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은 비핵심' 기조 속 자금 조달에 그룹 참여 규모 변수
차입 부담 확대 우려…신평사 "재무 리스크 예의주시 해야"
트럼프 임기 변수 부각…美 전기로 투자 회의론도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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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이 미국 전기로 진출 계획을 발표하면서 현대자동차그룹이 어느 정도 부담을 질 것인지 시선이 쏠린다. 현대제철 자체적으로 투자금을 마련하는데 한계가 있는만큼 그룹 차원의 지원 여력이 중요해졌다. 미국의 관세 정책 대응 과정에서 그룹 내 철강 사업 입지가 드러날 것이란 분석이 많다.
현대제철은 미국 루이지애나 어센션 패리시(카운티)에 전기로 기반 일관제철소 설립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투자 금액은 58억달러로, 한화 약 8조5000억원 수준이다. 회사는 자기자본 50%와 타인자본 50%로 투자금을 조달할 예정이다.
이번 투자는 현대제철이 지난해부터 준비해온 프로젝트다. 트럼프 1기 당시 철강 관세 및 수입쿼터제가 도입되며 현지 생산 기지 확보가 과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하며 철강 관세, 탄소세 등 국경조정 압박이 거세지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북미 현지 진출을 공식화하게 됐다.
시장의 관심은 '현대제철이 막대한 투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이냐'로 모아진다. 자기자본 50%의 조달 방법에 대해 현재까지 구체적인 방안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현대제철은 자기자본 50% 조달 방법에 대해 현대제철과 현대차그룹, 외부 투자자들의 공동 출자를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증권사 철강산업 연구원은 "현대제철이 자기자본 중 얼만큼의 지분 비율을 부담할지가 핵심"이라며 "현대제철의 재무 구조상 그룹차원에서 일부 투자금을 부담한다 하더라도, 유상증자나 자산매각을 고려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작년 말 기준 현대제철의 연결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조2956억원으로, 2029년까지 확보해야 할 자기자본 분담분 약 4조원에는 크게 못미친다. 매년 영업활동 현금흐름도 감소하는 추세라 업황 회복 없이는 안정적 현금흐름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투자가 2026년도부터 진행되다보니, 현대제철은 그때까지는 현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며 "하지만 철강 관세 조치가 강화된 이후 업황 회복이 생각보다 더뎌질 것으로 전망돼 회사는 현금을 여유롭게 조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밝혔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현대제철이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는 보유하고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을 팔거나 회사의 일부 사업부를 매각할 가능성도 살펴야한다"며 "현대제철 입장에서는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등 그룹 계열사가 함께 자금 조달에 나서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정의선 회장이 그간 모빌리티 밸류체인을 제외한 사업부문은 순차적으로 정리하겠다는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해왔다는 점이다. 차량용 강판조차 수직계열화가 불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현대제철 역시 그룹 핵심 사업에서 일정 부분 제외돼 있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현대제철의 자금 조달 방식과 규모에 따라, 철강 산업에 대한 그룹의 의지가 드러날 것이란 분석이 많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자기자본 부담 중 절반 수준인 2조원가량을 분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절반을 넘어서는 금액을 부담할 가능성도 점쳐지지만, 아직까지 확정된 내용이 없어 현대제철이 유상증자를 단행할 방안도 언급되는 상황이다.
당장은 선을 긋고 있지만 유상증자에 나설 경우 대주주인 현대차그룹의 참여 여부가 핵심이 될 전망이다. 투자업계에서는 "대형 그룹 계열사가 신사업 자금 마련을 위해 증자에 나서더라도, 대주주가 참여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결국 그룹사 의지가 주요 변수로 꼽힌다. 지난 2020년 현대로템이 주주배정 전환사채(CB)를 발행할 당시에도 현대차는 물량을 인수하지 않았다.
타인자본 조달에도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체적인 자금 조달 구조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제철소의 법인 형태가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업계에선 해당 법인이 합작법인(JV) 형태로 설립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 현대제철이 확보하는 지분율에 따라 미국 법인이 현대제철의 연결 자회사로 편입될지, 아니면 지분법 대상으로 분류될지가 결정된다.
또, JV 차원에서 공동 차입할지, 각 참여사가 지분 비율에 따라 개별적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을 택할지도 아직 확정되지 않아 향후 리스크 부담 주체 등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신용평가업계에선 현대제철의 차입금 규모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신용평가사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현대제출 순차입 규모는 일부 감소하는 모습을 나타냈지만, 2024년 말에는 순차입 규모가 다시 늘어난 상황이다. 2023년 이후부터 전방 수요가 꺾이고 중국산과 일본산 철강재가 많이 들어오며 수익과 현금 창출 규모가 줄어든 여파다.
한 신용평가사 연구원은 "현대제철의 경우 현재 공시된 자료를 보면 차입금 규모가 많이 올라온 상황"이라며 "미국에 전기료 제철소 지을 경우, 재무 부담 더 가중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어 "차입 규모가 크다면 신용등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우선 자금 조달방식이 구체적으로 발표되면 사업성과 재무부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재무안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업계에서는 재무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미국 투자를 단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적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 내 전기로사 대비 경쟁력이 있는지 검토가 끝나지 않았고, 투자비 대비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아직 불투명하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행정부의 임기가 끝난 후 무역규제가 풀려버리면 투자 효용성이 사라진단 시각도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미국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려면,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 규정에 따라 전체 부품 중 약 70%를 현지에서 조달해야 한다"며 "이 때문에 현대제철이 함께 따라가는 느낌의 투자"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에서 하겠다는 DRI(Direct Reduced Iron, 직접 환원철) 방식은 한국 내에서도 일반적으로 쓰지 않았던 공정이라 변수가 있고, 트럼프 임기가 끝나면 저렴한 철강제품이 미국 내 대규모로 유입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현지 투자 발표 당일인 25일, 시장은 엇갈린 반응을 나타냈다. 현대차 주가는 3%넘게 상승한 반면, 현대제철은 6% 넘게 급락했다. 대규모 투자에 따른 자금 조달 부담과 유상증자 가능성 등 불확실성이 반영됐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과 현대제철은 백악관 일정을 맞추기 위해 세부적인 자금 조달 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 현지 투자 계획을 서둘러 발표한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