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위기 현실화…재고 급감에 가격인상도 고려
"제1시장 미국서 가격 경쟁력 잃을라" 우려도
대통령 공약 4.5일제 협상카드로 내세운 노조
수익성 악화 뻔한데, 역대급 성과급 제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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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까지만 해도 탄탄대로를 달리던 현대차그룹 앞에 험로가 예상된다. 제1시장인 미국의 관세 정책은 사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수익성을 지탱해 온 우호적인 환율 효과는 끝날 기미가 보이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키우는 중국 기업은 현대차그룹에 잠재적인 위협이다. 국내에선 새정부 출범에 맞춰 노조의 요구가 점차 거세지고 있는데 그룹 경영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평가다.
3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이르면 이달 중순부터 경영진과 노조 간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시작한다. 현대차 노조는 ▲기본급 약 14만1300원 인상 ▲상여급 900% ▲순이익 30% 상당의 성과급 등을 요구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이번 임담협에선 임금을 유지한 채 금요일 근무시간을 4시간으로 단축하는 ▲주 4.5일제 도입을 제안할 계획이다. 이는 대통령 공약에도 포함된 내용이기 때문에 노조의 요구에 좀 더 힘이 실릴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에도 현대차 노조는 올해와 유사한 수준을 협상안을 제시했다. 노사는 결국 ▲기본급 11만2000원 인상 ▲성과급 500%와 1800만원 ▲주식 25주 지급 등 협상안을 체결했는데, 이를 통해 6년 연속 무분규 타결이란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노사의 역대급 임급 협상안 타결은 현대차의 고공행진한 실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실제로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까진 매분기 판매 실적을 경신했고 우호적인 환율 덕에 수익 역시 큰 폭의 증가세를 나타냈었다.
올해도 이 같은 협상안을 도출할 수 있을진 미지수다. 현대차의 수익을 지탱하던 글로벌 판매는 이미 노란불이 켜진 상태다.
가장 큰 변수는 역시 미국 관세 정책이다. 수입산 완성차에 관세 25%를 부과하겠단 방침은 현대차의 수익성에 직접적인 타격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관세 인상에도 현대차는 미국에서 차량 가격을 수개월 동안 올리지 않았다. 대신 25%의 관세를 부과받지 않은 차량들로 미국 내 재고를 소진하며 시간을 벌어왔는데, 재고가 빠르게 줄어들며 이젠 가격 정책을 새롭게 책정해야 하는 시기기 다가왔다.
물론 이런 상황이 비단 현대차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 수출하는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 모두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긴 하지만 '가격 경쟁력'으로 미국 시장을 공략했던 현대차그룹은 다른 완성차 기업들에 비해 타격이 더 클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아직 미국 판매 차량의 가격 인상을 공식화하진 않았으나 향후 수개월 내 인상이 가시화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수개월 전부터 미국 시장 내 재고가 빠르게 소진돼 이젠 관세를 부과하는 차량들의 판매를 시작해야 하는데, 직접적인 가격 인상이 없다면 수익성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미국 현지 차량들을 제외한 모든 완성차 기업들이 동일한 상황이긴 하지만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를 봤던 현대차는 그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고, 또 미국 내 차량 소비가 전반적으로 위축될 수 있단 점에서 사업 환경을 낙관하긴 어려운 게 사실이다"고 했다.
현대차는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고, 현지 생산을 늘리며 비교적 발빠르게 대응한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현대차가 미국 조지아주에 76억달러(약 10조원)를 들여 건립한 전기차 공장 HMGMA(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는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했다. 미국 내 직접 고용인력도 크게 늘리겠단 계획을 세웠는데 그룹은 2031년까지 8000명 이상의 채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실상 인위적인 인력 조정이 어려운 한국 시장, 미국 내 고용 확대를 내세운 현대차의 행보는 고정비 감축과 인력 효율화 작업에 나서는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과는 사뭇 다르다. 실제로 닛산(NISSAN)은 글로벌 인원 9000명을 감원했고, 폭스바겐(Volkswagen)은 지난해 독일 공장 3곳을 폐쇄했다. 미국 현지기업인 스텔란티스(Stellantis) 역시 미국 내 공장 인력을 대폭 감원한 바 있다.
달러 강세는 현대차의 수익성을 지탱해준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코로나 팬데믹 이후 찾아온 소비자들의 보복 소비, 늦춰왔던 차량 교체가 맞물리며 해외 판매가 크게 늘었고 여기에 환율 효과까지 더해지며 현대차의 수익성이 급증할 수 있었다.
지난 4월 1500원에 육박했던 원-달러 환율은 1300원대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대외 변수에 따라 환율은 얼마든지 변동할 수 있지만 가장 우호적이었던 상황은 이미 지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판매량과 수익성 모두 정점을 찍었던 지난해를 기점으로 제기돼 온 피크아웃(Peak-out)의 위기감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는 시점. 이런 상황에서 매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국 기업들은 또 다른 변수가 됐다.
올해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중국 BYD는 이미 현대차의 글로벌 판매량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현대차가 고전하고 있는 중국시장을 포함한 수치이기 때문에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과 중국기업이 직접적인 경쟁구도에 놓여있다고 보긴 어렵지만, 중장기적으론 미국을 제외한 주요 거점 국가에서 경쟁이 심화할 수 있단 점에서 중국기업의 공격적인 사업 확장은 현대차그룹의 잠재적 위협으로 평가 받고 있다.
사면초가에 놓인 현대차의 상황은 주식시장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현대차의 주가는 지난해 주당 30만원에 근접하기도 했으나 지난 1년동안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며 현재는 18만원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증권가의 목표 주가 역시 조금씩 하향하는 추세다.
현대차의 주가는 사업의 정점에서도 퀀텀점프를 기록하지 못했다. 사업을 둘러싼 대내외 변수가 우호적이만은 않은 상황이지만, 그나마 투자자들에게 긍정적으로 평가 받는 주주환원책으로 인해 주가가 큰 폭의 하락세는 면하고 있단 평가도 있다.
다만 글로벌 시장에서의 판매 감소, 수익성 악화, 노사 갈등의 심화, 고정비 증가 등의 상황이 지속한다면 기업가치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지적을 무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