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상거래채권에 MBK 찔끔 사재출연…임대 채권자 상대로는 혼선 유도
입력 2025.04.11 15:25|수정 2025.04.11 15:26
    김병주 회장 DIP 지급보증 등 1천억대 출연
    사태 파장 감안하면 출현 실효성 크지 않아
    임대차 계약 이행·해지 놓고는 버티기 전략
    해지권 있는 회생담보권? 이해상충 가능성
    임대인 불안·혼선 활용해 이익 챙긴다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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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사재를 출연하며 홈플러스 상거래 채권 변제에 나섰지만 사태 전반을 해결하기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홈플러스 기업회생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임대료 채권 문제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홈플러스가 법률 기술을 활용해 임대인들의 혼선과 불안을 유도하며 판을 흔들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 10일 큐리어스파트너스는 홈플러스에 600억원 규모 DIP(Debtor-In-Possession financing) 금융 대출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김병주 회장은 이에 대해 지급보증을 서기로 했다. 김 회장은 지난달 개인 자금 수백억원을 증여해 소상공인 채권 변제에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DIP 지급보증을 포함한 사재출연 규모는 1000억원 안팎으로 거론된다.

      개인 자격으로 적잖은 금액을 부담하지만 시장의 평가는 우호적이지 않다. DIP는 공익채권으로 분류돼 법원의 허가를 받아 수시로 변제 받을 수 있다. 사실상 우선권을 갖기 때문에 보증은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다. 홈플러스는 유동성 위기를 알면서도 사채 등을 발행했다는 시선을 받는데 이 금액도 수천억원에 달한다. 사재출연 규모가 크지 않고, 용도도 소상공인 지원으로 한정한 만큼 실효성이 크지 않다.

      정치권의 시선도 곱지 않다. 국회에서 사재 2조원을 출연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사재출연 규모가 성에 찰 리 없다. 김병주 회장은 10일까지 사재출연 방안을 제출하라는 국회의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이 김 회장에 대한 청문회를 열기로 방침을 정했고, 국민의힘과도 일정 등에 대해 협의할 예정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정치권이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국회도 별다른 강제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며 "김병주 회장이 외국 국적인 점까지 감안하면 추가적인 사재출연 압박이 큰 의미가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홈플러스는 회생절차의 핵심인 임대료 채권 문제 해결에 대해서도 석연 찮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단 회생절차 개시명령 신청서에 매각후 재임차(S&LB) 방식으로 매각한 점포 중 차임이 과다한 곳에 대해 '계약해지권을 활용한 후 해지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에 대하여는 회생담보권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사용'한다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임대인을 소유자가 아니라 '담보권을 가진 채권자'이며 임대료 채권이 아니라 금융리스로 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임대차는 서로 의무를 갖는 계약(쌍무계약)이다. 회생기업의 관리인은 계약을 해제·해지하거나 상대방에 채무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 상대방은 계약의 해제나 해지 혹은 그 이행 여부를 확답해달라고 최고(催告)할 수 있다. 즉 회사 쪽에서 계약 해지를 거론한다는 것은 쌍무계약임을 인정하고, 이는 상대방에 부동산 소유권과 임대권이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신청서 상의 '회생담보권' 언급과는 배치된다.

      임대 채권은 공익채권으로 수시 변제할 수 있다. 반면 회생담보권이나 회생채권이라면 회생계획과 변제율 등이 확정된 후에야 변제가 가능하다. 홈플러스가 임차료를 내지 않는 것도 그런 명분을 활용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쌍무계약의 해지권이 있다"는 주장과 "회생채권이라 지금 돈을 줄 수 없다"는 논리가 상충되는 모습이다.

      홈플러스는 회생절차를 신청하며 29곳의 채권자 목록만 제시했다. 최대 금융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을 제외하고라도 무수한 이해관계자가 있는 것이 뻔한데 대부분 누락됐다는 것이다. 처음 채권자 목록에 들어간 곳은 전자 방식으로 기록열람·등사가 가능하지만 그 외의 곳들은 법원에 직접 가서 요청해야 한다. 

      채권자들의 '접근성'을 제한하기 위해 이런 수를 썼던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회생절차가 시작되자 임대 채권자들은 계약 해제·해지, 이행 여부를 알려 달라고 홈플러스에 최고했다. 그러자 홈플러스는 채권자들에 최고를 철회해달라고 했다. 답을 하면 임대차 계약이 유효성이 확인되고 임차료 할인 등 협상이 어려워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채권자들이 철회를 하지 않고 버티자 홈플러스는 법원의 허가를 얻어 5월 이후로 답변 시한을 늘려놨다.

      홈플러스는 벌어둔 말미를 활용해 개별 채권자들과 협상을 통해 임대료를 깎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회사는 이달 부동산투자펀드·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에 임대료를 삭감(공모 상품은 기존 임대료의 30%, 사모 상품은 50%)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는데 채권자들이 이를 받아들이긴 쉽지 않다.

      부동산 투자사들은 자본금과 대출금을 활용해 홈플러스 점포를 인수한다. 홈플러스로부터 임차료를 받아 대출금 이자를 내고, 나머지를 출자자에 돌려주는 방식이다. 다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대출 금리가 높아졌고 수익률은 바닥 수준이 됐다. 50%는 커녕 10%만 임대료를 깎아도 기한이익상실(EOD)이 날 곳이 수두룩하다.

      높은 임대료에 근거해 점포를 비싸게 팔았던 홈플러스가 투자자들의 불안을 활용해 부담을 줄이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어차피 메리츠금융 채권은 손댈 수 없고, 상거래채권은 어떻게든 갚아줘야 하니 결국 남은 것은 '폐점' 공포를 무기로 한 임대료 인하 협상뿐이기 때문이다.

      임대료 할인율을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이 적절하느냐는 의문도 있다. 멀쩡히 돈이 벌리는 홈플러스 매장이라면 임차료를 할인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MBK파트너스와 홈플러스 입장에선 모순된 주장을 해소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지금까지는 법률 기술 뒤에 숨어 불확실성과 불안감을 활용해 채권자들을 압박하는 양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