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고는 무조건 100% 배상' 현실화하나…감독체제 개편에 금융권 ‘긴장’
입력 2025.04.24 07:00
    민주당 감독기구 개편안 공개…'금소원 신설'도 거론
    금감원 감독기능과 소비자보호 기능 분리하는 방안
    소비자보호 기능 독립 시 '자기책임 원칙' 약화 우려
    금융사고 배상 강화 가능성…금융사 부담 커질 수도
    중복 행정업무 발생에 현장 대응력 약화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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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던 금융감독체제 개편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감독기구 개편안을 공개하면서다. 매번 논의만 되다 흐지부지됐던 개편안이 이번엔 현실화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특히 ‘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안이 포함되면서, 금융업계는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이미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 등으로 금융기관의 책임이 확대된 상황에서, 금융소비자보호원까지 공식 출범한다면 제도적 부담이 급증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일각에선 자본시장의 근간인 ‘자기책임 원칙’이 사실상 무력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금융사고 발생시 최대 40% 정도였던 판매사 배상한도가 윤석헌ㆍ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을 거치며 80~100%로 급증했기 때문이다.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번 대선 국면에서 주요 아젠다 중 하나로 경제부처 및 금융감독기구 재편안이 검토되고 있다. 핵심은 현재의 금융감독원을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를 분리하는 체제로 바꾸는 것이다. 이른바 ‘쌍봉형 감독체제’다. 이는 2012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꾸준히 제기된 모델로,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 같은 구상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다만 예산과 조직 설계 문제로 실제 추진되진 못했다.

      이번에는 민주당이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있어, 집권 시 입법 추진에 대한 제도적 걸림돌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금융사들도 대선 결과와 정책 방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금융소비자보호원이 설립된다면, 가장 큰 변화는 ‘소비자 보호’ 명분 아래 금융기관의 책임 범위가 더욱 확대된다는 점이다. 이는 자연히 ‘자기책임 원칙’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자기책임 원칙’은 자본시장 신뢰의 근간으로, 금융소비자가 계약 체결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최근 수년 간 반복된 대형 금융사고 이후, 규제 환경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예를 들어 2013년 동양증권 CP 불완전판매, 키코(KIKO) 사태 당시 피해자 배상률은 30~40% 수준에 불과했다. 반면, 라임·옵티머스 사태에서는 분쟁조정위원회가 100%에 가까운 배상을 권고했고, 당국은 CEO에 대한 문책까지 단행했다.

      2021년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이후 금융사의 법적 책임은 한층 무거워졌다. 고의·중과실이 있을 경우 매출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 부과가 가능하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홍콩 ELS 사태 당시 금소법을 근거로 자율배상을 압박하며 강한 집행력을 보이기도 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이런 분위기라면, 금융사고가 날 때마다 금융기관이 전액 배상하는 게 당연시되는 구조로 굳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전했다.

      정책의 향방은 결국 금융소비자보호원이 어떤 법률에 근거해 설립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만약 단순한 분쟁조정기구로 출범할 경우 기존 금융감독원 내 조직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금융소비자보호법에 근거해 독립기관으로 설치될 경우 검사·감독 권한까지 보유하게 될 수 있다.

      이 경우 현재 금감원이 가진 권한 중 ‘소비자 보호’ 관련 기능 상당 부분이 이관될 수밖에 없고, 금감원은 건전성 감독 중심의 축소 조직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곧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제재의 양방향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회사는 악, 소비자는 선'이라는 프레임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움직임은 금융사고 발생시 전액 배상이 '표준'이 되는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이번 개편이 정부 조직의 비효율성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감독기능을 분리해도 실제 업무는 유사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고, 중복된 행정 체계가 형성되면 오히려 현장 대응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또 다른 금융사 관계자는 “아직 세부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어떤 법률 체계에서 분리되느냐가 실질 권한의 차이를 가를 것”이라며 “어떻게 쪼개더라도 행정업무 수행 조직은 필요하기 때문에 금감원보다 비대한 조직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