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 확보 실패로 인수금융 대환 어려워져
6호 펀드 활용도 애매…국내 어려워 해외 LP 역할 커져
MBK마저 딜 차질…브릿지론 리스크 검토 강화하는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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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투자증권이 지난해 MBK파트너스에 고려아연 공개매수를 위해 제공한 브릿지론의 만기가 곧 도래할 예정이다. 만기를 앞두고 NH투자증권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당초 인수금융으로 대환할 계획이었으나,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에 실패하며 차질이 생긴 까닭이다.
현재 클로징을 앞두고 있는 6호 펀드의 자금을 활용하는 것도 원활하지 만은 않은 상황이란 분석이다. 국민연금을 위시한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출자금을 고려아연에 투입하는 데 반대하는 까닭이다. 결국 NH투자증권이 만기를 연장해줄 것이란 관측이 크지만, 초대형 PE인 MBK파트너스마저 딜에 차질을 빚으면서 업계 전반에 '브릿지론' 리스크가 확산하는 분위기다.
2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MBK파트너스가 지난해 10월 고려아연 공개매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NH투자증권으로부터 빌린 1조5785억원 규모의 브릿지론 만기가 오는 7월 도래한다. 당시 MBK는 해당 자금을 9개월 만기에 고정금리 5.7%로 빌렸다. 이후 MBK는 공개매수와 장내매수 등을 통해 현재까지 고려아연 지분 확보에만 약 1조6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했다.
최근 MBK는 브릿지론 중 일부를 상환해 브릿지론 규모를 1조원 아래로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브릿지론 만기 연장을 위한 논의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기간과 금리 등을 두고 NH투자증권의 셈법이 복잡해질 것이란 평가다. 이미 담보로 잡은 고려아연 지분 가치가 대출금을 밑돌고 있고, 향후에도 고려아연 인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근 검찰이 고려아연에 이어 MBK와 영풍에 대한 압수수색을 한 점도 부담이다. 검찰은 유상증자 과정에서 부정거래를 한 혐의를 받는 고려아연을 압수수색했는데, 고려아연에 이어 MBK까지 조사에 나선 것이다. 이와 관련 MBK측은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은 것 뿐이라는 입장이지만,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변수가 산적해 있다는 분석이다.
브릿지론은 PEF가 딜 클로징을 하기 위해 자금이 필요할 때, 증권사가 제공하는 단기 대출이다. 이 때문에 상환 만기가 3~6개월 내외로 짧고, 금리는 비교적 높다. 통상 브릿지론은 신속한 딜 클로징이 목적인 경우가 많기에, 만기 후 인수금융으로 전환하는 게 일반적이다. 초기 브릿지론을 제공한 증권사가 장기 대출 조건으로 변경해 롤오버하거나, 은행 등 다른 금융기관에서 리파이낸싱을 하는 구조다.
다만 고려아연 브릿지론은 MBK가 목표로 했던 경영권 인수에 실패하며, 인수금융 전환에 문제가 발생한 경우다. 당초 계획했던 6호 펀드를 활용한 상환도 원활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6호 펀드 LP들이 '적대적 M&A'에 대한 캐피탈콜에 응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국민연금과 방폐기금만 이를 정관에 반영했지만, 공무원연금공단을 비롯한 다른 LP들도 이러한 정관을 동일하게 반영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국내가 아닌 해외 LP들의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데, 이미 고려아연의 주가가 공개매수 가격보다 내려간 상황이란 점이 변수다. 향후 주가가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현 시점 기준에서는 투자와 동시에 손실이 불가피하다. 이미 국민연금이 관련 내용을 정관에 반영한 상황이라, 캐피탈콜에 응하지 않을 명분 자체는 있다는 분석이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블라인드펀드 LP의 경우 펀드 운용사에 투자처와 관련해 강제할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다만 MBK 6호 펀드의 고려아연 투자는 이미 LP중 한 곳인 국민연금이 고려아연 투자를 위한 캐피탈콜에 응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다른 LP들도 이를 명분으로 동일한 요구를 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결국 NH투자증권이 만기를 연장해줄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딜 구조가 틀어졌지만, 당장 차입을 회수할 경우 증권사 입장에서도 손실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만기를 연장할 경우 차주의 상환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MBK파트너스의 지위를 고려하면 당장 회수 보다는 만기 연장을 통한 추가적인 이자 수익을 기대하는 것이 낫다는 평가다. 이미 NH투자증권은 브릿지론을 통해 600억원이 넘는 이자 수익을 거둔 것으로 추산된다.
다만 국내를 넘어 동북아 최대 PEF로 평가받는 MBK파트너스마저 딜에 차질을 빚으면서, 업계 전반에 '브릿지론' 리스크가 다시 부각되고 있는 모양새다. 브릿지론 자체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성격의 투자이긴 하지만, 부동산 PF를 제외하고는 실제 리스크가 현실화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PEF가 차입매수(LBO)를 활용해 인수했지만, 인수 이후 기업 가치가 반등하지 못하면서 인수금융을 제공한 금융사들의 담보 가치가 하락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한앤컴퍼니의 한온시스템의 경우에도, 한온시스템 주가가 급락하면서 인수금융을 제공한 증권사들이 대출금 일부를 회계상 손실처리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브릿지론은 PE의 요청에 따라 속도전으로 자금을 제공하다 보니 리스크 검토가 상대적으로 부실한 경우가 있었다"라며 "다만 그동안은 큰 사고가 없었지만, 최근 들어 여러 잡음이 일면서 조금 더 꼼꼼하게 리스크를 검토하려고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