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ITDA 2조원, 현금성 자산 3조원, '차입 아닌 이유' 불명확"
신주인수권 가치 4~5만원…주가 60만원 지지 여부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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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국내 증시 사상 최대 규모다. 회사는 글로벌 방산 시장 확대를 위한 선제적 투자라고 설명했지만, 구체적인 자금 사용 계획이 명확히 제시되지 않은 게 증자 흥행의 최대 리스크로 꼽힌다.
당장 연초 이후 불과 11주만에 주가가 120% 폭등했는데, 투자 과열로 제대로 된 '시장 가격'이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가가 지지될 수 있을지가 의문이라는 평가다. 당장 이달 말 공매도 전면 재허용되면, 한화에어로 등 단기 급등 방산주가 공매도 1순위라는 지적이 나오는 판국이다. 삼성SDI와 같은 15%의 할인율은 그리 매력적인 투자 요건이 아니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일 이사회에서 595만500주를 신규 발행하는 유상증자를 의결했다. 증자비율은 13.05%, 주당 발행가는 전일 종가보다 15% 할인한 60만5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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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는 전일 대비 13% 하락한 62만8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 종가는 72만2000원으로, 유상증자 발표 직후 시간외 거래에선 하한가인 65만원까지 급락했다. 금융감독원은 같은 날 해당 건을 중점 심사 대상으로 지정했다. 이번 증자가 기존 발행 주식의 13%에 달하는 규모라는 점에서, 주가 하락 폭이 그에 상응했다는 분석이다.
주가 급락의 배경에는 주주들의 반발 심리가 있다는 평가다. 이미 주가가 단기간 급등한 상태에서 할인율도 크지 않은 유상증자를 발표했고, 자금 사용처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방산 산업 특성상 자금 용도를 세부적으로 공개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역대급 규모의 유상증자라면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전날 진행된 컨퍼런스콜에서도 방산 관련 애널리스트들이 자금 사용처를 집중적으로 질의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생산능력 증설 및 사업장 운영에 1조2000억원, 해외 방산 생산기지 구축 및 조선 관련 JV 투자 등에 2조4000억원을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투자 대상이나 일정은 제시하지 않았다.
최근 한화그룹의 일련의 투자 행보가 주주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모양새라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 불과 일주일 전인 지난 13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화임팩트와 한화에너지가 보유한 한화오션 보통주 7.3%를 1조3000억원에 매입했다. '오너 일가만 배불리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전형'이라는 반발이 치솟고 있는 배경이다.
악화하고 있는 투심 속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 흥행 여부는 결국 '증자 조건'에 달려있을 거란 평가다.
단기 급등한 주가가 증자 발표 후에도 지지받으며 시장의 투자 심리가 악화하지 않았음을 방증한다면 증자 역시 흥행할 가능성이 크다. 당장 현 주가 수준만 유지된다면 15%의 할인율이 최소한 1주당 5~10만원의 차익을 약속하는 까닭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경영 판단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며 급등한 주가가 급락할 가능성도 있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현재 한화에어로의 기술적 지지선인 120일 이동평균선은 42만원대에, 일반적으로 바닥으로 여겨지는 120주 이동평균선은 21만원대에 형성돼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성공적인 유상증자는 결국 소액주주들의 참여율이 관건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최대주주는 ㈜한화(지분율 34%)이며, 2대 주주는 국민연금(7.4%)이다. 1% 미만의 지분을 보유한 소액주주들이 전체의 54.1%를 차지한다. 주가 고점에 대한 부담 및 경영진에 대한 신뢰 이슈로 증자 참여를 주저하는 투자자들도 적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신주인수권증서(워런트) 가치는 약 4만~5만원으로 추산된다. 증자비율 13.05% 기준으로 신주 1주를 받기 위해 기존 주식 7.66주가 필요하고, 현재 주가(63만2000원)와 발행가(60만5000원) 간 차익을 반영한 기대수익은 약 20만원 수준이다. 여기에 워런트 프리미엄이 일반적으로 이론가의 20~25% 수준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수권 1개당 4만~5만원 수준에서 거래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소액주주들이 워런트 매수로 수익을 내려면 주가가 60만원선을 지켜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주가가 60만원을 하회할 경우, 발행가(60만5000원)로 신주를 매수하는 것보다 시장에서 기존 주식을 사는 것이 유리해져 인수권의 경제적 가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최근 주가가 가파르게 오른 만큼, 일정 수준의 조정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증권사 트레이더는 "유상증자 발표 시기와 방법, 규모까지 기존 소액주주들은 '뒷통수를 맞았다'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업황 및 올해 이익 전망이 워낙 밝아 문제가 없을 거라고 판단했을 수는 있지만, 현 시점에서 '반(反) 밸류업 기업'이라고 낙인찍힌다면 실익이 없기 때문에 향후 주주들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할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일 유상증자 컨퍼런스콜에서 "다른 조달 수단을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자본성 조달을 한 이유는 지금 투자를 어느 정도 규모를 유지해야지 현재 시장에서의 지위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 탑 플레이어로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며 "지금 당장 영업현금흐름이 앞으로 2~3년은 괜찮을 수도 있지만, 성장을 추구하기 위해 이런 선택을 했다"고 설명했던 바 있다. 이 설명에 대해 증권가에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