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투표제 찬성으로 우회 지원…한화, 실리 선택했나
MBK의 기대와 다른 한화의 행보, 주총서 변수 부상
한화-고려아연, 사업 협력 확대…지분 거래 속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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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이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한 축이 된 모양새다. 표면적으로는 중립을 표방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에 힘을 싣는 분위기다. 시장의 이목은 오는 28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한화의 의결권 행사 방향에 쏠리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한화그룹과 고려아연 측 고위 관계자들 간 물밑 접촉이 계속되고 있다. 양측 관계자들은 수차례 소통하며 정기주총을 앞둔 입장을 조율 중인 상황이다. 최근에는 한화그룹 측이 최윤범 회장 측에 우호적인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도 전해진다.
이러한 움직임은 MBK파트너스ㆍ영풍 연합이 업계에 내비쳤던 기대와는 결이 다르다. MBK파트너스 측은 그간 '한화 표가 우리 쪽에 있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흘려왔다. 한화그룹이 소액주주 및 정재계 눈치를 살펴 임시주총 의결권 행사에 불참하거나, 집중투표제 같은 재계가 민감한 안건에 반대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다. 당시 한화의 지분이 상당해 의결권 행사 방향이 '티가 날 수밖에 없다'고 판단, MBK 측에 유리한 선택을 할 것이란 전망이었다.
실제로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은 고려아연 인수 후 중국 자본에 매각할 수 있다는 루머가 돌자 국회를 찾아 "한화그룹이 고려아연에 관심이 많으니 (한화에) 팔면 된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역시 한화가 MBK측에 의결권을 행사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의 표현으로 읽힌다.
지난 1월 임시주총에서 현대차가 아예 의결권 행사를 포기했다. 반면 한화는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에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파악된다. 사실상 최윤범 회장 측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한화가 집중투표제에 찬성함으로써 자충수를 뒀다는 시각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오너 지배력 강화라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화그룹과 고려아연의 밀월 관계는 이미 지난해부터 감지됐다. 2024년 11월 한화에너지는 고려아연이 보유한 ㈜한화 지분 7.25%(약 1520억원)를 매입했다. 이 거래는 고려아연에는 유동성을, 한화에는 지배구조 강화라는 일거양득이 됐다. 특히 한화에너지가 김동관 부회장을 비롯한 3형제가 지분 100%를 보유한 가족회사라는 점에서, 이 거래의 이면은 더욱 흥미롭다.
불과 3개월 만에 800억원의 평가익을 남긴 이 거래는 양측 모두에게 '윈윈'으로 끝난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윤범 회장은 한화의 그룹 승계에 도움을 줬고, 한화는 그 답례로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양사의 밀월은 사업적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이달 고려아연은 한화신한테라와트아워에 지분 33.3%를 투자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김동관 부회장과 최윤범 회장은 에너지 사업에서 손을 맞잡았다. 이미 호주 BESS 사업에서도 협력 중인 양사는 북미 지역에서도 추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28일 개최될 고려아연 정기주총은 영풍ㆍMBK와 최 회장의 경영권 향방을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현재 고려아연의 지분율은 영풍ㆍMBK 연합(40.97%)이 최 회장(34.35%)보다 유리하지만, 집중투표제 도입과 영풍의 의결권 제한 카드가 주요 변수다.
MBK파트너스의 이미지는 홈플러스 사태로 이미 크게 훼손됐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TF까지 구성하면서 "MBK의 인수 과정을 보면 굉장히 악질적인 사모펀드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한화그룹의 지분은 이런 상황에서 더욱 중요해졌다. 국민연금(7.6%)도 MBK의 적대적 M&A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운 만큼, 한화의 의결권 행사 방향은 주총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근 한화그룹의 행보를 보면 MBK가 기대했던 '한화의 표'는 환상에 그칠 공산이 커진다. 겉으로는 치열한 경영권 다툼처럼 보이지만, 재계의 이해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바깥에서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도, 숲의 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걸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