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보다 '비즈니스 모델' 강조했지만 평가모형 부재로 상장 실패 반복
업계 "제도는 남았지만, 거래소도 철회 유도…사실상 폐지 수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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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특례 상장의 대안으로 주목받았던 '사업모델 특례상장'이 사실상 빈껍데기만 남았다는 평가가 증권가에서 제기되고 있다. 적자 기업도 독창적인 사업모델을 기반으로 상장을 추진할 수 있도록 했지만, 결국 '수치' 위주로 심사 요건이 재편되며 최근 들어 상장 심사를 통과한 사례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사업모델 특례상장은 2017년 도입됐다. 기술성 평가가 어려운 플랫폼이나 콘텐츠 기반 스타트업의 상장을 지원한다는 취지에서 출발한 제도로, 기술력 대신 독창적인 사업모델(BM)과 시장성·성장성을 바탕으로 상장을 추진할 수 있도록 했다. 도입 초기에는 플리토, 캐리소프트, 와이더플래닛 등 기업들이 이 제도를 통해 증시에 입성하며 주목을 받았고, 업계에서도 하나의 유효한 상장 경로로 간주됐다.
하지만 최근 흐름은 전혀 다르다. 한국거래소와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사업모델 특례상장을 통해 상장한 기업은 총 11곳에 불과하며, 이 중 절반 이상이 2021년 이전 상장 기업이다. 2022년 이후에는 연간 1~2곳 수준으로 급감했고, 올해 초 보험진단 앱 '보닥'을 운영하는 아이지넷이 가장 최근 상장에 성공한 사례다. 업계는 "상장 신청은 가능하지만, 통과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상장을 시도했던 삼쩜삼 운영사 자비스앤빌런즈는 사업모델 특례상장 심사에서 미승인 판정을 받은 뒤 일반 상장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명 뷰티 플랫폼 '화해'를 운영하는 버드뷰, 메디컬 에듀테크 기업 쓰리디메디비젼 등도 비슷한 시기 특례 상장을 타진했지만, 심사에서 탈락하거나 자진 철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가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는 타당한 평가모형의 부재다. 기술성 특례는 기술 평가 전문기관의 정량적 기준을 따르지만, 사업모델 특례는 '시장성'과 '성장성' 등 정성적 요소를 기반으로 평가가 이뤄진다. 이 때문에 구체적인 평가 지표나 기준이 없어 결국 '매출' 등 실적 중심으로 귀결되면서, 해당 특례의 본래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상장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레퍼런스가 부족한 독창적 모델일수록 평가 과정에서 주관성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며 "결국 기업가치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해 자진 철회로 이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증권사 내부적으로도 사업모델 특례 트랙은 사실상 상장 전략에서 제외된 분위기다. 한 대형 증권사 IPO 담당자는 "2023년부터는 해당 트랙을 아예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거래소와의 사전 협의 과정에서부터 부정적인 신호를 받는 경우가 많아, 애초에 상장 시도 자체를 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증권사는 고객사에 일반 상장이나 기술특례 등 우회 전략을 먼저 제시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사업모델 특례상장에 대해 폐지를 검토한 바 없고, 기업이 요건을 충족하면 언제든 신청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거래소가 사전 협의 단계부터 자진 철회를 유도하는 분위기여서 사실상 제도는 남았지만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라고 지적한다.
이를 두고 전문심사기관 출신 업계 관계자는 "거래소의 '투자자 보호' 기조가 강화되면서 사업모델 특례 역시 매출 등 현실적 지표에 무게를 두는 경향이 짙어졌다"며 "과거 이 제도를 통해 상장한 기업들의 실적 부진이 누적되면서 심사 기준이 더 엄격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과거 사업모델 특례를 통해 상장한 기업들 중 상당수는 상장 이후에도 흑자 전환에 실패하거나 주가가 공모가를 하회하는 등 시장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시장성과 성장 가능성이 있음에도 사업모델 특례상장을 포기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며 "거래소의 보수적 심사 기조 역시 일정 부분 이해가 가나, 이 제도가 실효성을 유지하려면 단순 매출 외에도 특례 도입 취지에 맞는 실질적 평가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