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재에 유리해진 풋옵션 분쟁?…교보생명 지주사 전환 시점에 달렸다
입력 2025.04.03 14:47
    ICC 강제금 효력 불인정 판결에도
    교보 입장선 금융지주 전환이 우선
    당국 심사 전 '지저분한 분쟁' 정리 필요
    IMM·EQT와 협상 시급성 커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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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법원이 국제중재판정부의 이행강제금 효력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남은 재무적투자자(FI) 간 풋옵션 분쟁 구도가 변화했다. 신 회장 측은 부담을 덜었지만, 교보생명의 금융지주 전환 일정이 빠듯해 협상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최근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제기한 '국제상업회의소(ICC) 이행강제금 부과 권한심사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중재판정부의 강제금 부과는 국내 민사집행법상 강제집행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며 ICC가 부과한 하루 20만달러(한화 약 3억원) 규모의 이행강제금 결정에 국내 집행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판결로 신 회장 측은 감정평가기관을 서둘러 지정해야 할 '30일 데드라인'에서 벗어나게 됐다. 강제금 부담이 사라지면서 남은 사모펀드와의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게 된 셈이다. 

      올해 들어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와 싱가포르투자청(GIC)은 각각 주당 23만4000원 수준에서 교보생명 지분을 매각하며 분쟁에서 발을 뺐다. 어피너티의 보유 지분 9.05%는 일본계 금융그룹 SBI에, GIC의 보유 지분 4.50%는 신한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이 만든 특수목적법인(SPC)에 매각됐다. 어펄마캐피탈도 교보생명 지분 5.33%를 주당 19만8000원에 전량 매각했다.

      현재 교보생명 주주 구성은 신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39% 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코세어캐피탈(9.9%), SBI그룹 등 우호 지분을 차례로 확보하며 신 회장의 경영권도 안정화됐다. 남은 주요 지분 보유자는 IMM프라이빗에쿼티와 EQT파트너스(각각 5.23%)뿐이다.

      IMM PE와 EQT는 여전히 풋옵션 행사 가격으로 30만원대의 가치를 주장하며 남아 있는 상황이지만, 이행강제금 결정 무효화로 법적 강제 수단이 약화되면서 신 회장 측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다만 시장에서는 신 회장이 올해 상반기 안으로 지분 매입 협상을 빠르게 마무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IMM PE와 EQT의 조건도 일부 반영될 수 있다. 

      교보생명은 연내 금융지주사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롯데손해보험, 악사손해보험, MG손해보험 등 인수를 검토하며 금융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이 때문이다. 

      교보생명 내부에서도 오는 9월 전까지 금융위원회에 인가 신청을 완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금융 당국이 심사 과정에서 남아있는 소송이나 가압류 등의 법적 분쟁을 살펴볼 가능성이 있어, 신 회장 측은 인가 신청 전 이러한 문제들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시간적 요소가 IMM PE와 EQT와의 협상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교보생명 입장에서 남은 지분을 주당 30만원 수준에 매입한다고 해도 큰 부담은 아닐 것으로 평가된다. 이미 어피너티와 GIC가 보유 지분을 각각 주당 23만원대에 매각했고, 어펄마캐피탈도 19만원대에 지분을 처분하면서 교보생명의 평균 매입 단가는 20만원대 초반 수준으로 낮아진 상태다. 이에 따라 IMM PE와 EQT의 지분을 비교적 높은 가격에 인수하더라도 전체적인 평균 단가는 크게 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교보생명은 내부적으로 IMM PE와 EQT가 요구하는 가격에 지분을 회수할 경우 LTV(대출 대비 자산가치)가 어떻게 변화할지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사모펀드인 IMM PE 입장에서도 주요 기관출자자(LP)인 국민연금의 눈치를 살펴 장기 분쟁보다는 적정 가격에 매각하는 방안을 고려할 가능성이 크다. 최종 중재 가격이 PE 측 기대보다 낮게 나오더라도 추가적인 법적 대응보다 빠른 회수를 선택할 수 있다. 이에 코세어캐피탈의 방식을 차용해 부분적 자금 회수를 모색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 IMM PE 측은 3일 보도자료를 통해 법원 판단에 항고하면서 "법원이 ICC 간접강제금 부분만 승인하지 않았을 뿐, 신 회장의 주주간계약 위반 및 풋옵션 절차 이행 의무는 명확히 인정했다"며 "향후 신속한 풋옵션 절차 진행 및 집행이 예상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코세어캐피탈은 교보생명 지분 약 9.9%를 담보로 지난달 신한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 등 5개 증권사로부터 대출을 받아 기존 기관투자자(LP)들에 일부 자금을 돌려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지분 매각이 아닌 주식담보 대출을 통한 리캡(Recapitalization)으로, 교보생명과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LP들의 자금 회수 요구에 응한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사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교보생명 입장에서는 실리를 따지면 굳이 '알박기' 수준의 남은 지분을 매입하지 않아도 되지만, 금융지주 전환이라는 숙원 사업을 위해 어느 정도 타협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이미 다수의 FI가 낮은 가격에 지분을 처분한 만큼, 남은 PE들과도 합리적인 수준에서 협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