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파고 생각보다 높다"…현대차그룹 투자의견 줄하향
입력 2025.04.08 07:00
    자동차 25% 관세 현실화…“현대차 실적 하반기부터 꺾일 것”
    증권가 기류 변화…매수 의견 줄고, 실적 추정치 조정 본격화
    국내 정치 불확실성도 겹쳐…관세 협상, 새 정부 자리잡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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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미국의 관세 부과가 현실이 되면서 현대차그룹을 바라보는 증권가 시각도 변화하는 모습이다. 그간 '저점 매수' 기조 속 투자의견 '비중 확대(Overweight)'가 유지돼 왔다. 다만 실적 부진이 본격화될 가능성에 일부 증권사를 중심으로 투자의견과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외국산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로써 한국에서 생산된 완성차도 미국 수출 시 25%의 관세가 적용된다.

      7일 현대차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6.62% 하락한 17만9100원에 장을 닫았다. 지난 3월 27일 미국이 외국산 자동차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한 이후, 현대차 주가는 이날까지 20%가량 하락했다.

      관세 부과는 이미 예고돼 있었던 만큼, 공식 발효 이후에도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증권가는 "지금 주가에는 불확실성에 대한 악재가 이미 선반영돼 있다"며 여전히 저점 매수 구간이라는 판단을 유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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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투자증권은 1월 보고서를 통해 "미국은 즉각적으로 관세를 부과하기 보다 협상을 통해 타협점을 찾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리스크가 수면으로 드러난 현 시점이 매수 기회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SK증권도 "미국의 관세 부과 리스크 등으로 한국 완성차에 대한 우려가 팽배하다"며 "하지만 2025년부터는 미래 성장동력에 대한 비전 제시가 기대되고, 현재 PER 4배의 밸류에이션에서는 긍정 편향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두 회사 모두 현대차에 대해 매수의견을 유지했다. 

      그런데 일부 증권사를 중심으로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된다. 미국발 관세 정책과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겹치며 내년까지 현대차의 실적 개선세가 나타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한국투자증권은 3일 현대차에 대한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 조정했다. "관세 불확실성이 확대되는데, 이를 극복할 보다 확실한 지표 확인이 필요하다"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확인하기 위해 인센티브 절감, 평균판매단가(ASP) 확대 및 판매량(볼륨) 성장 확인이 필요한데 이들 지표는 모두 내년까지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은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를 한국산에 15%의 관세를 부과하는 경우로 봤다. 이 경우 현대차에 대한 총 관세 부과 금액은 3조870억원으로, 추정 영업이익의 22.7%라고 분석했다. 최악의 시나리오로 따졌을 때 현대차의 올해 말 기준 주가수익비율(PER) 멀티플은 7.1배로 높아진다고 내다봤다. 

      키움증권은 올해 1월 선제적으로 현대차에 대한 목표주가와 투자의견을 하향 조정했다. 키움증권은 "현대차가 고부가가치 신차 출시에도 불구하고 볼륨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미국 내 자동차 정책 변화 등 외부 변수에 충분히 대응할 것으로 기대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따른다"고 분석했다. 

      키움증권은 지난달에도 보고서를 통해 "한국과 미국, 양국 정부 차원의 대미(對美) 자동차 수출 관세 관련 유의미한 협상 진전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완성차 비중 확대의 근거를 발굴하기 어려운 시기"라고 밝혔다.

      대신증권도 7일 보고서를 통해 현대차에 대한 목표주가를 기존 31만원에서 28만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목표가 조정 이유로 미국의 관세 리스크에 따른 실적 하향 및 밸류에이션 할인율 확대를 꼽았다. 회사는 "관세 부과 확정으로 불확실성이 완화된 만큼, 앞으로는 현대차의 대응 전략과 실적 방어 능력이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대차가 실적 방어를 이룰 수 있는 요인으로는 ▲현대차 미국생산법인(HMGMA)을 중심으로 한 현지 생산 확대(2025년까지 연 10만 대 이상), ▲GM과 협력한 공급망 효율화, ▲2024년 2분기부터 4분기까지 평균환율(1375원) 효과, ▲밸류체인 전반의 비용 분담을 통한 실적 방어를 꼽았다. 

      증권사 관계자는 "확정된 관세율에 따라 앞으로 나올 보고서에는 실적 추정치들이 조정되고, 투자 의견도 하나 둘 하향될 것으로 본다"며 "지금 현대차 주가가 주가수익비율(PER) 4배 수준이라 저렴한 구간이라지만, 단순 계산으로 관세 영향을 매겨보면 현대차는 PER 8배 회사인 셈"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그간 증권가가 미국의 자동차 관세를 다소 안이하게 받아들였단 분석도 내놓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자동차 관세가 25%까지 부과되진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이후 단 한 번도 해당 입장을 번복한 적이 없었던 만큼,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영업익 감소세에 대한 의견은 나뉘는 상황이지만, 투자업계는 하반기부터 현대차의 실적이 꺾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자동차 관세 정책이 본격 시행되면서 현대차그룹이 입을 피해 규모는 수십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수출 물량은 총 101만5005대로 이 중 현대차가 63만7638대, 기아가 37만7367대를 차지했다. 차량 1대당 평균 가격을 약 4000만원으로 어림잡아도 25%의 관세율이 적용되면 관세로만 10조원에 가까운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제는 내수 시장에서도 위험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차의 경우 통상 월간 재고 수준이 약 4만대 안팎이지만, 3월 마감 기준 재고가 5만대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치상 1만대 차이는 크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5만대까지 재고가 늘어난 사례는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수준이라는 평가다.

      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하며 업황 회복 속도가 다소 늦어질 수 있단 시각도 있다. 차기 대선 일정이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현재로서는 6월 내에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이 우세하다. 업계는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는 한미 간 관세 관련 협상이 본격적인 진전을 보이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를 포함해 대부분의 산업이 2025년 한 해 동안은 관세 리스크에 노출된 상태로 갈 가능성이 크다"며 "차기 정부가 들어선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나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자동차 업종 역시 보수적인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발표된 대부분의 현대차 관련 증권가 리포트는 관세 변수를 실적 추정에 반영하지 않았다. 관세 부과 여부가 불확실했던 탓이다. 앞으로는 관세 영향을 반영한 리포트들이 나오며, 실적 전망치 변경과 함께 투자의견도 하향 조정될 수 있단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