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츠증권, 고수익 구조화 모델서 전통 IB로 외연 확장
정영채 전 NH 사장 영입 시작으로 IB 인력 50명 이상 보강
단기 성과 문화 속 관계 기반 IB 안착 가능성엔 물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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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PF와 고금리 대출 중심의 사업 모델로 ‘고리대금업’ 이미지를 안고 있던 메리츠증권이 정통 IB 시장으로 발을 넓히고 있다. 증권업계에선 커버리지 중심의 기업금융 모델에 메리츠가 안착해 실제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분위기다.
메리츠의 정통 IB로의 전환 시도는 정영채 전 NH투자증권 사장을 상근고문으로 영입하면서 본격화됐다. 이후 NH투자증권 출신 송창하 본부장을 기업금융본부장으로 선임했으며, ECM, DCM, 신디케이션 각 부문에도 업계에서 손꼽히는 인물들을 잇따라 영입했다. 메리츠는 2024년 말까지 IB 인력만 50명 이상 충원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재도 주니어 인력에 대한 지속적인 접촉이 이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메리츠는 자기자본 규모가 커진 만큼 리스크 분산을 위한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말 기준 메리츠증권의 자기자본은 6조9000억원으로, 미래에셋·한국투자·NH·삼성·KB 등 대형 증권사 바로 뒤를 잇는다.
메리츠는 IPO를 통해 리테일 고객을 확보하고, 회사채·신디케이션 영업을 통해 기관 고객과의 접점을 넓히는 등 WM과 기업금융을 양축으로 하는 정통 IB 모델을 빠르게 이식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달에는 이경수 브레인자산운용 대체투자부문 대표를 ECM 담당 임원으로 내정했다. 삼성증권과 KB증권을 거친 이 대표는 IPO 실적을 끌어올린 경력으로 평가받는다. 개인 고객 기반 확대와 WM 수익 확장까지 염두에 둔 행보로 풀이된다.
메리츠는 기존의 구조화 역량을 정통 IB에 접목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업금융본부가 소싱한 딜을 구조화본부가 셀다운하거나 일부를 직접 인수하는 형태로, 내부의 구조화 노하우와 커버리지 조직이 협업하는 구조로 파악된다.
특히 메리츠는 중위험 중수익으로 평가되는 인수금융 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기존의 프라이싱 및 위험 계량 역량을 기반으로 셀다운 물량과 인수 구조를 유연하게 조절해나간다는 구상이다.
그럼에도 불구, 회의적인 시선은 여전하다. 메리츠는 주로 부동산PF와 스페셜시츄에이션(SS) 상황에 몰린 기업들에 고금리로 자금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수익을 내온 까닭이다. 고려아연, 롯데건설 등 한계에 몰린 기업에 단기간에 대규모 자금을 집행하고 높은 수익을 거두는 구조였다.
이런 방식을 두고 업계에선 메리츠의 뛰어난 리스크 계량 능력과 자기자본 운용력을 바탕으로 한 모델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기업과 장기적 관계를 구축하긴 어려운 방식'이라는 부정적 평가도 공존했다. 커버리지 업무는 오랜 스킨십과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하는데, 메리츠의 단기 성과 중심 조직 문화는 관계 기반 IB 모델과 충돌할 수 있어서다. KB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기존 플레이어들과의 네트워크 경쟁에서 메리츠가 단기간 내 자리를 잡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대기업 딜은 KB, NH, 한투가 꽉 잡고 밥그릇을 안 내주고 있는데, 메리츠증권이 그 사이를 어떻게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PF는 저성과 직원을 자르면 그만이지만, 커버리지는 2~3년은 지켜보며 관계를 쌓아야 하는 영역이다. 지금 같은 메리츠 스타일로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통 IB로의 전환이 메리츠의 기존 강점을 희석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PI(자기자본 투자) 기반으로 소수 기업에 집중해 고수익을 추구하던 방식과, 셀다운을 통해 위험을 나누는 정통 IB 모델은 자본 운용 방식부터 고객 관계의 구조까지 다르기 때문이다. 메리츠는 부동산 담보 평가 역량을 적극 활용하고, 자기자본을 활용한 투자 비중을 높이는 방식으로 기존 강점을 녹여내는 방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메리츠가 지속적으로 경쟁사 인력을 흡수하며 비즈니스 확장에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라는 평가도 나온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시장에 인력은 한정돼 있는데, 메리츠가 NH 출신들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업계 인력을 접촉하고 있다 보니 사람을 뺏길까봐 더 민감한 것”이라며 “메리츠가 정통 IB를 얼마나 잘할 수 있을지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