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건설, 케이스퀘어 마곡 소수지분 매각 추진
부동산 외 솔루스·한샘 등 주식도 검토 대상
"신 회장도 의견 경청"…시장서 적극 행보
조급한 IPO·월드타워 담보 행보는 비판도
-
롯데그룹이 부동산 자산을 넘어 소수지분까지 매각에 나서며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간 부동산 자산 재평가로 시장에 '굳건하다'는 메시지만 보내던 그룹이 최근 실질적인 매각 작업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롯데그룹의 변화된 행보에 시장에서는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너무 급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부정적 시각이 공존하는 분위기다.
롯데건설은 마곡 CP3-2 오피스 '케이스퀘어 마곡' 지분 30%를 매각하기 위해 자문사들과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코람코자산신탁이 리츠를 통해 약 7000억원에 선매입한 오피스 지분을 매각해 2000억원 정도의 자금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이외에도 롯데건설은 5000억원 이상이 거론되는 서초 잠원동 본사와 함께 3000억원 규모의 민간임대 리츠 지분을 모두 매물로 내놓았다. 금천구 독산동과 영등포구 문래동 공장부지, 용산구 원효로 역세권청년주택 등도 매각 대상이다.
롯데건설의 이러한 움직임은 전 계열사로 확산되고 있다. 롯데정밀화학이 보유한 솔루스첨단소재(舊두산솔루스) 지분 약 23%, 롯데쇼핑의 한샘 지분 15% 등 여러 비핵심 자산들이 매각 검토 테이블에 올라온 상황이다. 이는 과거 '전략적 보유 자산' 카테고리에 포함됐던 항목들로 알려졌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롯데건설이 소수 지분이라도 처분해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세웠다"며 "수익성과 전략적 중요도를 기준으로 모든 자산을 '제로베이스'에서 재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의 이 같은 변화는 재무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면서다. 2024년 기준 공정거래위원회 집계 롯데그룹의 자산총액은 130조원, 부채총액은 77조원에 달한다. 매출 67조원에 당기순이익은 1조원에 그쳤다. 연말 기준 총차입금은 39조원으로 본업만으로는 상환하기 어려운 구조다.
그중에서도 그룹 지배회사인 롯데지주의 별도기준 순차입금 의존도는 지난해 39.7%, 이중레버리지 비율은 171.7%로 위험 수준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1분기에만 갚아야 하는 단기차입금이 약 2조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추가 차입만으로는 부채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롯데지주 차입금에는 대부분 트리거 조항이 포함돼있다. 신용등급이 하락할 경우 총 6620억원의 차입금을 두고 기한이익상실(EOD) 위험이 발생하는데, 1단계만 하락하더라도 3700억원을 즉시 상환해야 한다.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는 롯데케미칼의 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변경하며 롯데지주의 통합신용도 하락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자보상배율(EBITDA/이자비용)도 2021년 3.2배에서 2023년 0.9배로 급락했다. 이자보상배율이 1이하라는 것은 영업활동으로 창출한 이익으로 이자비용도 충당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의미다.
-
위기감 속에 신동빈 회장은 직접 경영 전면에 나섰다. 최근 롯데쇼핑 사내이사로 복귀한 신 회장은 노준형 경영혁신실장 사장과 함께 자산 매각에 적극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 임원들과 외부 자문사들은 "우리가 봐도 아까운 매물을 내놓아야 시장에서 산다"며 신 회장을 설득했고, 작년과 달리 이러한 의견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요즘엔 신 회장도 임원들 말을 경청하는 분위기다. 작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라며 "그간 롯데의 자산 가치에 대한 자부심이 매각을 주저하게 했지만, 이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내부 목소리도 높다"고 말했다.
신동빈 회장이 직접 나서자 계열사들도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롯데그룹 계열사는 최근 인천 공장 부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가 철회하는 과정에서 비교적 큰 규모의 위약금까지 지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롯데그룹 내부에서 '책임 회피'보다 '신속한 의사결정'이 더 중요해졌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롯데그룹은 그간 의사결정에서 책임 소재를 중시해 손해가 발생할 수 있는 결정은 회피하는 경향이 강했다. 매각 결정이 지연되거나 필요한 구조조정이 미뤄지는 경우가 빈번했던 탓이다. 그런데 이젠 경영진이 시장 반응에 꽤나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평가다.
한 자문사 관계자는 "예전 같았으면 임원들이 책임 소재 때문에 위약금 지불 같은 손실이 발생하는 결정을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계약을 철회하더라도 위약금을 내는 결단을 내렸다는 건 이전과는 그룹의 기조가 달라졌다는 명확한 신호"라고 분석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롯데그룹의 매각 행보가 급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재무적투자자(FI)들이 입은 3000억원의 손실을 보전하면서까지 강행하는 롯데글로벌로지스의 기업공개(IPO), 잠실 롯데월드타워의 롯데케미칼 회사채 담보 제공 등은 오히려 시장에 부정적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롯데그룹의 조급함이 실제로 롯데물산 등 계열사 자금 조달에 영향을 줬다는 평가도 나온다. 롯데물산이 소유하고 있는 월드타워가 롯데케미칼 담보로 잡히면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일부 증권사가 올해 상반기 롯데물산 회사채 주관을 거절하는 사례가 있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너무 급하게 매각하다 보면 자산 가치의 훼손이 불가피하다"며 "시장이 이를 '디스트레스 세일(distress sale)'로 인식할 경우 다른 자산 매각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시장은 롯데의 변화된 행보를 두고 '불가피한 선택'과 '조급한 움직임' 사이에서 엇갈린 평가를 내놓고 있다. 향후 롯데그룹이 생존의 기로에서 이러한 변화를 성공적인 구조조정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지, 아니면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임시방편에 그칠지는 더 지켜봐야 할 문제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의사결정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