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회계법인들, 사업보고서 시즌마다 가치평가 하도급 놓고 시끌
입력 2025.04.30 07:00
    감사업무 중 가치평가 외주 주기도
    일시적 인력 부족 해결 방편이지만
    외부에 맡겨서는 품질 확신 어려워
    덤핑 수임·고객 신뢰 훼손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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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대형 회계법인들은 감사보고서 작성 시즌마다 일손 부족에 허덕인다. 감사에는 투자 자산들의 가치를 평가하는 업무도 있는데 회계법인 안에서 이를 모두 소화하기 어려운 경우 외부에 일을 맡기기도 한다. 회계법인들이 인력 영입에 적극적이지 않은 터라 이런 사례는 점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하느냐에 대해선 시각이 엇갈린다. 미리 고객에 언질을 하고 품질 관리를 철저히 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시각이 있다. 반면 대형 회계법인을 밑고 일을 맡긴 고객의 신뢰에 반하거나 업계의 질서를 흐릴 행위라는 평가도 나온다.

      기업은 사업연도 경과 후 90일 이내에 사업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국내 거의 대부분의 기업이 12월 결산 법인이기 때문에 회계법인 감사부문은 1분기가 가장 바쁘다. 회계사들의 혹사 논란이 자주 벌어지는 시기기도 하다.

      감사 업무엔 통상의 재무제표 확인 외에 기존 투자 주식 등 가치를 산정하는 작업도 수반된다. 2024년 사업연도는 과거 고밸류로 진행한 M&A에 대한 손상차손을 인식할 것들이 많았다. 감사부문에서 이를 모두 소화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부문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딜자문이나 컨설팅 쪽의 인력이 파견돼 일을 맡는 식이다.

      다른 부서 도움으로도 일손이 부족한 경우 외부에 일을 맡기기도 한다. 일시적인 인력 공백을 충원하기 위해 '정규직'을 고용하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로컬 회계법인이나 소형 회계사무소에 일을 맡기고, 이 보고서를 대형 회계법인이 다시 살펴 최종 확정한다. 과거 엠에스가치평가(MSVALUE)처럼 가치산정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생기기도 했다.

      대형 회계법인들은 최근 고부가가치 일감에 집중하고 비용을 줄이려 하고 있다. 호황기에 인력을 대거 뽑은 것이 부담이 되는 터라 최근엔 인력 채용도 줄이고 있다. 일부 업무에 대해선 외주를 맡기고 일시적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감사 고객이 많거나 인력이 적을수록 이런 사례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회계법인 입장에선 외주를 주더라도 평가의 신뢰도를 확보해야 한다. 결국 회계법인 명의로 보고서가 나가기 때문이다. 아무 곳에나 맡길 수는 없으니 당사 출신 회계사들이 있는 곳을 찾는 경우가 많다. 자사의 평가 기준을 제시하고, 평가 근거에 대한 문답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한다.

      한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일손이 부족한 시기에는 어쩔 수 없이 외부에 일을 맡길 수밖에 없는데 되도록 자사 출신 회계사를 고용하려 한다"며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우리의 평가 기준을 제시하고 결과물 리뷰도 꼼꼼하게 하는 등 품질 관리를 철저하게 한다"고 말했다.

      외부에 맡긴 평가를 온전히 믿을 수 있냐는 의견도 있다. 평가 시 보수 대부분은 대형 회계법인이 챙기고 하청 회계법인은 시간당 비용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선 충분한 평가 품질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차피 일을 외주로 맡길 거라면 대형 회계법인 입장에선 싸게라도 많이 수임하는 게 이익일 수 있다. 덤핑 수임 경쟁이 불가피하다.

      감사 고객과의 신뢰관계가 훼손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대부분 고객의 동의를 얻거나 사전에 통지를 한다. 그러나 갈수록 일은 늘고 일손은 부족한 상황이 많아지고 있다. 고객이 알지 못하는 사이 외부에 일을 맡기는 상황도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보수와 평가 품질 하락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른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일부에선 가치평가 업무 대부분을 외부에 하도급주고 중간에서 보수만 챙기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며 "이는 고객에 대한 도리를 저버리는 것이고, 업계를 공멸하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