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키움證도 영향력 높이며 캡티브 영업 격화
금리 왜곡에 국민연금 등 연기금·공제회 회사채 외면
현장검사 돌입하는 금감원에 숨죽이는 주관사·발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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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증권사들의 채권자본시장(DCM) 주관 경쟁이 뜨겁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경색이 장기화하면서 중·소형 증권사들은 전통 IB 강화에 힘을 주고 있다. KB증권과 NH투자증권 등 DCM 전통 강호들도 점유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영업에 더욱 열을 올리는 모양새다.
경쟁이 격화하면서 회사채 캡티브 영업 논란이 화두로 떠올랐다. 캡티브 영업은 주관 증권사들이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계열 금융사 동원을 약속하고 주관 지위를 따내는 관행이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회사채 금리 왜곡이 심화하면서 연기금·공제회 등 기관투자가들이 아예 회사채 수요예측에 참여하지 않기 시작했고 이에 금융당국이 칼을 빼들었다. 이달 중 현장 검사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데, 결과에 따라 올해 전체 DCM 판도에도 영향을 줄 것이란 분석이다.
인베스트조선이 집계한 2025년도 1분기 부채자본시장(DCM)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1분기 회사채 시장은 SK그룹과 LG그룹이 주도했다. 두 그룹사의 회사채 주관을 두고 NH투자증권과 KB증권사 사이의 경쟁이 치열했다는 후문이다. 이들 증권사는 계열 금융사의 북(book·운용 한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KB증권의 경우 KB자산운용이, NH투자증권은 농협중앙회를 수요예측에 적극 활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상 계열사를 동원한 캡티브 영업이다.
여기에 대신증권과 키움증권 등 그동안 중·하위권에 머물렀던 주관사들까지 경쟁에 뛰어들었다. 특히 대신증권은 1분기에만 약 9000억원 규모의 발행을 주관했는데, 이는 지난해 연간 기준(1조2000억원) 실적과 거의 맞먹는 규모다. 지난해 말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 인가를 받은 대신증권은 신용공여 한도가 늘어나면서 수요예측에 PI(자기자본)을 적극 활용했다는 평가다.
키움증권은 최근 핵심 역량인 '리테일'이 토스증권과 메리츠증권 등 후발주자의 사정권에 놓이는 등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내부적으로 DCM과 인수금융 등 전통 IB 부문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주관사단 참여가 힘들 경우, 인수단 참여를 적극 타진하는 등 발행사와의 관계를 트기 위한 노력이 많았다는 평가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부문 관계자는 "1분기 채권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주관사들 사이의 경쟁이 심했다"라며 "KB증권과 NH투자증권 등 대형사들의 영향력이 여전한 가운데, 키움증권과 대신증권 등 중소형사들까지 주관 경쟁에 뛰어들면서 영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주관 경쟁 속 대다수의 발행사들이 민평금리(민간채권 평가회사 평균금리) 대비 낮은 금리에서 조달을 이어갔다. 계열사를 동원해 주관 지위를 따낸 주관사들이 민평금리 이하로 수요예측에 참여한 뒤, 일부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유통시장에 물량을 넘기는 사례가 이어졌다. 일례로 LG에너지솔루션의 2년 만기 채권은 민평 이하인 3.138% 금리로 인수된 후, 당일에 4500억원 규모가 유통시장에서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캡티브 영업에 따른 금리 왜곡의 피해는 고스란히 연기금과 공제회 등 기관투자가들에 전가됐다. 내부 지침상 민평금리 대비 파(par·0bp) 수준 이하로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연기금·공제회들은 물량을 받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설명이다. 국민연금은 아예 회사채 수요예측에 참여하지 않거나, 물량을 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크게 높은 오버금리를 써내기도 했다.
한 주관사 관계자는 "올해는 국민연금이 회사채 수요예측 자체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라며 "국민연금 입장에선 실제 투자 목적으로 회사채를 인수하는데, 시장금리보다 지나치게 낮은 금리에서는 인수할 메리트가 없다 보니 '언더 발행'이 이어지는 최근의 상황에서 아예 회사채를 외면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캡티브 영업의 폐해가 진성 수요자인 연기금·공제회까지 이어지자, 금융당국도 칼을 빼들었다. 이달 중 KB증권과 NH투자증권 등 상위권 주관사들을 대상으로 회사채 캡티브 영업 현장검사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중·하위권 주관사들을 대상으로 한 검사는 예정된 것이 없지만, 현장검사에서 문제가 발견될 경우 범위를 확대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금감원의 현장검사는 국민연금을 위시한 기관투자가들의 민원에서 촉발된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캡티브 영업 관행은 최근 수년간 꾸준히 문제로 지적되어 왔지만, 금감원이 실제 검사까지 나선 데는 '트리거'가 될 만한 것이 있었을 것이란 관측이다. 앞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채권시장 캡티브 영업 관련 검사에 올 상반기 역량을 집중해 채권시장 내 불공정한 부분을 개선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가뜩이나 홈플러스 기업회생절차 사태로 리테일 시장에서 비우량 채권의 수요가 급감한 상황에서, 금융당국의 검사까지 겹치며 비우량 신용등급 발행사들의 회사채 발행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에 올해 DCM 판도는 금감원의 조사 결과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
벌써부터 회사채 시장에서는 우려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통상 회사채 발행은 연초효과로 1~2월에 발행량이 급증하고, 정기 주주총회와 사업보고서 제출이 있는 3월에는 감소한 뒤 4월에 다시 늘어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올해는 4월 발행을 준비하는 발행사들이 예년 대비 크게 줄어들었다는 분석이다. 당국의 조사를 앞두고 주관사와 발행사 모두 '숨죽이기'에 들어갔다는 평가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4월에 발행을 준비하는 기업들이 예년 대비 많이 줄었는데, 곧 예정된 금감원 감사가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라며 "A나 BBB 등급 등 비우량 신용도의 발행사들을 위주로 발행 계획을 아예 철회하거나 연기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