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사업만 보면 역전 평가도…점유율 이어 몸값까지
업황 정상화하면 기댈 곳은 결국 삼성전자 공급력이지만
업황 논리 달라진 때에 여전히 점치기 어려운 정상화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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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주가가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시가총액 212조원을 돌파했다. 국내 주식시장에 훈풍이 분 덕도 있지만 여러 불확실성에도 엔비디아를 위시한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이 고성장세를 이어가며 SK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 리더십을 굳혀가는 과정으로 풀이된다. D램 왕좌를 빼앗긴 삼성전자와의 몸값 격차도 최저 수준으로 좁혀졌다. 이를 두고 여러 해석이 오르내린다.
SK하이닉스 주가는 30일 29만2000원까지 오르며 종가 기준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미국 관세 문제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고 대(對)중국 수출규제 타격이 우려되고 있지만 엔비디아가 계속해서 기대치 이상 실적을 거두며 자연스럽게 SK하이닉스 실적에도 기대감이 유입되는 모양새다. 내년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물량까지 이미 선점한 상황이라 한동안 성장세에 변동이 없을 것으로 분석된다.
같은 날 삼성전자 주가는 전일보다 1.64% 하락한 5만9800원에 마감했다. 6월 들어 6만원대에 복귀하는 등 주가가 오르긴 했으나 추세적 상승세로 보기는 어렵다는 목소리가 많다. 연간으로 보면 작년 연말 5만원 선이 깨진 뒤 보합세가 길어지며 보통주 기준 시총은 350조원 부근에 머물러 있다. 자연히 SK하이닉스와의 몸값 격차도 계속 줄어든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 시총은 SK하이닉스의 7배에 달했는데, 올해 초 2배 수준으로 줄어든 뒤 최근에는 1.8배까지 좁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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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 몸값의 변화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순수 반도체 기업이 아닌 만큼 분석하기에 따라 실제 글로벌 1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의 순위가 뒤바뀐 상황으로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분석가마다 다르지만 통상 삼성전자 몸값에서 반도체 사업 비중을 약 40~60% 정도로 반영하는 편"이라며 "이미 일부 보고서에서는 SoTP(Sum-of-the-Parts) 기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가치가 200조 아래로 떨어졌다. 이론상이긴 하지만 SK하이닉스가 몸값에서도 메모리 반도체 대장주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가 올 들어 D램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한 만큼 당연한 수순이란 반응도 나온다. 엔비디아 HBM 물량을 중심으로 삼성전자의 수익성과 점유율을 순차로 앞질렀으니 몸값에서도 순위가 뒤바뀔 수밖에 없다는 식이다. 증권가는 이미 SK하이닉스의 올해 연간 실적이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도 하다.
일시적 현상일 뿐, 범용 메모리 업황이 꿈틀대고 있어 양사 몸값 격차가 계속 좁혀지긴 어려울 거란 시각도 있다. 지난 수년 엔비디아 가속기(GPU) 중심 서버 투자가 집중되며 공정을 함께하는 SK하이닉스, 대만 TSMC만 돈을 버는 업황이 지속됐다. 일반 서버나 스마트폰, PC 등 기존 범용 반도체 응용처 수요가 살아나면 결국 삼성전자의 시간이 올 것이란 얘기다. 원래도 생산능력이 압도적이었던 데다, 경쟁사 대비 절대 투자액을 줄인 적도 없는 만큼 시장이 살아나면 결국 삼성전자 공급 능력에 기대야만 하기 때문이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D램이나 낸드도 공정 전환 난이도나 비용 구조가 치솟고 있어서 웨이퍼 캐파(Capacity)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라며 "빅테크들의 전방 AI 투자가 언젠가는 범용 메모리 수요 폭증으로 이어질텐데, 해당 시점이 오면 시장은 절대적으로 캐파가 큰 삼성전자에 공급을 기대야 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은 물론 삼성전자까지 메모리 3사는 작년 이후 실적 발표회에서 당분간 공급이 늘어나기 어렵다는 점을 계속 강조해왔다. 보유 캐파와 추가 설비투자(CAPEX) 상당수를 수익성이 좋은 HBM 중심으로 배정하면서 공급량 증가가 제한되고 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메모리 산업이 과거와 같은 경쟁 구도로 돌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일반 서버를 비롯한 기존 범용 메모리 반도체 응용처에서 확실한 AI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신호도 미약하고, 그런 수요가 과거 데이터센터 붐 시절과 같은 공급부족을 만들어낼지도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HBM에만 수요가 몰리고 범용 업황이 지지부진한 상태가 길어지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체급 역전 상황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외국계 증권사 한 관계자는 "HBM 등 고부가 계약은 이미 내년 물량까지 마무리된 분위기이고, 최근 애플의 AI 스마트폰 대응에 시장 실망감이 커지면서 범용 업황도 아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라며 "HBM 때문에 캐파가 잠식되고 업황 사이클이 전과 달라진 것은 맞는데, 단순 수급 논리로 삼성전자가 과거 수준의 존재감을 되찾을 거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시점"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