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발행 검토조차 없었다"…한화에어로 유증은 '지금이 정점' 판단 때문?
입력 2025.03.26 07:00
    취재노트
    年 3조 이익 예상 기업 유증 발표 소식
    부채비율 관리로 북미 M&A 추진 전망 속
    채권만기 5년 후 사업 불안감도 깔려있어
    "마치 코스닥 바이오社 같아" 비판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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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이하 한화에어로)가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외엔 다른 방안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복수의 증권사 관계자들은 "한화에어로가 대규모 유증 전 회사채 발행안은 검토조차 하지 않았고, 금융사와 접점도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 3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이 예상되는 기업이 주가 고점에서 주주가치 희석을 불러올 수 있는 유상증자를 단행한 것에 시장은 의아함을 표시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의 정관상 사채 발행 여력은 6000억원가량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한화에어로가 6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할 경우 금리는 민평보다 낮게 규모는 증액발행이 충분히 가능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7년물, 10년물 등 장기물로 발행해 향후 단기로 전환하면 3조원 규모도 충분히 조달 가능했다는 것이 금융권의 분석이다.

      회사와 우호적인 관계인 증권사들도 의문을 제기하는 분위기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본부 관계자는 "금융권에선 한화에어로에 회사채로 5000억~6000억원, 전환사채(CB)로 1조원 정도 조달하는 방안을 추천했을 것"이라며 "에쿼티만 무이자로 조달한다는 건 상당히 공격적인 의사결정"이라고 평가했다.

      한화에어로가 회사채와 같은 부채성 조달을 피하고 무리하게 유상증자를 선택한 배경에는 그룹 내부의 강한 부채 관리 의지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한화그룹은 최근 수년간 부채비율 관리에 민감한 모습을 보여왔다. 한화에어로는 이미 부채비율이 280%를 넘어선 상태로, 추가 부채 발행 시 400% 근처까지 치솟을 수 있었다. 

      방산업계에서 부채비율은 해외 입찰과 M&A 과정에서 핵심 평가 지표로 작용한다. 구매 및 피인수 국가들은 공급업체의 재무 안정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동관 부회장은 한화에어로의 M&A에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신평사 임원은 "보통 방산업체는 선수금이 들어오면 차입금을 상환하지만 한화는 북미 투자에 주로 써왔다"며 "부채비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상황에서 해외 기업 인수를 추진할 경우 오스탈처럼 피인수기업 이사회에서도 재무상태를 문제 삼을 수 있어, 크레딧 대신 에쿼티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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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증권가에서는 한화그룹 내부에 방산업 중장기 업황에 대한 불안함이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조금씩 나오고 있다. 유증은 결국 '지금이 최고'라는 판단의 발로가 아니냐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이 발행하는 회사채는 5년물이 주류를 이룬다. 이 시점에 맞춰 만기가 도래할 경우, 유럽연합(EU)의 자국 방산업체 우선 정책 강화 등으로 인한 경기 하강기와 겹치면 조달 비용이 큰 폭으로 상승할 수 있다.

      한 투자은행(IB) 채권 담당자는 "회사채 발행 시 5년 후 만기 상환 시점의 업황과 기업 신용도를 장담할 수 없고, 그 시기에 재무적 여력이 부족하면 차환발행 비용이 크게 증가하거나 최악의 경우 상환 리스크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회사의 현재 재무 상태와 미래 산업 전망 속에, 한화그룹의 또 다른 당면 과제인 경영권 승계 구도가 유증 추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그룹 승계 작업은 예정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그룹 내부의 판단이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그룹 승계 구도에서 한화에어로는 핵심 계열사다. 유증 직전 한화에어로는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100%를 보유한 한화에너지와 한화임팩트(한화에너지가 52.1% 보유)로부터 한화오션 지분 7.3%를 1조3000억원에 인수하면서 거액의 현금을 썼다. '통합지주회사→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오션'으로 이어지는 밑그림을 완성한 것이다. 

      이에 한화그룹의 금융 전략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에서는 한화그룹의 자금조달 방식이 1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볼멘소리도 적지 않다. 승계를 위해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시장에 부담을 전가한다는 시각에서다.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근 5년여간 증자는 불황일 때, 여러 자구책을 거쳐 부채까지 다 써본 다음에도 안 됐을 경우 선택하는 최종안이었다"며 "한화라는 대기업이 마치 코스닥 바이오 벤처처럼 주가 고점에서 유증을 단행하는 건 국내 정서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결정"이라고 꼬집었다.

      실권주가 다수 발생할 경우 주관사인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의 부담도 커진다. 한 대형 증권사 ECM 담당자는 "수수료는 크지만 실권주 발생 시 떠안아야 할 부담도 크다"며 "방산업 일시적 호황과 한화그룹의 방향성이 일치한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결정된 유증이라 우려가 없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