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문제는 중·소형사…PF 여전히 어렵고
당국 정책은 대형사 위주…신용도 하방 압력
'日 중소형사 배우자' 자문업계 스터디 움직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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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며 중소형 증권사 위기론이 본격적으로 심화하고 있다. 증권업종 자체는 '관세 무풍지대'로 평가받으며 1분기부터 무난한 실적을 낼 것으로 전망되지만, 대형사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며 중소형사의 '먹을거리'가 말라붙고 있는 까닭이다.
금융당국의 정책 방향도 종합금융투자사업자를 중심으로 한 대형사 지원에 초점이 맞춰진 정책이란 평이다. 기업금융(IB)과 브로커리지(위탁매매) 기반이 약한 중·소형 증권사들의 '먹거리' 고민이 깊어지면서, 신용평가사를 중심으로 신용등급 하향과 피인수합병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20일 금융권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키움증권 등 5개 증권사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 추정치 합계는 1조5583억원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분기 대비 2.5% 정도 줄어들긴 했지만, 무난한 실적을 기록했다는 평가다.
올해 들어 미국 증시가 다소 부진했지만 국내 증시가 이를 일부 만회하며 국내 주식 거래대금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부동산 PF 대출채권 발행액도 지난 2023년 이후 처음으로 증가세를 나타내며, 브로커리지와 IB, 운용 부문에서 전반적인 회복 흐름이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안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증권사들의 1분기 실적과 관련해 "작년 4분기에는 비경상적 비용 등이 반영되면서 부진했으나, 1분기 국내 증시 거래대금 증가와 낮아진 금리 수준 등 우호적인 환경에 힘입어 안정적인 실적을 기록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증권업이 처한 진짜 위기는 중·소형사들이라고 입을 모은다. 브로커리지 수익이 증권사들의 실적을 견인하고 있지만, 전체 위탁매매 시장 점유율에서 중·소형사들의 비중은 미미한 상황이다. 부동산 PF 시장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 역시 지난 2년간 부실을 상당수 털어낸 대형사들의 이야기일 뿐, 중·후순위 비중이 높은 중·소형사들은 여전히 익스포저가 상당하다는 평가다.
실제로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부동산 PF 중 중·후순위 비중은 대형사가 25%에 불과한 데 반해 소형사는 62%, 중형사는 5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호황기 시절 고수익·고위험 익스포저를 중심으로 부동산 PF를 늘려왔다 보니, 대손비용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금융당국이 진행하고 있는 부동산 건전성 규제 개선안도 소형사들에 더 부담이란 평가다. 개선안에 따르면 증권사들의 영업용순자본비율(NCR) 위험값이 PF 사업장별 위험도 및 변제순위와 무관했던 현행 제도에서 앞으로는 PF 사업장별 개별리스크를 고려하는 형태로 바뀐다. 시행 이전의 PF 대출에는 소급적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이지만, 중·소형사들의 영업 전략상 순자본비율 관리 부담이 커질 것이란 평가다.
ECM과 DCM 등 전통 IB 분야에 힘을 주기에도 환경이 녹록치 않다. 부동산 PF 시장 침체로 증권사 전반적으로 전통 IB 강화에 힘을 주기 시작하면서, 경쟁이 한층 치열해진 까닭이다. 금리 인하기에 수수료 경쟁력을 내세우기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최근 금융당국이 계열사를 동원한 캡티브 영업에도 제동을 걸면서 영업 환경이 까다로워졌단 분석이다.
이에 최근 자문사들은 일본 등 해외 금융 선진국들로 '스터디'를 위한 출장을 나서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국내 중·소형 증권사들의 '먹거리'가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해외 금융 선진국들의 사례를 참고하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신용평가사들은 현재 소형 증권사들의 경쟁력 강화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경쟁력 강화에 실패할 경우, 일부 소형사들을 중심으로 신용도 하방압력이 증가하고 장기적으로는 피인수합병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윤재성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소형 증권사들은) 수익성 저하와 자본확충 부족, 시장지위 하락 등 부정적인 환경을 맞이한 가운데 영업환경 변화까지 고려하면 주어진 조건 속에서 업무특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