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화號 포스코의 정중동, 전략적 관망인가 결정 회피인가
입력 2025.04.07 07:00
    취재노트
    삼성·현대차·LG 모두 美中 대응 본격화…포스코는 입장 없어
    길어지는 관망세 결국 리스크로…"선택지만 줄어든다" 평
    결정 못하는 리더십이 그룹 전반 비용으로 돌아오는 구조
    "선거철 특유 결정 회피"…결국 돌고돌아 '외풍' 키울 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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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삼성SDI의 2조원 유상증자와 LG에너지솔루션의 20억달러 외화채 발행, 현대제철의 8.5조원 규모의 미국 전기로 투자 등등 지금 재계는 결단을 내리고 있다. 미국에 대처하려면 계획에 없던 투자라도 어떻게든 돈을 모아 페달을 밟아야 한다는 위기 인식이 읽힌다. 결정을 늦출수록 치러야 할 부담만 늘어날 것이라는 긴박감도 엿보인다. 

      반면 포스코그룹은 정중동(靜中動)이다. 민간 리더십이 정부 공백을 메워야 하는 상황인데 다른 그룹사와 비교하면 온도차가 극심하다. 내부에서 "타이밍을 놓쳤다"는 우려가 새나오니 외부에서도 슬슬 관망보다는 전략 부재나 결정 회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포스코그룹이 자금조달을 최소화하며 관망세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작년부터 투자은행(IB)업계에서 오르내렸다. 장인화 회장 취임 이후로 예정된 그룹의 조달 계획이 줄줄이 뒤로 미뤄졌다. 당시만 해도 최정우 전 회장 당시 비중이 커진 2차전지 소재 등 신사업과 본업인 철강 사업을 새로 점검할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리더십이 바뀐 만큼 전열을 재정비할 시기로 받아들여진 셈이다.  

      그러나 관망이 길어지니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쏟아진다. 다른 그룹이 노선을 정하고 리스크를 떠안는 시기에 포스코는 내세울 전략 없이 '검토 중'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리더십 교체 과정에서도 말이 많았는데, 1년 넘게 '검토 중'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답답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며 "2차전지 같은 비(非)철강 신사업뿐 아니라 철강 문제도 어떻게 할 것인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삼성SDI는 이달 2조원 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 발표를 앞두고 그룹 차원에서 금융당국과 사전 교감까지 마쳤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중국 출장길에 올라 현지 전기차 업체와 삼성전자 전장 사업 협력을 논의했다. 주가가 떨어진 때 유증에 나서면 주주 반발이 예상되지만, 그룹 차원에서 미국과 중국 문제에 대응하려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LG그룹에선 구광모 회장이 직접 나서 LG에너지솔루션을 위시한 그룹 내 2차전지 사업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2차전지 산업에 대한 위기감이 더 커지기 전 그룹 차원에서 중점 사업으로 키워가겠다는 의지를 재차 드러낸 것이다. SK그룹 역시 지난해 리밸런싱(사업 조정) 작업을 통해 알짜 계열사를 SK온에 합병시키는 방식으로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포스코퓨처엠은 어떨까. 2년여 동안 유상증자를 둘러싼 설왕설래만 이어지다 내부에서 시작된 실기(失期) 우려가 밖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계약한 수주 물량을 소화하려면 어차피 자본 확충을 서둘러야 하는데 머뭇대는 사이 주가는 고꾸라지고 잠재 재무적투자자(FI)들의 눈높이는 턱없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그룹이 2차전지 리스크를 지지 않으려 하던 것이 역으로 리스크만 키운 상황으로 분석된다.

      현대차그룹까지 현대제철을 위시한 북미 전기로 진출 계획을 내놓으면서 대비감은 더 짙어지고 있다. 2차전지가 전임 회장의 유산이고 현 리더십의 전문성은 철강에 있다는 식 접근도 무색해지고 있단 평이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포스코가 꼭 현대차나 삼성, LG처럼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업계가 걱정하는 건 전략 자체가 없어서 결정을 못 하는 상황"이라며 "작년 이후 내부에서 산업용 가스나 액화천연가스(LNG) 등 신사업 얘기도 있었고 최근 해외 에너지사와 인수합병(M&A) 얘기도 나왔지만 장인화 회장이 그만한 결정을 내릴 수 없을 거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선거를 앞두고 '주인 없는 회사'의 전형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의 현지 전기로 진출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도 많다. 트럼프 2기 행정부를 의식해 서둘러 선물을 안겨봤자 기대한 만큼의 소득을 올리기 힘들 가능성도 충분한 탓이다. 마찬가지로 오너가 직접 나서고 있는 다른 2차전지 기업들 역시 증자를 통해 추가 투자를 이어간다고 해도 투하자본수익률(ROIC) 등 지표가 개선될 거란 보장은 없는 상태로 파악된다. 

      그러나 지금은 결정을 늦추는 것 자체가 비용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커보인다. 결정하지 못하는 리더십 아래에선 전략도 기회도 만들어지지 않으니 차라리 불확실성에 적극 대응하는 게 낫다는 얘기다. 지금 같은 행보가 이어지면 장 회장 임기 만료를 전후해 그룹 리더십이 또 한 번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포스코그룹을 오래 상대한 커버리지 인력 사이에선 선거철 특유의 결정 회피 문제를 익히 알고 있다. 과거에도 회장 연임 문제로 중요 결정을 그르친 전적이 많다"라며 "외풍에 취약한 고질적인 지배구조 문제 탓에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지만 그럴수록 자꾸 외풍에 노출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