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채권 시장엔 외국인 자금 유입...'달러 약세' 일부 수혜
상반기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 대두...美는 3분기 재개 전망
'대선 40일 앞' 정책 변화는 '시계 제로'...'전망 무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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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관세 정책이 세계 각국과 불협화음을 내는 가운데, 대통령 선거가 40여일 앞으로 다가오며 국내 자본시장의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미국의 리더십에 대한 실망이 '미국 매도'(셀 아메리카;Sell America) 현상으로 표면화하며 달러가 약세로 돌아선 가운데, 수출이 실제로 급감하며 원화 가치 역시 방향성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점점 구체화하는 경기침체(리세션) 위기론에 시장의 관심은 한동안 잊혀졌던 '기준금리'에 다시 모이고 있다. 미국이 3분기에야 기준금리 인하를 재개할 전망인 가운데, 1분기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을 열어둔 한국은행은 상반기 중 금리인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지난 22일, 달러 지수(DXY)는 장중 97.97까지 하락하며 양적완화가 한창이던 지난 2022년 1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달러 지수는 연초 이후 9% 하락했는데, 이중 6%는 지난 3일(미국 현지시간 2일) 트럼프 정부의 상호관세 발표 이후 집중됐다.
달러화의 약세는 달러화 자산에 대한 '투매'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주간 미국 증시는 한때 5% 이상 급락했고, 미국 장기 국채 금리는 장중 60bp(0.6%포인트)급등(가격 하락)했다. 미국의 상호관세 정책이 우방국들로부터 외면받으며, 선진국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셀 아메리카 현상이 일어났단 분석이다.
관세를 필두로 미국에 대한 '신뢰' 이슈가 가격의 핵심 변수가 된 셈이다. 실제로 23일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관세 협상에 낙관적인 시각을 내놓자, 곧바로 미 증시는 2%대 강세를 보였고 장기 국채 금리는 하락(가격 상승)했다. 달러 지수 역시 1% 남짓 반등했다.
한 증권사 전략 담당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극단으로 치닫진 않을 거라는 안도감이 단기적으로 작용한 것"이라며 "관세 그 자체에 대해서는 물러설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여 당분간 일희일비하는 변동성 장세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매크로 변동성은 국내 자본시장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채권시장이 대표적이다. 상호관세가 부과된 직후인 지난 3일 장중 2.95%까지 치솟았던 국채 10년물 금리는 이후 외국인들의 적극적인 매수세에 힘입어 2.61%까지 하락한(가격 상승) 상태다. 국채 3년물 금리 역시 2.325%까지 하락하며 2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 중이다. 올해 들어 외국인들은 한국 국채를 15조원어치나 순매수했다.
채권 매수세의 원인은 달러화 약세에 따른 수혜 가능성과, 미국보다 빠른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한 베팅으로 분석된다. 연초 이후 정치 불확실성으로 인해 원화는 달러화 대비 가장 약한 통화였다. 6월 대선 이후 혼란이 수습되면, 달러화 약세 추이를 타고 환율이 1300원대 중후반까지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빠른 경기 침체로 인해 적극적 통화 정책이 펼쳐질 수 있다는 점도 언급된다. 한국은행은 지난 17일 1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통상 여건 악화로 올해 연간 성장률 역시 지난 2월 예상치인 1.5%를 밑돌 것이라는 의견도 내놨다. 실제로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4월(1~20일) 수출은 전년동기 대비 5.2% 감소했다. 특히 미국 수출이 14.3%나 급감했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일부 해외 은행은 지난 17일 열린 4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고 베팅하기도 했다"며 "실제로는 기준금리가 동결되긴 했지만, 인하 소수의견이 나온데다 금통위원 전원이 향후 3개월 내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 조만간 인하할 가능성이 매우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달러의 급격한 약세에도 원달러 환율은 여전히 14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호재와 악재가 널뛰기하며 방향성을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과 미국 국채 금리 격차가 180bp(1.8%포인트) 가까이 벌어져 있는 점도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대외 환경 변화나 금리 정책에 따라 일시적으로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예측이 불가능한 대외 환경 변화만큼이나 국내 상황 역시 '안갯속'이라는 점이다. 대통령 선거가 당장 40여일 앞으로 다가오며, 향후 전망이 무의미해진 상황이란 평가다. 어떤 정책이, 어떤 강도로 펼쳐질 지 모르는 상황에서 투자 계획을 세울 순 없는 까닭이다.
당장 '상법 개정안'을 중심으로 한 기업 경영 환경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현재 주요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상법 개정안 재추진 의지를 못 박은 상태다. 기업 경영권 위축 논란이 큰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까지 언급했다. 최근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간담회에서는 '원칙적 자사주 소각' 제도 도입 가능성도 시사했다.
미국이 일본과의 무역협상에 '방위비' 안건을 가지고 왔다는 소식이 전해진 점도 변수로 꼽힌다. 당분간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로 대미 무역협상에 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방위비 부분은 차기 정부가 출범한 후 정리하는게 맞다는 인식이 형성될 수 있는 까닭이다. 이 경우 무역협상은 난항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때문에 증권가에서는 '일단 2분기에는 관망하자'는 분위기가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 미국의 90일 관세 유예 약속이 지켜질지, 그 사이 주요국과 무역 협상이 타결될지, 3년만에 열리는 국내 대선이 어떤 결과로 마무리될지, 미국이 언제 다시 기준금리 인하 싸이클을 재개해 경기 부양에 나설지 지켜봐도 늦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하로 무게가 쏠리는 국내 기준금리 역시 일각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한국은행이 전략적으로 동결 포지션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이투자증권은 "금리는 미국 경기 하강, 정책 불확실성 축소 등을 확인하며 시간을 두고 안정될 것"이라며 "정책이 안정되지 않으면 금리가 진정되지 않고, 금리가 진정되지 않으면 증시 반등 시점은 조금 더 뒤로 밀리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