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마켓은 협력 위한 '입장료' 성격 강해
신세계그룹과 韓풀필먼트 사업 본격 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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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대 이커머스 공룡 알리바바그룹이 한국 풀필먼트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까. 알리바바는 한국에서 퀵커머스부터 역직구 플랫폼까지 아우르는 종합 물류 생태계 구축을 꾀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국내 최대 오프라인 매장망과 물류 시스템을 보유한 이마트를 핵심 파트너로 삼은 것으로 풀이된다. '알리바바 코리아'의 그림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알리바바는 신세계그룹 G마켓(이하 지마켓)과의 합작법인(JV) 설립에 앞서 홈플러스 인수를 적극 검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알리익스프레스 측은 올해 6월 "홈플러스 인수합병 논의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고 공식 부인했지만,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취약한 재무구조와 인력 부담으로 인해 인수를 중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알리바바의 자체 실사 결과 홈플러스는 핵심 자산들을 이미 매각했고, 부채가 자산을 훨씬 웃도는 상황이었다"라며 "전국 수만 명의 정규직 직원들이 있어 인수 후 구조조정도 쉽지 않아 인수를 포기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알리바바는 최근 이마트와 손잡고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이마트는 지마켓 지분을 출자하고, 알리바바는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와 현금을 내놓는 형태로 '그랜드오푸스홀딩스'라는 새 회사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지마켓 지분 일부를 보유하던 영국 이베이KTA는 보유 지분 약 20%를 사모펀드에 매각하며 빠져나갔다. 이에 시장에서는 합작사의 실질적 운영 주도권이 알리바바에 달렸다고 보고 있다.
홈플러스, 지마켓 등 알리바바의 한국기업 투자 기조는 중국 내수시장의 침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 경제가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재고 처리와 새로운 시장 개척이 시급한 상황이다. 최근 한중 관계의 해빙 무드도 알리바바의 한국 진출에 긍정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올해 들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나 한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보인 것도 중요한 신호탄으로 여겨진다.
알리바바가 한국 시장에서 주목하는 것은 '풀필먼트' 사업이다. 풀필먼트란 상품이 고객에게 전달되기까지의 전체 프로세스로, 주문 접수 후 보관·포장·배송·반품 처리까지의 모든 물류 과정을 포함한다. 이는 알리바바가 중국에서 구축한 핵심 경쟁력이기도 하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알리바바는 이마트의 전국 매장 네트워크를 활용한 풀필먼트센터 구축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도심 내 위치한 이마트 매장을 소규모 물류센터(MFC)로 활용, 빠른 배송을 위해 소비자와 가까운 거점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마트는 전국에 160여개의 대형마트와 600여개의 편의점(이마트24)을 보유하고 있어 풀필먼트 네트워크 구축에 이상적인 파트너다. 알리바바는 이 네트워크를 활용해 한국 내 배송 시간을 단축하고, 국내 기업들의 중국 및 글로벌 시장 진출(역직구)도 지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알리바바는 처음부터 지마켓보다 이마트의 물류 인프라와 오프라인 거점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알리바바의 한국 진출은 물류센터 확보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알리바바는 인천과 송도 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물류센터 구축을 검토 중이며, 장기임차와 직접소유 두 가지 방식을 모두 고려하고 있다. 앞서 알리바바그룹은 18만㎡(약 5만4000평) 규모의 풀필먼트센터를 위해 국내에 2억달러(한화 약 2600억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결국 알리바바-신세계의 합작은 알리바바의 한국 시장 진출 전략의 첫 단계로 해석된다. 지마켓은 신세계그룹이 2021년 3조4400억원을 투입해 인수했으나, 실적이 지속적으로 악화됐다. 지마켓의 GMV(거래액)는 2021년 16조원에서 올해 13조원까지 감소했고, 영업적자는 같은 기간 100억원에서 575억원으로 늘었다.
시장에서는 신세계그룹이 지마켓 부담을 덜고, 알리바바는 한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윈-윈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알리바바 내부에서조차 지마켓 자체의 가치보다는 역직구 플랫폼으로서의 잠재력과 이마트와의 협력에 더 큰 의미를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트 입장에서도 지마켓의 실적 부담에서 벗어나고, JV를 통해 지마켓의 기업가치를 3조원대로 인정받아 회계상 손상차손 우려를 덜 수 있었다.
알리바바의 한국 시장 공략은 현재 쿠팡과 네이버가 양분하고 있는 이커머스 시장의 판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의 지난 2월 월간활성이용자(MAU)는 967만명으로 쿠팡(3219만명)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하지만, 풀필먼트 역량 강화와 오프라인 연계 전략을 통해 경쟁력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알리바바의 행보가 단순한 이커머스 플랫폼 확장이 아닌 종합 물류 네트워크 구축에 있다면,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다"며 "미중 무역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중국 기업들이 가까운 한국에 관심을 높이고 있는데, 알리바바처럼 '물량'으로 승부하려는 전략은 파급력이 상당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