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부 출신 대관 두고 시장선 날선 목소리
HD현대·삼성·SK 대관팀과 비교 지적도
김동관 대관 총괄 문지훈 실장 책임론 커지나
대관 확충 움직임 있었으나 결국 또 실패
2017년 삼성-2025년 한화…'정당성 제물' 데자뷰
-
"격세지감이다. 한화그룹이 이렇게 이슈가 될 줄은 몰랐다. 어쩌다 찍힌 건지…" (여당 중진 의원실 관계자)
최근 정치권에서 한화그룹을 향한 시선이 심상치 않다. 4월엔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이 '한화 경영권 3세 승계,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개최했다. 정무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등 핵심 상임위 소속 의원들이 대거 참석한 이 자리에서는 한화그룹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토론회 시작 전 의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한화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태양광 사업 문제도 걸리는데 괜찮겠느냐" 등의 우려를 나누기도 했다.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한화그룹이 정치적 표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대기업들과 달리 유독 한화그룹만 정치권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배경에는 그룹의 '대관(對官) 역량 약화'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귀하신 몸'이라는 한화, 야당과의 소통 부재가 일 키우나
"한화는 워낙 '귀하신 몸'이라 우리 의원실에 잘 안 온다." (한 야당 기재위 의원실 보좌관)
정치권에서는 한화 대관 활동에 대해선 비판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유달리 소통에 소극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지난 '한화 3세 승계 토론회'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소속 전무 1명과 컴플라이언스 담당 전무 1명이 참석했으나, 이들이 의원들에게 인사도 하지 않아 눈총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야당에서는 한화그룹이 산업통상자원부 출신 인사들을 대거 영입하는 데 대해 부정적이다. 한 민주당 소속 보좌관은 "조선·방산 쪽 키우겠다고 산자부 '모피아'들을 많이 데려가는데, 우리 당에서는 좋게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문업계의 평가도 부정적이다. 한 자문사 관계자는 "특히 한화오션에 있는 산자부 출신들은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며 "대우조선해양(現한화오션)을 인수할 때 한화그룹이 산자부 출신 대관을 많이 영입했지만, 속된 말로 훼방만 놓는 지경이다. 우리가 제발 가만히 좀 계시라는 말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산자부 출신 대관 인력들의 태도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앞선 관계자는 "산자부 고위 공무원들, 정부 부처 출신들은 전부 고자세다. '나도 다 예전에 했던 것'이라는 투로 후배 대하듯 하니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른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더 직설적인 비판을 가했다. 이 관계자는 "삼성은 괜히 상임위별로 대관을 둬서 국회를 관리하는 줄 아느냐"며 "산업부 공무원들만 잔뜩 모아놓으니 이 사달이 나는 것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2대 국회 대응 나선 '김동관의 대관' 문지훈 실장
현재 한화그룹의 대관 활동은 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실장은 문지훈 부사장(1972년생)이 맡고 있다. 고려대 졸업, 국가정보원 출신인 문 부사장은 ㈜한화에서 전략 BR실장을 역임했으며 한화시스템 CR실장도 함께 맡았던 인물이다.
한화에어로 CR실은 산하에 사업팀과 기획팀으로 편제가 돼있는데 원래 CR실장이었던 공군 소장 출신 류영관 부사장(1964년생)이 CR실 '사업팀 담당임원'으로 격하됐다. 정재계에서는 이를 두고 문지훈 부사장에 대한 '힘 실어주기'로 해석하고 있다. 문 부사장은 그간 관가·국회·검찰·언론 정보를 종합해 김동관 부회장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이 때문에 그룹 내부에서는 문 부사장이 '김동관의 대관'으로 인식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는 정무위 위주로 1971년생 김일수 전무(現 한화투자증권 연금본부장)와 1972년생 김태형 ㈜한화 준법지원인 및 건설부문 법무실장이 주로 대관 활동을 맡았다.
한 여의도 관계자는 "김일수 전무가 한화투자증권 등에서 근무하면서도 커뮤니케이션위원회 소속 명함을 별도로 갖고 대관 활동을 펼쳤다"며 "그러나 이들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22대 국회에선 김동관 부회장이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되는 등 효과적인 대관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한화 커뮤니케이션위원회는 지난 3월 취임한 이명건 사장이 이끌고 있다. 이 사장은 전 동아일보 국장 출신으로, 윤석열 대통령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조계에 대한 오랜 출입 경험을 바탕으로 현 정부와의 소통을 강화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방산·조선·에너지 등 현 주력 사업에 대한 이해도는 높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에서 오히려 자충수를 둔 인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한화그룹은 '그룹 총괄 대관'의 부재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의원실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화는 대관 인력을 보강하려 했으나, 이마저도 실패하고 되레 비난을 사는 일까지 발생했다. 최근 일부 인사를 대상으로 입사를 추진하다가 무산된 경우가 2건 있었는데, 모두 국민의힘 소속 보좌진 출신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한 명은 지난해 의원실을 퇴사하고 이직 기념 회식까지 했으나 최종적으로 입사가 무산되는 일이 발생해 보좌진들 사이에서 원성이 높았다"고 말했다.
"한화는 대관 업무를 이상한 식으로 한다. 다른 기업도 지금 상황에서 국민의힘 사람을 뽑진 않겠지만, 굳이 사서 정치권과 원한을 만든다." (한 대기업 대관 임원)
국정 농단 사태 이후 맥 끊긴 한화 대관 역량
과거 한화그룹은 재계에서 나름 대관 역량이 뛰어난 그룹으로 평가 받았다. 한 재계 원로는 "2016년까지만 해도 그룹 차원의 경영기획실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대관 시스템을 운영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금춘수 부회장이 경영기획실장을 맡으며, 그 아래 홍보팀과 대관팀이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대관팀장을 맡았던 이강만 전무가 그룹을 총괄하고, 각 계열사별로 대관팀장이 존재해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경영기획실로 보고했다. 삼성그룹의 미래전략실과 유사한 방식이었다.
이 체계는 2018년 이후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화그룹은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태 이후 이사회 중심경영 및 계열사 책임 경영 강화를 위해 경영기획실을 해체하고, 대외 소통을 담당할 커뮤니케이션위원회와 준법 경영 강화를 위한 컴플라이언스위원회를 신설했다.
앞선 재계 관계자는 "김승연 회장이 세 아들에게 주요 사업 부문을 나눠 맡기면서 대관 역할도 계열사별로 진행하면서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많다"며 "아워홈 인수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증 외 특정 계열사에서 책임지기 애매한, 그룹 차원의 이슈에 대한 대응이 허술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기업들은 체계적인 대관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그룹은 물론, '김동관 vs 정기선' 으로 오너가 장남들도 자주 비교되는 HD현대의 경우. 국방부, 산업통상자원부와 같은 부처와 자주 접점을 가지며 커뮤니케이션 실장인 류근찬 부사장이 총괄 역할을 하고, 그 아래 대관담당 이덕희 상무가 그룹 총괄로서 국회와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다른 대기업 대관 담당자는 "삼성은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에도 상임위별로 대관 인력을 배치해 국회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유지하고 있고, SK도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등 각 계열사 대관 인력만 70~80명씩 두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 표적이 된 한화, '정당성을 위한 제물' 될 우려
정치권의 표적이 된 데는 다른 요인도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대규모 유상증자와 경영권 승계 과정이 야당이 주장하는 '재벌 개혁'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차기 정권을 노리는 야당 입장에서는 재벌 오너일가에 대한 정체성을 드러내기 딱 적합한 대상이다. 정권 교체기 상황에서 정책의 정당성을 내보이기 위한 '제물'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마치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당시 삼성이 정치적 표적이 되었던 것과 유사하다는 것.
게다가 한화그룹은 '윤석열 정부의 혜택을 받은 기업'이라는 이미지도 조성되어 있다. 이번 정부에서 방산·조선 사업이 호조를 보이며 성장해왔다. 특히 미국 조선소까지 인수하면서 대미 로비 수요도 늘어났다.
야당 입장에서는 이 먹거리를 그냥 내버려두기 어렵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가 "대한민국을 글로벌 방위산업 4대 강국으로 만들겠다"며 방산 정책 공약을 발표한 것도 일맥상통한다. 방산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강조하는 가운데, 국내 최대 방산 기업인 한화그룹을 '길들이기'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와중에 자잘한 해프닝도 계속 이어진다.
이달 초, 야당과 각을 세우고 있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경남내 한화오션 협력사들이 모여 있는 조선사업장을 방문해 '조선산업 지속성장을 위해 상생협력 협약식'에 참석해 사진을 찍은 것도 야당 측 인사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화 저격 토론회에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허성무 의원도 참석했다. 허 의원의 지역구인 창원시 성산구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 사업장과 한화시스템 사업장이 있으며, 경남에는 한화오션 사업장도 위치해 있다. 허 의원은 토론회에서 "경남 도민들은 한화의 경영 상태와 노사관계에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화그룹은 현재 IPO, 유상증자, 자금조달, M&A 등 중요한 사업 추진을 앞두고 있다. 여기에 여천NCC가 위치한 여수공장 등 석유화학 구조조정 계획도 지역 정치의 압박 속에서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처럼 대관 리스크가 계속 불거질 경우 사업 추진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계열사별로 분산된 대관 기능, 특정 정파에 편중된 인력 구성, 야당과의 소통 부재는 향후 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재계와 투자자들 사이에선 과연 한화그룹이 이번 정치적 격변기를 무사히 헤쳐나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치 지형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그룹의 대관 시스템 재정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최우선 과제가 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