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산업 매각, 높은 '중국 의존도'가 밸류업 포인트?
입력 2025.04.11 07:00
    애경, 유동성 마련 위해 그룹 '모태' 매각 나서
    높은 중국 의존·낮은 브랜드 경쟁력 극복 관건
    원매자들, 글로벌 확장 가능성 계산기 두들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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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애경그룹이 그룹의 모태이자 핵심 계열사인 애경산업의 경영권 매각에 나섰다. 재무적 유연성 확보와 투자 재원 마련이 주요 배경이다. 하지만 시장의 시선은 냉랭하다. 높은 중국 의존도와 브랜드 경쟁력 약화라는 구조적 한계를 잠재 인수자에게 어떻게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을지가 매각의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다.

      애경 측은 ‘K-뷰티’ 브랜드의 글로벌 확장 가능성과 중국 내 유통 기반을 핵심 ‘셀링 포인트’로 제시할 계획이지만, 업계에서는 전략적 투자자(SI)보다 사모펀드(PEF) 등 재무적 투자자(FI) 위주로 인수 후보군이 좁혀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K-뷰티 업황이 주춤한 가운데, 이러한 포인트가 실제 밸류에이션에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9일 투자금융(IB) 업계에 따르면 애경그룹은 애경산업의 경영권 지분 63% 매각을 본격 추진 중이다. 2024년 기준 애경산업의 연결 매출은 6791억원, 영업이익은 468억원,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은 630억원 수준이다. 매도 측 희망가는 약 6000억~7000억원으로, EBITDA 기준 16배 수준의 멀티플이다. 이는 국내 업계 1위인 아모레퍼시픽의 밸류에이션 수준에 근접한다.

      문제는 실적 모멘텀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2024년 4분기 매출은 1711억원, 영업이익은 3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6.5% 급감했다. 중국 수출 부진, 글로벌 마케팅비 증가, 생활용품 부문의 원가 부담이 실적을 끌어내렸다.

      특히 중국 의존도는 잠재 리스크로 꼽힌다. 2024년 기준 중국 매출은 1642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24%를 차지한다. 애경산업의 화장품 부문은 전체 매출에서 70%가 수출로 이뤄지고, 수출의 80% 이상이 중국에 집중돼 있다. 중국이 주력 시장이긴 하지만, 중국 내 한국 화장품 점유율이 꾸준히 하락하는 점은 부담 요인이다. 또한 중국에서 화장품 유통을 특정 밴더사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우려 요소로 꼽히고 있다.

      사드(THAAD) 사태 등을 겪은 후 국내 브랜드들은 지난 몇 년 동안 미국과 일본 등 대체 시장 공략에 공을 들여왔다. 그 결과 '급성장' 성과를 이룬 곳들은 모두 일찌감치 미국과 일본 등 글로벌 유통망을 확보해 둔 업체들이다. ‘조선미녀(Beauty of Joseon)’, ‘티르티르(TIRTIR)’ 등은 각각 미국, 일본 유통망을 확보하며 현지 브랜드를 제치고 점유율을 확장 중이다. 

      이들은 글로벌 유통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브랜드 가치와 밸류에이션을 끌어올리고 있다. 국내 1등 H&B(헬스앤뷰티) 스토어로 인디 뷰티 브랜드들의 '등용문'으로 통하는 CJ올리브영은 최근 미국 오프라인 매장에 진출하며, 본격적인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선 상태다.

      애경 측은 이와 같은 중국 의존도를 오히려 밸류업 요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자리 잡은 시장을 바탕으로, 향후 미국·일본 등 신규 시장으로의 전환이 이뤄진다면 ‘업사이드’가 크다는 논리다. 대표 브랜드 ‘에이지투에니스(AGE 20’s)’는 한때 중국 홈쇼핑과 왕홍 채널에서 성공한 경험이 있다. 이는 콘텐츠형 마케팅에 강점을 지닌 브랜드로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브랜드 경쟁력이 과거만 못하다는 것은 우려 요소로 꼽힌다. 

      ‘루나(LUNA)’와 ‘에이지투에니스’ 모두 글로벌 확장성이나 독보적인 포지셔닝 측면에서는 최근 성장하는 브랜드에 밀린다는 평이다. 에이지투에니스는 과거 홈쇼핑 위주의 유통 채널을 통하다 보니 '중년층 화장품' 인식이 강하고, 루나는 최근 인디 브랜드들의 급성장 속에서, MZ세대가 중요시하는 감성·성분 중심의 트렌드에 대한 대응력에서 두드러진 강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현재 잠재 인수 후보군 대부분은 국내 PEF로 구성돼 있다. 여러 차례 뷰티 산업에 투자했던 PEF들은 이미 화장품 산업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어, 단순히 ‘K-뷰티’ 트렌드만으로 인수를 결정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구체적인 브랜드 리빌딩 전략과 해외 유통 파이프라인 확보 여부가 투자 결정의 핵심 요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뷰티 시장 경쟁이 치열한 만큼, 더욱 성장할 수 있는 확실한 제품 경쟁력이나 브랜드 인지도가 없으면 투자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한 대형 PEF 관계자는 "애경산업은 다수의 PEF들이 검토를 하긴 했으나, 생활용품 부문은 밸류업 여지가 크지 않고, 뷰티 부문은 단순 실적뿐 아니라 향후에도 성장할 수 있는 제품 경쟁력 등 '엣지'가 있어야 매력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글로벌 화장품 시장에서는 유통 파이프라인이 밸류에이션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미국 시장에 초점을 맞춘 구다이글로벌은 조선미녀와 티르티르를 각각 인수했으며, 이들 브랜드는 기존 아마존·세포라 라인을 발판으로 빠른 시장 안착에 성공했다. 

      이미 K-뷰티 브랜드들의 집중 수출처는 북미 쪽으로 이동한 상황이다. 미국국제무역위원회(USITC)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미 화장품 수출액이 17억100만 달러(약 2조5000억원)를 기록했다. 이는 전통 '화장품 강자' 프랑스(12억6300만 달러·약 1조8000억원)보다 높은 수치다.

      이에 비해 애경산업은 중국 편중형 유통 채널 구조로 인해 글로벌 다변화 가능성을 입증하지 못한 상태다. 그나마 작년에 실리콘투와 손잡고 미국 진출을 타진하기 시작했다.

      그룹의 유동성 위기 속 ‘서둘러 내놓은 매물’이라는 인식도 부정적이다. 이 때문에 일부 시장 관계자들은 SI를 끌어들이는 전략이나, 브랜드 사업부 분리 매각 등 다양한 시나리오 검토도 필요하다고 본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애경산업이 가진 브랜드와 유통 자산의 잠재력은 분명히 존재한다”면서도 “PEF 입장에선 단순 수익화보다는 해외 확장 전략이 명확해야 투자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미국과 일본 시장에서의 성과 가능성이 입증되지 않는 한, 희망 밸류에이션을 그대로 인정받긴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