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모두 역대 최대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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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그룹이 올해부터 4년간 미국에 210억달러(약 31조원)를 투자한다. 역대 최대 규모의 대미 투자다. 미국에 설비투자를 늘리며 '트럼프 관세'를 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그룹은 올해부터 2028년까지 미국에서 자동차, 부품 및 물류, 철강, 미래 산업 등 주요 분야에 210억달러를 투자한다고 24일 발표했다. 구체적으로는 ▲자동차 ▲부품·물류·철강 ▲미래산업·에너지 부문에 투자를 집행한다.
자동차 부문에서 현대차그룹은 미국 현지생산 120만대 체제 구축을 위해 총 86억달러를 투자한다.
준공식을 앞둔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생산능력을 기존 30만대에서 향후 50만대로 확대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미국에 ▲현대차 앨라배마공장(2004년 가동, 36만대) ▲기아 조지아공장(2010년 가동, 34만대) ▲HMGMA(2025년, 30만대) 등 총 100만대 규모의 생산시설을 갖췄다.
부품·물류·철강 부문에서는 완성차-부품사간 공급망 강화를 위해 현대차·기아와 동반진출한 부품·물류·철강 그룹사들이 총 61억달러를 집행한다.
HMGMA 생산능력 확대에 맞춰 설비를 증설해 부품 현지화율을 높이고, 배터리팩 등 전기차 핵심부품의 현지 조달을 추진한다.
이와 함께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270만톤 규모의 전기로 제철소를 건설한다. 저탄소 자동차 강판 특화 제철소로, 고품질의 자동차강판 공급 현지화를 통해 관세 등 불확실한 대외 리스크에 대응할 계획이다. 철강 수요를 기반으로 철강 분야 신성장 동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미래산업·에너지 부문에서는 63억달러를 투자한다. 자율주행, 로봇, AI, AAM 등 미래 신기술과 관련된 미국 기업과 협력을 확대한다. 또 현대차그룹 미국 현지 법인인 보스턴다이나믹스, 슈퍼널, 모셔널의 사업화에 속도를 낸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기업들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상호간 협업을 확대하고 있다. 엔비디아와 SDV(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로보틱스 등 핵심 모빌리티 솔루션을 지능화하고 사업 운영 전반에 걸쳐 AI 기술 적용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 자율주행기업 웨이모와는 미국 HMGMA 생산 아이오닉5를 활용해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웨이모 원) 확대에 힘을 모으고 있다.
미국의 상호관세 발표를 앞두고 현대차는 현지화 확대로 상호관세를 피할 전략을 세운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은 오는 4월 2일 발표를 앞두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반도체 등 품목별 관세와 상호관세를 동시에 부과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24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투자계획 발표 행사에서도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한국 기업 중 대규모 대미 투자 계획을 공개한 곳은 현대차가 처음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무관세'로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대자동차는 미국에서 철강을 생산하고 미국에서 자동차를 만들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며 "미국에서 제품을 만들면 관세가 없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올해 초 현대차그룹은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사상 최대인 24조3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2024년 20조4천억원 대비 19% 이상 늘어난 금액이다. 세부적으로는 ▲연구개발(R&D)투자 11조5000억원 ▲경상투자 12조원 ▲전략투자 8000억원을 집행한다.
시장에선 현대차그룹의 관세 이슈를 민감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NICE신용평가는 리포트를 통해 "미국 정부의 수입 자동차에 대한 관세 인상은 가격경쟁력 저하로 이어져 현대차그룹의 영업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며 "2025년 완공되는 조지아 공장의 설비를 활용해 미국 현지 생산물량을 증가시켜 관세부과에 따른 영향을 완화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되나, 현지 생산물량이 증가하더라도 미국 판매 수요에 완전한 대응이 불가능한 점을 감안하면 관세 부담으로 인해 이익규모는 현 수준 대비 축소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평가한 바 있다.
한국신용평가 역시 "현대차∙기아는 총 매출의 40% 이상이 북미시장에서 발생하고, 미국으로의 수출 비중이 높아 관세부과 시 일정 수준의 실적 저하는 불가피하다"며 "이미 관세위험이 현실화된 멕시코와 향후 관세부과 가능성이 높은 국내생산분을 합치면 현대차∙기아의 미국판매 차량 중 3분의 2는 관세리스크에 노출돼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이번 대비 투자 발표가 전략적으로는 유효했다는 평가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관세 회피 전략 측면에서 이번 현대차그룹의 미국 투자 결정은 성공적"이라 말했다.
관세 부과에 따른 수익성 저하 부담은 줄었지만 재무적 부담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생산설비 투자, 생산라인 조정 등 새로운 자금 부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다른 관계자는 "대미 투자부담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만큼 향후 재무부담 역시 확대될 전망이고 이것이 어느 정도 관세 부담을 상쇄시킬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현대차와 기아의 주가는 전일 대비 각각 4.23%, 2.63%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