産銀서 첫 대출받은 삼성전자, 22조 대출 만기 앞두고 단기 운영자금 최저치
입력 2025.06.04 14:16
    20년 무차입 기조 흔들…1분기 운전자본 마이너스 기록
    8월 삼성디스플레이서 받은 22조 장기차입도 만기 도래
    별도 현금성 자산 5조 이하…여유 사라진 때에 산은 대출
    이재명 대통령 1호 공약 반도체…산은도 지원성과 올린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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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삼성전자의 자금 사정이 예전 같지 않다. 별도기준 단기 운영자금이 5조원 아래로 떨어진 가운데 오는 8월에는 삼성디스플레이에서 빌린 22조원 대출의 만기가 돌아온다. 최근 반도체 지원 성과가 필요한 산업은행에서 처음 대출을 일으킨 것도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4월 삼성전자는 한국산업은행에서 2조원을 대출받았다. 해당 대출은 산업은행이 연초 출시한 반도체 설비투자지원 특별 프로그램 일환으로 올해 예정된 운용규모 4조2500억원 중 절반가량을 삼성전자가 받아 간 셈이다. 대기업도 0.8~1%포인트 우대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는 만큼 삼성전자에는 2%대 초반 금리가 적용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가 굳이 산업은행 대출을 받아야 하느냐는 시각이 많은데, 투자업계에선 삼성전자의 별도기준 유동성이 크게 줄어든 점을 주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원래 별도로 현금과 단기금융상품을 30조원 이상 보유해왔다. 한해 매출액이 300조원을 넘기는 만큼 세금을 내고 글로벌 공급망을 굴리는 등 단기에 필요한 운영자금 역시 막대하기 때문이다. 통상 법인세를 납부하고 설비투자가 시작되는 연초면 단기금융상품을 5조원 안팎 현금화하는 식으로 회기를 시작해왔는데, 3년 전부터 이런 기조가 깨지기 시작했다. 메모리 외에 파운드리(비메모리 위탁생산)까지 투자를 늘린 때에 반도체 업황이 꺾이면서 당장 꺼내 쓸 수 있는 현금성자산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연결기준으로는 현금이나 단기금융상품 합쳐서 110조원 가까이를 쌓아두고 있지만 실질 유동성을 보려면 계열 자회사나 해외법인에 쌓아둔 자금은 빼고 봐야 한다"라며 "2년 전 별도기준 현금성 자산이 10조원까지 줄어들면서 삼성디스플레이에서 대출을 받았는데, 이후로도 운영자금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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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지난 1분기말 삼성전자의 별도기준 현금성 자산은 약 4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이 기간 유동부채가 유동자산을 3400억원가량 초과하며 운전자본은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현금부자 삼성전자가 단기적으로 쓸 수 있는 자산보다 갚아야 할 부채가 더 많은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얘기다. 20여년 동안 무차입 경영 기조를 유지해온 전적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상황으로 풀이된다. 

      2년 전 삼성디스플레이에서 빌린 22조원의 만기가 코앞으로 다가온 영향이 크다는 평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불황이 본격화한 2023년 초 자회사 삼성디스플레이에서 22조원을 차입했다. 만기가 오는 8월 16일이라 올 들어 유동부채로 잡히기 시작한 데다 지난 수년 매입채무나 단기차입금도 늘어나면서 운영자금에 여유가 사라졌다는 얘기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그동안 대폭 늘린 설비투자(CAPEX)에서 언제, 얼마나 현금흐름이 발생할지 점치기 어렵다. 파운드리는 당분간 분기마다 조 단위 적자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라며 "언제든지 차입을 늘려도 상관없을 만큼 재무여력이 탄탄하지만 무차입 기조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고 범용 메모리 업황이 언제 정상화할지도 아직은 불확실한 단계"라고 설명했다. 

      산업은행 역시 반도체 지원 성과가 필요한 시점으로 꼽힌다. 당초 산업은행의 반도체 특별대출 프로그램 자체는 지난 정부 시절인 작년에 마련된 상품이지만 SK하이닉스와 달리 삼성전자는 이를 이용하지 않았다. 2월 들어 최상목 전 대통령 권한대행 겸 경제부총리가 산업은행을 포함한 정책금융기관에 조기 자금 집행을 독려했지만 삼성전자는 4월 들어 대출을 신청했고 해당 사실은 지난달 28일 알려졌다. 4일 임기를 시작한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제1호 공약으로 '반도체 산업 지원'을 내걸었던 만큼 첫 경제일정으로 SK하이닉스를 찾았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새 정부 업무 보고도 앞두고 있고 정책금융기관들도 관련 성과를 드러내야 하는 시기"라며 "삼성전자 역시 경기권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등 공약에 동참하려면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라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