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위기 해법 찾기 어려운 가운데 정무적 변수 갈수록 확대
이재명 대표 첫 회동 직후 2심 '무죄' 판결…다음은 탄핵 재판
中 이어 美까지 향후 정국 겨냥한 삼성전자 역할론 커질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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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을 가늠할 중대 재판을 전후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행보가 과감해지고 있다. 사법 리스크에서 한결 자유로워진 영향으로 보이지만 삼성전자가 펼치는 사업과 관련해 여러 정무적 변수가 오르내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으며 정국이 또 한 번 요동치게 된 만큼 향후 이 회장 행보에도 시선이 쏠릴 전망이다.
지난 25일, 이 회장이 중국 출장길에 있는 동안 삼성전자는 전영현 단독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됐다. 이날 새벽 한종희 부회장 겸 대표이사의 갑작스러운 유고에 따라 2인 대표체제 출범 4개월만에 다시 1인 대표체제로 복귀한 것이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회장은 중국 일정 문제로 현지에서 직접 애도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진다.
예기치 못한 리더십 변화에도 이 회장이 숨 돌릴 틈이 없다. 이달 들어 연일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는데 국내외 정치·경제 상황은 격랑이 계속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삼성그룹 총수로서 이 회장에 주어진 안팎의 주문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을 거란 목소리가 많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이 그룹 창립 87주년을 맞아 '사즉생(死卽生)' 메시지를 내놓은 것이나 최근 이재명 대표를 만나고 이어서 중국 출장길에 오른 행보 모두 주목을 받고 있다"라며 "최근 삼성전자 내부에서 나오는 사업 관련 메시지에서 정무적 맥락을 짚어내려는 시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처한 경영 위기가 사업적 결단만으로는 해소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작년 연말부터 삼성전자는 D램 재설계 작업에 돌입했는데, 기술 로드맵을 다시 짜는 과정에서 주 52시간 근무제와 같은 규제가 발목을 잡는다는 우려가 많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가 이례적으로 여야를 가리지 않고 반도체 연구개발(R&D)에 한해 주 52시간제 적용을 예외로 해달라는 요청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된다.
권한대행 체제가 길어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를 앞세운 청구서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반도체는 물론 가전·스마트폰 등 첨단 제조업 전반의 공급망 역시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하길 바라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미 조 바이든 전 대통령 당시 현지 선단공정 파운드리 투자에 나섰지만 이 같은 부담이 사업부 전반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비슷한 시기 중국 기업들의 기술적 완성도 역시 턱 끝까지 따라붙었다는 관측이 늘고 있다. 스마트폰부터 가전, 로보틱스, 전장, 반도체에 인공지능(AI)까지 삼성전자의 주력 사업 전반이 중국 추격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셈이다.
이런 가운데 20일 이 회장은 이재명 대표와 첫 공식 회동을 가졌다. 회동을 전후해 투자업계가 아닌 정치권에서 삼성전자의 파운드리(비메모리 위탁생산) 사업에 대한 뜬소문도 오르내린다. 이 대표가 이달 초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미래첨단산업 분야, 특히 인공지능(AI) 분야에 국가적 단위의 투자가 필요하다. 대만 TSMC도 초기 정부 투자 지분이 48%였다"라는 발언을 내놨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서도 정치권이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분사 문제를 검토하는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26일에는 이 대표의 차기 대선 출마길이 열렸다. 이날 서울고법 형사 6-2부(재판장 최은정)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받는 이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던 이 대표는 이번 2심 결과로 다시 대선 출마 자격을 갖추게 됐다. 조기 대선이 대법원 확정 판결 이전에 치러질 경우 차기 대선 출마가 확정적인 상황이다.
아직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재판이 남아 있으나 이 회장이 중국 출장길에서 돌아오면 향후 정국을 겨냥한 여러 조치가 부상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삼성전자는 올해부터 국내외 R&D 센터에 수십조원을 투자해 글로벌 허브를 구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조기 대선을 둘러싼 재판 일정이 순차로 마무리되면서 국내는 물론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인 삼성전자의 전략적 판단 역시 구체화할 전망이다. 이 회장은 이번 중국 출장에서 샤오미 전기차 공장과 BYD 본사를 방문해 차량용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전장 사업 협력을 논의했다. 이어서 트럼프 2기 행정부 입맛에 맞춘 조치 역시 드러날 것이란 평이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비롯한 반도체 산업에 대한 문의도 늘고 있고, 향후 정국에서 이 회장과 삼성전자의 역할론 역시 주목을 받는다"라며 "삼성전자를 둘러싼 여러 정무적 판단들이 순서대로 부상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