기'로 활약했다. 한창 금리가 낮을 때는 2%대 금리를 제시하기도 했다. 경쟁이 되지 않은 금융사들은 국책은행이 민간 영역에서 경쟁하느냐는 볼멘소리를 냈다.
한동안 잠잠하던 산업은행은 작년 하반기부터 여러 거래에서 이름을 드러내고 있다. 효성티앤씨의 효성네오켐 인수 거래에서 시중은행들과 손을 맞췄고, 과거 금리 경쟁에서 승리했던 서브원 인수금융의 차환 거래도 맡았다. 롯데렌탈과 SK렌터카 인수 거래 참여도 거론된다.
기업 구조조정이나 산업 통합 성격도 있지만 국가 정책의 큰 흐름과는 거리가 있는 것들이다. 산업은행이 정책 목적이라는 족쇄 없이 인수금융 영역에 다시 기웃거리며 시장 금리 인하를 가속화시킨다는 지적이다. 산업은행의 행보는 일시적일 뿐 머잖아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라 기대하는 시각도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작년 말부터 분주한 모습인데 여러 물밑 거래에서도 이름이 들리고 있다"며 "주기적으로 인수금융 시장을 흔드는 모습인데 정책금융 특성 상 동력이 오래가지 않았고, 올해 말이면 다시 잠잠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 회생절차를 신청한 것이 M&A 시장과 인수금융 업계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내 주요 기관투자가(LP)나 금융사들은 홈플러스 파장이 커지자 몸을 움츠리는 분위기다. 시끄러운 시기는 피해가자는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이미 MBK파트너스 보유 포트폴리오에 대한 대출 조건이 빡빡해지기 시작했고, 새로운 PEF를 결성하거나 신규 대출을 일으키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 회생절차를 신청한 후 인수금융을 포함한 금융권 내에서 위험 회피 경향이 뚜렷해지는 추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