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투자 소식에 뿔난 현대제철 주주들…"공수표된 부채 상환 약속이나 지켜라"
입력 2025.04.01 07:00
    순부채 8조 넘는데… 미국 8조5000억 투자 강행
    주주들 부글부글…체질 개선보다 투자가 먼저냐
    "현대차만 이익" 부품사 전락 우려 커지는 현철
    "유상증자 없다" 밝혔지만…시장 불안감은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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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현대제철이 대규모 미국 현지 투자 계획을 발표하자 주주들의 반발이 거세다. 실적 개선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를 강행한 것에 대한 반발 심리가 작동한 탓이다. 

      현대제철은 미국 루이지애나에 전기로 기반의 일관제철소를 짓는 데 총 58억달러(약 8조5000억원)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회사가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약 1조3000억원 수준이라 추가 자금 조달을 위해 유상증자를 추진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삼성 SDI 등 대기업들이 줄줄이 유상증자 추진에 나서며 현대제철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 것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컸다. 

      현대제철은 25일 기관투자자 대상 IR(기업설명회)에서 "유상증자는 현재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시장의 우려를 일축했다. 자본 조달 방안은 그룹사와 지속적으로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최근 현대제철은 철강 수요 부진과 공급 과잉 속 비상경영 체제에도 돌입했다. 만 50세(75년생) 이상 일반직, 연구직, 기술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으며, 다음달 부터 인천공장 내 철근공장 전체를 한 달간 전면 셧다운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현대제철이 위기 상황에서도 유상증자로 자금 조달을 고려하지 않아 다른 그룹과는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단 이야기도 나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영업활동으로 1조4000억의 현금을 확보했음에도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로 해외 투자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 현대제철 주주들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온라인 종목토론방에는 "이제는 헛웃음만 나오는 주식 1순위", "배당이고 뭐고 어이가 없다", "미국 가는 현철 폭망이다"는 성토의 글이 줄을 이었다. 미국 현지 투자가 현대제철에 반드시 필요한 결정이었는지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이 잇따랐다. 현지 투자 발표 이후 현대제철의 주가는 4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역대급 실적을 기록하는 동안 현대제철은 실적 개선도 이루지 못한 것을 보면 그룹 내 현대제철의 주소가 보인다"며 "현대차는 미국 공장 지어 관세 피하고 미국 시장 점유율을 올리겠지만, 이 과정에서 현대제철은 사실 자회사로서 그룹사에 희생당한 것"이라고 밝혔다. 

      투자자들의 반감에는 과거의 기억도 한몫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2013년까지 1~3고로 설립에 각각 3조원씩 총 9조원을 투자했다. 이로 인해 총차입금은 한때 11조원까지 치솟았다. 이후 현재까지 일부 상환했지만, 2024년 말 기준 순부채는 여전히 약 8조3000억원에 달한다. 연간 이자비용만 2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제철은 2013년 당시 "3고로 완공 이후 투자가 마무리되면 내년부터 차입금 상환에 주력하겠다"며, "2014년에는 4000억~5000억원, 2015년에는 1조원 이상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에도 차입금을 줄여나가겠다고 밝혔지만, 순부채 부담은 여전하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순부채가 8조원이 넘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조달 계획 없이 대규모 투자를 발표한 건 주주 입장에선 불안할 수밖에 없다"며 "지난 10년간 부채를 갚겠다더니 이행되지 않았고, 지금 상황에서는 미국 투자가 아닌 공수표였던 부채를 갚겠단 약속을 지키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번 미국 투자 발표가 장기적으로는 현대제철의 기술적 전환점이 될 수 있지만, 현 상황에서 우선순위는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차입금이 과도한 상황에서 철강 업황 부진에 현금흐름도 좋지 않아 대규모 투자에 대해 호평보단 우려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필요한 투자였단 목소리도 나온다. 

      한 증권사 철강업 연구원은 "현대제철이 전기로로 얼마나 높은 퀄리티의 차 강판을 만들 수 있는지를 미국에서 증명해낸다면 오히려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이 한국보다는 훨씬 큰 시장이고 현대차가 앞으로 잡아야 하는 시장이니 만큼, 지금 시기에 투자하는 것이 방향이 맞다"고 분석했다.

      다른 증권사의 철강 연구원은 "친환경 자동차 강판쪽에서 승기를 걸어야 하는데, 미국이 사업 여건이 좋고 수요도 어느정도 확보된 상황이기 때문에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제조업을 지속해 육성한다면, 철강 산업 사이즈 자체가 커질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