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승계의 주축 한화에너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닮은꼴?
입력 2025.04.01 07:00
    Invest Column
    그룹 지원으로 몸집 키워온 한화에너지
    가치 키운 한화에너지 결실은 3남의 몫
    한화에어로, 증자 부담은 ㈜한화 및 주주들이 분담
    ㈜한화 재무부담, 결국 3남 지분 승계엔 호재
    가치 키운 제일모직, 몸값 낮춘 삼성물산과 닮은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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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관, 김동원, 김동선 등 한화그룹 오너일가가 지분 전량을 보유하고 있는 한화에너지는 사실상 한화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회사이다. '한화'란 명칭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가족회사에 가까운 한화에너지는 그룹 차원의 유·무형의 지원을 통해 그룹 지배력을 높여왔다.

      한화에너지는 기업공개(IPO) 주관사를 선정해 증시 입성을 추진하고 있다. 한화에너지가 몸집을 불려온 일련의 과정에서 3남은 ㈜한화의 지배력을 한층 높이는 효과를 거뒀고 마지막 관문인 IPO를 통해선 든든한 자금 마련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31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세 아들에게 ㈜한화 지분 절반가량을 증여했다. 한화에너지와 3남이 각각 보유하고 있는 ㈜한화의 지분을 고려하면, 사실상 경영권 승계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한화그룹의 경영권 승계 과정을 살펴보면 이재용 회장의 사법리스크 단초가 됐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떠오르기도 한다.

      ㈜한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에너지와 관련한 일련의 자본시장 거래들은 사실상 승계작업으로 해석돼 왔는데, 이 과정에서 그룹 계열사 주주들의 이익과는 무관하거나 배치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는 점은 삼성그룹 승계와 닮은꼴로 평가받는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사법리스크 족쇄를 벗어내지 못했던 삼성그룹을 지켜본 한화그룹의 승계 작업은 비교적 오랜기간, 그리고 더 정교한 방식으로 진행돼 왔다. 

      삼성그룹이 미래가 불투명했던 '바이오'를 승계의 열쇠로 사용했다면, 한화그룹은 전세계 적으로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고 있는 '방산'을 키워드로 삼고 있다. 또 검사 시절, 삼성그룹 이재용 회장을 기소했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한화그룹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선 사실상 그린라이트를 시사하며 힘을 싣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김승연 회장이 그룹의 전권을 쥐고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시점에 지분을 증여해 김동관 부회장에게 힘을 실었단 점은, 추후 3남의 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의 잡음을 최소화하겠단 의도로도 풀이되고 있다.

      고려아연 깜짝 선물과 한화에어로 지원을 통한 오너회사의 사세 확장 

      한화에너지는 지난해 중순 공개매수를 통해 ㈜한화 지분을 매집했으나 목표치의 절반 수준을 사들이는데 그쳤다. 불과 1800억원을 투입해 사들이는 거래였던 탓에 목표 수량이 적었다. 역대 최저 수준의 할증률로 투자자들을 유인했으니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해당 공개매수는 블록딜 사전공시제도가 도입하기 직전에 추진됐다. 오너일가는 1주만이라도 사들이면 이득을 보는 구조였지만, 장기간 손실 구간에 갇혀있던 주주들은 복잡한 손익계산을 따져봐야 했다.

      한화에너지는 당시 "공개매수는 책임 경영을 강화하기 위함"이라고 목적을 설명했다. 그러나 "지배구조, 재무구조, 사업내용 등에 변경을 가져오는 구체적인 장래계획은 수립하고 있지 않다"며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을 내놨다.

      공개매수가 진행되고 불과 몇 달 후, MBK파트너스가 촉발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한화에너지는 조용히 이득을 챙겼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조짐이 나타나던 2022년, ㈜한화와 고려아연은 양사의 자기주식을 맞교환 했다. 양사의 사업적 내용과 재계 위상을 고려했을 때 한화그룹은 고려아연의 백기사로 여겨졌다.

      지난해 말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자금이 급한 고려아연은 손실을 감수하며 보유한 ㈜한화 지분을 한화그룹에 다시 매각했다. 엄밀히 말하면 오너 가족회사인 한화에너지에 팔았다. 한화에너지는 몇 달전 진행된 공개매수보다 낮은 가격으로, 더 많은 ㈜한화 지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한화에너지는 불과 1년만에 ㈜한화 지분율을 두 배 이상 끌어올렸고, 오너일가는 ㈜한화에 대한 직간접 지분율 50%를 넘기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역시나 "시너지 제고와 책임경영 강화"를 목적으로 내세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한화오션 지분 매입. 최대 수혜는 결국 오너일가가 누리게 됐다. 이미 한화오션의 최대주주였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달 1조3000억원을 투입해 한화오션 지분을 추가로 인수했다. 

      인수 대상은 한화에너지 외에 한화에너지코퍼레이션싱가포르, 한화임팩트파트너스 등 한화에너지의 계열회사가 보유한 지분이었다. 정작 2대주주이자 일반 투자자들 주식 비중이 높은 한화시스템이 보유한 주식은 인수 대상에서 제외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한화오션 지분을 매입하면서 최종적인 수혜를 얻게 되는 건 결국 한화에너지, 그리고 오너일가가 되는 구조인 셈이다. 거래 발표 직후 한화에너지는 기업공개(IPO)를, 막대한 자금소요가 발생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3조6000억원에 달하는 유상증자를 발표한다.

      재무부담 불가피한 ㈜한화…한화에너지와 오너일가엔 오히려 호재?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반드시 한화오션 지분을 매집해야 하는 시점이었는가'에 대해선 여전히 말들이 많다. 경영권을 위협받는 상황이 아니었을뿐더러 의결권 역시 오롯이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배구조를 단순화하겠단 의도였다면 왜 하필 오너일가 회사인 한화에너지 계열사의 지분만 사들였는지 의문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한화오션 지분 매입에 1조3000억원이란 대규모 지출이 발생하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결국 주주들에게 손을 벌렸다. 승승장구하는 방위사업이 미래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런데 실효성이 모호한 계열사 지분 매집에 대규모 자금을 쓰고 이를 주주들에게 손을 벌린다는 것에 일단 역풍을 맞는 모양새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최대주주인 ㈜한화는 대규모 자금조달이 불가피해졌다. 현금이 넉넉하지 않은 ㈜한화는 결국 자본시장 거래를 통해 자금을 조달할 것으로 보인다. 어떤 형태의 거래든  ㈜한화의 자산과 크레딧을 활용하면 자금 조달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궁극적으론 리스크는 ㈜한화의 주주들이 짊어지고 과실은 한화에너지와 그 주주들이 얻게 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지배구조 최정점에 있는 ㈜한화의 재무부담이 커진다는 것은 그룹 전반에 걸친 리스크로도 해석할 수 있다. 다만 ㈜한화의 대주주가 한화에너지 및 오너일가란 점에서 ㈜한화의 부담이 얼마나 주주들에게 전가할 것이가는 따져봐야 한다. 되레 ㈜한화의 부담이 늘어나는 상황은 ㈜한화의 지배력을 높여야하는 한화에너지와 3남에겐 우호적인 상황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경영권 승계의 유력한 시나리오였던 ㈜한화와 한화에너지의 합병에 대해선 그룹은 일단 "계획하지 않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다만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계열사 분할·합병, 지분 이동이 진행된다면 일련의 거래들이 오너일가의 그룹 지배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향할 것이란 점에 이견을 다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오너회사 제일모직과 한화에너지…지배회사 삼성물산과 ㈜한화의 닮은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통합 삼성물산 탄생의 최대 논란은 합병 비율이었다. 요약하면 오너일가의 지배력이 높은 제일모직의 가치가 부풀려지고, 지주회사격인 삼성물산의 가치가 낮게 평가됐다는 것이 쟁점이다. 

      큰 틀에서 본다면 ㈜한화의 리스크가 부각되는 상황, 오너일가 회사인 한화에너지가 급격하게 사세를 확장해 그룹 지배력을 높여가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물산의 합병은 정부 차원의 유·무형적이고 조직적인 지원이 뒷받침했다. 당시 캐스팅보트(Casting Vote) 역할을 했던 국민연금의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 국민연금의 소관부처인 보건복지부 문형표 장관은 유죄 확정 판결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표를 던지도록 압박한 혐의다.

      삼성물산의 합병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앞단에 섰다면, 한화그룹에는 금융당국 최고 실세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3조6000억원의 유상증자를 발표한 직후, 금융감독원은 해당건을 중점심사대상에 등재하고 자금조달을 신속하게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심사를 개시하기도 전에 긍정적인 반응부터 보였다.

      이 원장은 "공모 시장에서 조달을 할 수 있어야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용이한 것"이라며 "엄청나게 긍정적으로 보고 있고 최대한 빨리 심사하겠다"고 말했다.

      공정한 심판의 역할을 해야 할 금감원이 이미 답을 정해 놓은 것과 같은 행태에 투자자들은 불만을 쏟아냈다. 그러자 금감원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증권신고서의 정정을 요구했다. 이 과정이 두산그룹 사태처럼 지난하게 이어질지, 아니면 쏟아지는 비판에 대한 명분 쌓기를 위한 행위였는지는 좀 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삼성의 바이오, 한화의 방산…입지는 다른 황태자들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을 깊게 들여다보면 삼성그룹이 신수종 사업으로 내세웠던 '바이오'가 있다. 바이오 사업은 삼성그룹 승계의 명분과 정당성을 입증할 수 있는 열쇠로 쓰였다. 물론 삼성그룹은 바이오 사업의 회계처리를 통해 제일모직의 가치가 부풀려지는 효과를 봤다는 혐의를 아직까지 완벽하게 벗어내지 못했다.

      삼성의 승계 열쇠였던 바이오 사업은 당시의 투자자들에겐 10~20년 후에나 결실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줄 수 있는 무기였다.

      반면 한화는 '방산'이라는 당장 손에 잡히는 승계 키워드를 잡고 있다. 

      한화그룹이 대체불가능한, 우리나라 유일의 방산업체란 점은 일련의 자본시장 거래들이 용인될 수 있는 좋은 무기이자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해외 수출을 위한 정부차원의 유무형 지원, 금융당국의 지지 등 더할 나위없는 우호적인 사업환경이 펼쳐지고 있다. 그룹의 중추역할을 하고 있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삼성으로부터 2015년에 인수한 삼성테크윈이었다는 점은 아이러닉하다.

      이미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계열사를 쪼개고 붙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한화그룹의 경영권 승계작업은 물밑에서 이뤄져왔다. 이는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하겠단 깜짝 발표를 통해 정공법(?)을 택한 삼성그룹과 그 중심에 있던 이재용 회장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눈앞에서 지켜본 학습의 효과로도 보인다.

      삼성물산 합병 당시만해도 삼성을 대표하는 인물은 이건희 회장이었다. 이재용 회장은 황태자였지만 사업적 성과가 없었고, 조직적인 측면에서도 리더십을 증명하지 못했다. 물론 경영권 승계에 대한 법적 문제도 문제였지만 그룹의 총수가 이재용 회장이어야만 하는 정당성과 명분이 부족했던 점 역시 여론의 뭇매를 맞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한화그룹의 경우 김동관 부회장은 이미 그룹의 전권(全權)을 쥔 인물로 비쳐지고 있다. 사업적인 실패는 묻혔고, 실패한 적 없는 오너경영인의 이미지가 공고해졌다. 미국의 패권주의가 강해지고 있는 시점에 우방국가인 한국의 방산그룹 차기 오너라는 독보적인 자리는 다소 노골적으로 보이는 승계 작업 과정이 묵과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남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투자자와 주주들까지 전방위적인 지원을 요구 받고 있는 상황은, 한화그룹의 대관식이 그리 멀지 않았단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