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그룹, 실탄도 배짱도 두둑하다지만…LS 위시한 범LG家 심기 건드릴 실익 있을까
입력 2025.03.25 07:00
    취재노트
    대한전선-LS전선 경쟁이 그룹 간 신경전으로 비화한 상황
    경찰 수사 중 ㈜LS 지분 매입…통상적 범주 벗어났단 평 多
    범LG家와 적대할 실익 있을까…고도의 수동공격 관전평도
    대한전선도 LS그룹 인프라 필요…납득할 이유 필요할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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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대한전선과 LS전선의 해저케이블 경쟁이 호반그룹과 LS그룹 차원 신경전으로 번지고 있다. 그런데 그 양상이 통상적인 범주를 훌쩍 벗어나는 모습이다.

      재벌 대기업들이 미래 먹거리를 두고 서로 추격하고 견제해온 일은 늘 있어왔다. 지금도 한화그룹과 HD현대그룹이 방위산업 시장에서 수년째 으르렁대는 중이다. 수십년만에 방산 시장에 물 들어오는 때를 놓치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법만 어기지 않는다면 경쟁에 불이 붙는 게 주주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법을 어겨 주주들에게 피해를 안긴 사례도 있다. SK이노베이션은 2021년 LG화학 전지 사업부(현 LG에너지솔루션)가 제기한 배터리 사업부(현 SK온)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최종 패소하며 현금 1조원과 로열티 1조원을 지급해야 했다. 갓 출범한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 행정부의 중재가 없었다면 배상 부담이 그 이상으로 불어났을 거란 관측이 많았다. 현지 대관을 포함해 양측이 소송전에 쏟아부은 돈만 수천억원에 달했고, 기술 인력은 물론 법무법인과 투자은행(IB) 등 자문시장까지 두 진영으로 나뉘며 상흔을 길게 남겼다. 

      지금이야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공급과잉 우려로 허덕이고 있다지만 그때만 해도 그럴 만한 먹거리란 평이 많았다. 미국이 공급망 재편을 내걸고 한국 배터리를 주력 파트너로 삼겠다고 했으니 재계 서열 2, 3위를 다투던 SK와 LG가 맞붙지 않으면 이상할 법한 전장으로 받아들여진 셈이다. 

      지금 LS그룹과 호반그룹이 북미와 유럽 해저케이블 시장을 두고 경쟁하는 것도 일견 유사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여러모로 그간의 경쟁 사례와 동일선상에 두고 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전선 산업은 대체로 성숙기에 접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진입장벽이 높고 부가가치도 큰 해저케이블은 이제 막 2막이 열리는 장기 먹거리로 통한다. 재생에너지 발전에 이어서 인공지능(AI) 투자에 민관이 합동으로 달려들면서 해저 초고압직류송전(HDVC)과 같은 인프라 수요가 부지기수로 치솟는 덕이다. 프랑스 넥상스, 이탈리아 프리즈미안, 독일 NKT에 이어서 국내에선 LS전선이 글로벌 톱티어로 꼽히고 대한전선이 이제 막 국내 신공장을 건설하며 추격전을 벌이고 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전방에 신재생 에너지만 있었다면 못 미더웠을지 몰라도 AI 투자까지 늘면서 전력·통신에 필요한 인프라는 '어차피 쇼티지(공급부족)'라는 공감대가 커졌다. 금융권 전반이 긍정적"이라며 "전력 수요나 데이터 송수신량이 천문학적으로 커질텐데 바다 밑에서 이를 연결하는 인프라 공급자는 제한적이라 해자(垓字)도 크다"라고 말했다. 

      치솟는 북미 수요를 앞두고 국내 기업이 맞붙는 양상까지는 비슷하다. 이 과정에서 대한전선이 LS전선 보유 설계 노하우를 탈취했다는 의혹을 받는 것도 SK-LG 사이 배터리 분쟁과 닮아 있다. 

      그러나 호반그룹이 ㈜LS 지분을 사들이면서 통상적인 기업 간 먹거리 경쟁 궤도에서 벗어나버린 느낌이다. 기술 탈취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기업의 모회사가 상대편 지주사 지배구조를 직접 겨냥하는 행보를 보인 탓이다. 공교롭게도 수사 결과가 나오기 직전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SK-LG의 배터리 분쟁 당시 국무총리가 언론 플레이에 나서고 양사 대관 라인이 수시로 미국을 드나들 정도로 물밑 신경전이 치열했지만 지금 호반그룹의 행보에는 못 미친다"라며 "재벌들이 출자자(LP) 명단에 숨어 경영권 분쟁을 부추긴 사례도 있고 형제의 난도 있었지만, 이번 사례는 피의자가 상대방 역린을 건드리는 모습으로 비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호반그룹에선 미래 성장성을 내다본 단순 투자 목적이라 설명하면서 3% 가까운 ㈜LS 지분 매입 사실을 굳이 부인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시기가 시기인 만큼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려워보인다. 호반그룹이 마음만 먹으면 LS그룹 지배구조를 위협할 만한 자금 동원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과거 호반그룹을 담당했던 증권사 커버리지 한 담당자는 "LS그룹이 전선 산업 경쟁력이나 미래 성장성에 비해 저평가돼 있는 것도 사실이고, 호반그룹이라면 정말 투자 목적으로 지분을 샀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라며 "그러나 재벌 그룹사의 지배력 문제가 얼마나 예민한지 모르는 것도 아닐 테고, 여러모로 납득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라고 전했다. 

      기술 탈취 혐의가 입증된 뒤 이어질 민·형사 소송에 대비하기 위한 카드라는 분석과 함께 고도의 수동공격이라는 관전평까지 나온다. LS그룹의 약점을 우회적으로 위협하는 동시에 빠져나갈 구멍까지 마련해둔 행보로 보인다는 얘기다. 

      그러나 상대방 코앞까지 주먹을 휘둘러놓고 몸이 찌뿌둥해서 그랬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는 식으로 빠져나갈 만한 사안인가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진의가 무엇이냐를 떠나서 실익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재계에 따르면 범LG가 내부에선 최근 한화의 아워홈 인수 추진에서도 불쾌한 기색이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LS그룹의 지배구조나 기업가치 저평가 문제를 떠나서 국내 자본시장의 생리상 특정 가문과 척을 지는 것이 사업적으로 유리해질 일은 잘 없는 편으로 통한다. 호반이 ㈜LS 지분을 매입한 합당한 이유를 밝히지 못한다면 범LG가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될 수 있다는 시각이 많다. 

      대한전선은 LS그룹의 인프라 없이는 사업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운 형편이기도 하다. 전선 산업의 수익성은 후방 전기동 제련업체와의 교섭력과 직결돼 있다. LS그룹 계열 LS엠앤엠은 국내 유일의 전기동 제련업체인 동시에 생산량 기준으로도 글로벌 2위 사업자다. 대한전선이 해외 업체와 장기계약 방식으로 수급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해도 LS엠앤엠 매입 의존도를 50% 아래로 낮추기 쉽지 않다. 

      호반그룹은 2021년 대한전선 인수 이후 두 차례 증자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6000억원 이상의 자금을 전선 산업에 투입했다. 자금 대부분은 지금 짓고 있는 제1, 제2 해저케이블 공장 건설에 순차로 들어갈 예정이다. 만에 하나 기술 탈취 의혹이 입증되고 소송전이 벌어질 경우 시장에 발을 들이기도 전에 차질을 겪게 된다. 그룹 계열사 대부분이 비상장사라 해도 어떤 형태로든 외부 투자자까지 불필요한 부담을 지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해저케이블 경쟁을 이끄는 송종민 대한전선 대표이사는 호반산업 부회장이자 김상열 호반그룹 창업주의 오른팔로 통한다. 여차할 경우 호반그룹 지분 매입과 대한전선-LS전선 사이 충돌을 별개로 치부하기에도 정황증거가 궁색하다는 평이 많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기술 탈취 의혹도 불거질 수 있다고 보는 측에서도 호반그룹의 이번 지분 매입 행보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