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LG가 주도한 1분기 회사채 시장, NH증권이 주관 1위로 출발
입력 2025.03.31 07:00
[2025년 1분기 집계][DCM 주관·인수 순위]
상위권 증권사 격차 좁혀져…KB·NH 접전 치열
미래에셋 영업력 저하 속 키움·하나·대신 약진
SK 16개 계열사 총출동…LG그룹도 공격적 조달
LG엔솔 兆단위 발행에 극단적 손절매 경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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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증권사간 채권자본시장(DCM) 주관 경쟁이 연초부터 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순위권 간 격차가 대폭 축소된 가운데, NH투자증권이 KB증권을 근소한 차이로 앞서며 1분기를 출발했다. 금융 당국도 과열된 경쟁 양상에 주목하며 현장조사에 나서는 등 올해 DCM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경쟁이 예상된다.

    인베스트조선이 집계한 2025년 상반기 채권자본시장(DCM)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증권사가 주관을 맡은 무보증 공모회사채(일괄신고 제외)는 30조1195억원이다. 연초 발행 급증에 힘입어 전년 동기(27조6995억원) 대비 발행 규모가 약 10% 늘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상·중·하위권 간 격차가 뚜렷했던 DCM 리그테이블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2024년에는 KB증권이 NH투자증권을 1조5000억원가량 앞서며 여유 있게 1위를 차지했고, 3위 한국투자증권도 신한투자증권과 1조2000억원 이상의 격차를 유지하며 중위권을 따돌렸었다. 반면 올해 1분기엔 NH투자증권이 5조7369억원으로 KB증권(5조5697억원)을 2000억원 안팎의 근소한 차이로 앞서며 1위에 올랐다. 3위 한국투자증권(3조5544억원)과 5위 SK증권(3조2450억원) 간 격차도 6000억원 안팎에 불과한 상황이다.

    한 대형 증권사 기업금융본부장은 "1분기 일반회사채 순위에서 NH투자증권의 선전은 SK그룹의 영향이 컸다"며 "SK하이닉스, SK케미칼, SK텔레콤 등 주요 계열사 물량을 농협중앙회나 자기자본(PI) 등의 수요예측 참여 영업으로 확보하면서 SK그룹 물량에서만 1조원 가까운 차이가 났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PF 영업이 힘들어지면서 전통 IB 강화를 외친 중소형 증권사들이 회사채 영업 경쟁에 뛰어든 영향도 컸다. 우리투자증권에 인력을 뺏긴 미래에셋증권의 영업력이 저하되면서 순위권에서 밀려났고 그 자리를 키움증권, 하나증권, 대신증권이 나눠 차지하는 모양새다.

    대신증권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대신증권은 지난해 연간 기준 1조2000억원을 주관했는데, 올해 1분기에만 약 9000억원을 주관하며 한 분기만에 작년 한 해 실적을 거의 달성했다. LG에너지솔루션 주관에 참여하는 등 주요 대기업 발행에서 성과를 거뒀다.

    다른 증권사 기업금융부 관계자는 "대신증권이 작년 말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 인가를 받으면서 북(book·운용한도)을 활용한 영업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며 "언더 금리로 회사채를 낙찰받아 발행 당일에 손실을 보고 팔더라도 대기업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려고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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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기업집단별 회사채 발행량은 SK그룹이 단연 돋보였다. SK그룹은 무려 16개 계열사가 모두 나서 발행에 참여해 총 4조3800억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하며 1위를 차지했다. SK텔레콤, SK하이닉스, SK케미칼이 가장 적극적으로 발행을 진행했고, 작년에는 보이지 않았던 SK실트론, SK머티리얼즈도 올해 채권 시장에 나섰다.

    개별기업 기준으로는 LG에너지솔루션이 단일 발행 기준으로 1조6000억원의 대규모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 과정에서 증권사 간 과열 경쟁이 벌어져 결국 16개 증권사가 참여하는 대규모 주관단이 꾸려졌다. 2년 만기 채권(6400억원)은 시장 대비 낮은 3.138% 금리로 인수된 후, 당일에 4500억원 규모가 손실을 감수하고 세컨더리 시장에서 팔렸다. LG에너지솔루션 주관 실적을 확보하기 위해 증권사들이 단기 손실까지 감수하는 극단적 경쟁이 벌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말 롯데케미칼의 기한이익상실(EOD) 사태 이후 다시 조달시장을 찾은 롯데그룹의 회사채 발행도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롯데물산 회사채는 그간 KB증권이 독점하다시피 주관해왔는데, 이번엔 NH투자증권이 대표주관을 맡았다. KB증권은 대신 롯데칠성, 롯데웰푸드, 롯데렌탈 등 다른 계열사 발행을 담당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롯데물산이 보유한 롯데월드타워가 롯데케미칼 회사채 담보로 제공된 상황에서 KB증권이 주관 역할을 재고한 것으로 보인다"며 "NH투자증권은 리스크 요인을 감안하면서도 향후 영업 관계를 고려해 발행을 맡은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상반기 이후 채권 시장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홈플러스 법정관리 사태로 리테일에서 소화되던 비우량 등급 채권 시장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다만 CJ제일제당, CJ대한통운 등 CJ그룹 물량이 대거 출회될 것으로 예상돼 대기업을 둔 주관사 확보 경쟁은 여전히 치열할 전망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올해 초엔 다들 금리가 빠른 속도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막상 미국도 물가 문제로 금리를 두 번 내리기 쉽지 않아 보이는 상황"이라며 "발행사와 주관사가 단기물 채권이나 변동금리 채권 비중을 더욱 확대하는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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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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