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는 되는데 SK는 안 된다? 중복상장 기준 불분명한 거래소
입력 2025.04.21 07:00
    한국거래소, SK엔무브에 '중복상장'으로 제동 걸어
    롯데글로벌로지스, DN솔루션즈는 빠르게 심사 승인
    중복상장? 쪼개기 상장?…심사 기준에 업계 혼란
    '중복 상장' 규정 없다지만, 여론 눈치에 흔들린단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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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국거래소의 SK엔무브 상장 제동을 계기로 '중복상장' 심사 기준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롯데글로벌로지스, DN솔루션즈 등 모회사가 이미 상장된 기업들의 사례와 비교하면 거래소의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통상 모회사와 자회사가 모두 상장된 구조는 '중복상장', 이 가운데 자회사가 물적분할을 거쳐 상장하는 경우는 '쪼개기 상장'으로 나뉘지만, 명확한 승인 심사 기준은 부재한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거래소는 SK엔무브에 상장 예비심사 전 사전 협의 단계에서 투자자 보호 조치를 마련할 것을 요청했다. SK엔무브의 지분 70%는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이 보유하고 있다. 이에 SK이노베이션 지분가치 희석에 따른 주가 하락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예비심사 청구 일정이 지연되며 당초 7월께 상장을 목표로 했던 계획에도 차질이 생긴 상태다.

      중복상장 논란은 올해 LG CNS 사례를 계기로 다시 불붙었다는 평가다. 기업공개(IPO) 시장의 '대어'로 꼽히던 LG CNS가 상장을 추진하던 당시,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중복상장 이슈가 공론화됐다.

      이현규 LG CNS 최고재무책임자(CFO)는 IPO 기자간담회에서 "LG CNS는 ㈜LG에서 물적분할된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중복상장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LG 주요 계열사들의 잇따른 상장이 지주사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논평을 내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이후 DN솔루션즈, 롯데글로벌로지스 등도 사전에 금융감독원과의 협의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큰 이슈 없이 예비심사 승인을 받았다. DN솔루션즈는 상장사 DN오토모티브가, 롯데글로벌로지스는 롯데지주가 각각 최대주주다. 두 회사 모두 지난해 10월 예비심사를 청구해 12월 승인을 받았다. 

      업계에선 거래소가 중복상장에 대한 명확한 판단 기준 없이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모회사가 상장된 상태에서 자회사가 상장하면 모두 중복상장에 해당하는 것인지, 아니면 LG에너지솔루션처럼 물적분할된 자회사만 해당하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DN솔루션즈와 롯데글로벌로지스가 예심을 청구했을 당시엔 중복상장 논란이 불거지기 전이고, 지금은 중복상장이 이슈가 되고 있다는 점이 유일한 차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SK엔무브는 16년전 물적분할해 설립된 회사로 단순 중복상장이 아닌 '쪼개기 상장'에 해당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SK엔무브는 2009년 SK에너지의 윤활유 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해 설립된 회사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이번 건이 '쪼개기 상장'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에서, 거래소가 앞선 유사 사례를 감안해 투자자 보호 방안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가장 유사한 선례로는 필옵틱스가 물적분할한 자회사 ‘필에너지’가 꼽힌다. 필에너지는 2022년 10월 예비심사를 청구한 뒤 약 7개월 만에 승인을 받았다. 당시 LG에너지솔루션 상장으로 불거진 ‘쪼개기 상장’ 논란 이후 거래소가 상장 심사를 한층 엄격히 진행하던 시점이었다. 필옵틱스는 자기주식 매입·소각, 상장 후 2년간 필에너지 주식 현물배당 등 주주환원책을 제시하며 상장을 승인받았다.

      금융감독원은 계열사 상장과 관련한 별도 규정이 없기 때문에 명확한 제한 근거를 두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물적분할 후 5년 내 자회사 상장 제한 및 심사 강화'라는 거래소 상장규정 외에는 뚜렷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설명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물적분할 후 상장은 관련 규제가 존재하지만, 그 외에는 명확한 규정이 없어 증권신고서 접수 후 면밀히 살피는 것 외에 뚜렷한 제도적 장치가 없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시 일반주주 보호 강화’를 골자로 한 자본시장법 개정 방향을 발표했지만, 현재까지 국회 논의는 시작되지 않았다. 개정안은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 시 공모주식의 20%를 일반주주에 우선 배정하고, ‘상장 제한 5년’ 규정을 삭제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거래소가 명확한 규정 없이 ‘여론’에 좌우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치권의 입장을 무시하기 어려운 점도 변수로 작용한다. 중복상장 제한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었지만,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면서 재차 국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집권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거래소가 정치권의 기류에 과도하게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중복상장 개념조차 정립돼 있지 않아 소모적인 논란만 반복되고 있다"며 "한국은 재벌 중심 경제구조라는 특수성이 있는 만큼, 단순히 해외 사례와 비교하기보다는 거래소나 당국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