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고 간편' 스팩 매력 사라졌다는 평가
"주관사 의무보유 확대… 스팩 유도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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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상장이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금융당국의 심사 강화와 합병 가치 산정의 난도가 높아진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오는 7월부터 주관사의 의무보유를 확대하는 IPO 제도 개편안이 시행되면, 스팩 상장이 다시 활성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화플러스제5호스팩은 오는 20일 상장을 앞두고 있다. 올해 들어 유안타제17호스팩에 이어 두 번째다. DB금융제14호스팩은 지난달 예비심사를 철회했다. 올해 1분기 스팩 상장 건수가 단 두 건에 그친 것은 이례적으로 적다는 평가다.
스팩 상장의 매력이 크게 줄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최근 한국거래소의 심사 기준이 높아진 데다, 금융당국이 기업 합병 가치 산정 과정까지 들여다보면서 '빠르고 간편한 상장'이라는 스팩의 강점이 희석됐다는 것이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 IPO보다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스팩 우회상장에 대한 수요가 높았다. 스팩 합병은 특례 규정을 적용받아 기업가치 평가 기준(자산가치·수익가치)을 비교적 자율적으로 설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두 사태' 이후 지난해부터 금융감독원은 스팩 합병 기업들의 가치 평가 방식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합병 대상 기업의 가치가 과도하게 고평가됐다는 이유로 신고서 정정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었다. 거래소 역시 스팩 상장 기업들의 신고서를 보다 엄격하게 심사하는 기조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회계법인들의 합병가액 산정 과정까지 관리하도록 주문하면서 규제 강도가 한층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감원장까지 직접 나서며 주관사들이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원장은 지난달 5일 '회계법인 CEO 간담회'에서 "합병가액에 대한 외부평가와 합병비율 산정은 시장 참여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공정한 시장 질서 확립을 위해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사전 심사·감리를 확대하는 한편, 상장 후 주가가 공모가를 크게 하회하거나 매출·영업실적이 급감한 기업에 대해서는 사후 심사·감리도 강화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오는 7월 시행 예정인 IPO 제도 개편안이 스팩 제도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올해 1월 발표된 IPO 제도 개편안에 따르면, 수요예측 과정에서 기관투자자 배정 물량 중 40% 이상을 확약 기관에 우선 배정하고, 미달 시 주관사에 일정 물량을 보유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 담겼다. 40%를 채우지 못할 경우 주관사는 공모 물량의 1%를 취득해 6개월간 보유해야 한다.
이에 대해 증권업계는 "주관사의 의무보유 부담이 커지면서 증권사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만, 이 같은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기업들이 스팩 상장을 선택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스팩 상장은 수요예측 과정이 생략되고, 상장 후 2~3년 내 비상장 기업과 합병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한 증권사 IPO 담당자는 "거래소와 금감원의 심사 강화로 합병 기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것이 어려워졌다"며 "주관사의 확약 의무가 생기면, 오히려 기업들을 스팩 상장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