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관련 대출 신용등급 하향 조정…원금 회수 가능성 주시
대출 이자 미납 장기화시 공매 처분 가능성…"익스포저 집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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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의 임대료 지급이 중단되면서 금융권이 관련 부동산 대출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고 있다. 일부 매장은 임대료 지급을 미루고 있는 상황으로 전해진다.
홈플러스 임대료로 은행 대출 이자를 갚아온 운용사와 시행사들은 이자 납부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자 상환이 불가능해질 경우 대규모 홈플러스 부동산이 공매로 나올 수 있어 시장에 충격이 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현재 68개 임대 매장의 임대료 지급을 중단한 상태다. 회생절차가 개시되면 모든 채무 변제가 중단된 까닭이다. 통상적이라면 임대료는 공익채권으로 분류돼 우선 변제되지만 장기임대차 계약의 경우 금융채권으로 간주 돼 변제 순위가 뒤로 밀리게 된다. 홈플러스 측은 변제를 위해선 법원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홈플러스는 이미 지난 17일이 납부일이었던 동수원·서울 금천·서울 영등포·부산 센텀시티 등 4개 점포의 임대료를 지급하지 않았다. 이 점포들은 롯데건설과 한 시행사의 개발사업 대상지로, 개발 전까지 약속된 임대료 수입에 차질이 생겼다. 홈플러스는 임대차 계약을 맺은 주체들과 임대료 인하 협상을 벌일 방침이어서 당분간 임대료 지급은 지연될 전망이다. 연간 4000억원에 달하는 임대료 규모를 고려하면 그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출을 끼고 홈플러스 점포와 부지를 매입한 운용사·시행사 등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임대료 수입이 끊기면서 유동성 위험에 직면한 것이다. 홈플러스는 그동안 약 2조원 규모의 점포와 부지를 매각했고, 이를 주로 운용사, 시행사, 건설사들이 매입했다. 이들은 매수 비용의 60~70%를 대출로 충당하고, 홈플러스에서 받는 임대료로 이자를 납부해왔다. 대출 이자 납부가 장기간 지연될 경우 금융권에서는 투자금 회수를 위해 해당 부동산을 공매 처분할 수도 있다.
이미 그 조짐이 포착되고 있다. 은행들이 해당 대출의 부실화 가능성을 고려해 내부 신용등급 하향을 검토 중인 상황이다. 은행들은 대출 시 자체 신용평가 모형으로 원금 회수 가능성을 평가하고 이를 정기적으로 재검토하는데, 현금 흐름이 악화되면 등급을 낮추는 조치를 취한다.
실제로 한 시중은행의 조치가 확인됐다. 이 은행은 홈플러스 사업장을 매입한 차주에게 나간 대출을 재평가해 등급을 일제히 떨어트린 것으로 파악됐다. 차주의 재무능력을 따져 B2, B3등으로 하락시킨 것인데, 이는 국내신용평가기관 기준으로 B0/B- 등급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추정된다. 원금 회수가 난이도가 높아졌다고 판단한 셈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이자 연체가 발생했는데 현금흐름의 감소가 예상되는 경우 등급을 인위적으로 떨어트린다. 현금 유동성이 우려되고 상환이 의심스러우면 C등급 이하로 조정하고, 정상 상환이 안 되면 담보 자산을 청산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다른 시중은행은 아직 신용등급을 내리지 않았지만 향후 홈플러스와 점포 소유자 간 임대료 협상을 주시하고 있다. 임대료가 줄어 대출 상환 여력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지만, 협상이 장기화될 경우 현금흐름이 심각하게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홈플러스는 임대료 삭감에 응하지 않으면 계약 해지까지 불사하겠다는 강수를 둘 것이란 관측이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홈플러스의 회생절차로 은행권은 관련 익스포저를 집계하고 회수 가능성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권은 홈플러스 회생절차 신청 이전부터 관련 점포 대출에 주의를 기울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점포의 임대료 지급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홈플러스 남현점(사당점)을 보유한 KB사당리테일리츠의 경우, 대주단이 담보권 행사를 검토하기도 했다. 다만 리츠 개인투자자들을 고려해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금융권의 추산에 따르면 홈플러스가 임차해 운영 중인 66개 매장의 장부가치는 약 7조3000억원 안팎이다. 이 중 4조원은 1금융권 대출, 1조5000억원은 2금융권 대출로 파악되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투자 손실을 호소하고 있는 전자단기사채(ABSTB) 6000억원과 비교하면 시장에 미칠 파급력이 훨씬 크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