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 기대했지만 성사 가능성은 물음표
안급한 매도자-조심스런 원매자 시각차
MBK-홈플러스 사태로 PEF 원매자 위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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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M&A 시장에선 조단위 거래들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아직까지는 잠잠하다. 유동성 호황기 거래 배수를 원하는 매도자와 현재 시장 환경을 반영하려는 원매자간 시각차만 부각되는 모습이다. 국내외 정세가 불안정한 가운데 홈플러스 기업회생절차 신청 후 사모펀드(PEF)들이 주춤해진 것도 대형 거래 성사 전망을 흐리게 하고 있다.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조단위 M&A는 CJ제일제당 그린바이오 사업부를 필두로 DIG에어가스, SK에코플랜트 환경 사업(리뉴원·리뉴어스), HPSP, 클래시스, 코엔텍·코어엔텍, HS효성첨단소재 타이어 스틸코드 사업 등이다. 앞서 매각 절차를 밟았던 롯데카드와 롯데손해보험, 에어프로덕츠코리아 등도 언제든 다시 움직일 수 있는 대상으로 꼽힌다.
작년 하반기 이후 시장금리가 본격적으로 하락하면서 대형 거래를 하기 용이해졌다는 인식이 늘었다. 시장 위축기에 아직 풀리지 않은 대기 자금도 많았다. 기업들은 경영환경 악화로 사업조정에 들어갔고, PEF들은 회수에 나섰다. 시장이 들썩이면서 투자은행(IB)과 자문사, 금융사들도 지난 2년여의 부진을 만회할 기회로 보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직까진 이런 기대를 충족할 거라 낙관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매도자와 원매자간 시각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매도자는 웬만큼 급한 상황이 아니면 낮춰 팔려 하지 않고, 원매자 역시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 양쪽이 가격을 두고 물밑에서부터 줄다리기를 하는 것은 흔하지만 이전보다 그 격차가 큰 거래들이 많다.
DIG에어가스 매각은 올해 최대 거래 중 하나다. 시장의 선호도가 높은 인프라 성격 거래지만 결과는 예단하기 이르다. 매도자는 4조원을 훌쩍 넘는 가격을 원하지만 잠재 인수후보들은 3조원대가 적정하다는 분위기다. 정통 인프라산업으로 보기 어렵고 업황이나 시장 거래배수도 하락하는 추세라 3조원을 맞추기 부담스럽다는 시각도 있다.
한 IB 관계자는 "DIG에어가스는 인프라보다는 가스를 나르는 셔틀 사업에 가깝고 수요처의 경영 환경도 악화하고 있다"며 "올해 성사될 것으로 예상되긴 하지만 파는 쪽과 사는 쪽의 입장을 조율하는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SK에코플랜트는 환경 사업 매각으로 투자 원본 이상을 거두길 원하고 있다. 여러 사업을 사들이는 데 2조원을 쓴 점을 감안하면 2조원 초중반대를 바랄 것으로 보인다. 환경사업에 집중하고자 높은 가격에 인수했는데, 처리 단가와 거래 배수가 함께 낮아지고 있는 점은 부담이다. 일부 해외 투자사는 1조원 중반대 이상은 무리라는 입장을 보였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SK에코플랜트 입장에선 투자 원금 이상으로 팔아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볼트온을 통한 사업 확장까지 감안하고 들어오는 대형 투자사가 아니라면 매각자 측 기대치를 충족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용 의료기기 기업 클래시스의 시총은 3조8000억원 수준인데, 매각대상 지분 61% 가격이 최대 3조원으로 거론된다. 성장성 잠재력이 크지만 급변하는 산업 환경을 감안하면 부담스러운 숫자란 평이 있다. 반도체 공정기기 업체 HPSP도 시총 2조2000억원인데 매각대상 지분 약 40% 가치는 최대 2조원으로 언급된다. 주가가 지금보다 높을 때도 1조원 이상 몸값은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있었다.
한 인수금융 업계 관계자는 "현재 시장에 대기 중인 조단위 거래만 해도 열손에 꼽히지만 다들 가격차가 너무 크게 나고 있다"며 "M&A에 돈을 대는 입장에선 지금 상황에 원매자가 돈을 더 써서 거래가 되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매도자들은 급한 상황이 아니면 기대치를 낮추지 않고 있다. 롯데렌탈 매각은 인수자가 눈높이를 맞춰줬고, 프리드라이프는 매도자 쪽이 좀더 급해 보이는 상황이다. 원매자라고 여유가 충분한 것은 아니다. 국내 모든 산업의 실적과 거래 배수가 꺾이는 상황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 투자 실패 사례가 속속 나타나며 기관투자가들도 위축된 분위기다.
아직 시장 불안정성이 큰데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 회생절차를 신청하며 다시 찬물을 끼얹었다. 시장의 주축인 PEF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늘어나면서 대형 거래 성사 가능성이 더 불투명해졌다. 당장 MBK파트너스가 유력한 원매자로 꼽힌 CJ제일제당 사업부나 HPSP M&A도 진행이 쉽지 않아 보인다.
한 PEF 관계자는 "M&A 시장이 이제 살아나나 했는데 홈플러스 사태로 다시 분위기가 가라 앉았다"며 "당분간 중소형 거래는 물론 이름 있는 PEF가 참여하는 대형 거래도 자금 조달에 애를 먹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