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특례상장 컨설팅 문의 급증…업계 "상반기 대비 수요 두세 배 증가"
상반기 예심 신청 건수 예년 대비 감소…"심사 보수화에 통과 쉽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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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상장 문턱이 낮아질 거란 기대감이 커지며 인공지능(AI)을 위시한 벤처기업들의 기술심사 신청이 크게 늘고 있다. 거래소 역시 증권사의 상장 주관 현황을 점검하며 상장을 독려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상장 관련 정책이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기대감이 현실화하려면 시간이 훨씬 많이 필요할 거란 우려도 나온다. 심사업계에선 기술평가 기준을 여전히 엄격한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는 까닭이다.
13일 복수의 상장 컨설팅 업체에 따르면, 올해 6월 이후 AI 테마를 내세우며 상장을 타진하는 기업들의 컨설팅 수요가 상반기 대비 2~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존에 기술특례상장과 직접 연관이 없던 제조업, 서비스업 등 일반 업종까지 'AI 기술 보유'를 앞세워 상장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상반기에는 기술특례 관련 문의가 거의 없었지만, 지난달부터 분위기가 바뀌면서 AI 기업을 표방하는 문의가 급증했다"며 "문제는 실질적인 기술 기반보다는 인공지능 개념을 부가적으로 적용해 기술기업처럼 포장하려는 사례가 많아, 컨설팅 과정에서도 선별이 쉽지 않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실제 사례도 있다. 한 제조업체는 공정 라인에 AI 기반 데이터 처리 알고리즘을 일부 도입한 것을 근거로 기술특례 컨설팅을 의뢰했다. 또 상조 서비스 업체는 'AI 기반 수요 예측 알고리즘'을 적용했다는 이유로 특례상장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이 'AI' 타이틀을 내세워 상장을 시도하는 배경에는 정부의 정책 드라이브와 증시 회복세가 결합된 영향이 크다. 정책 기대감에 힘입은 테마 장세와 함께, 시장 밸류에이션에 대한 기대도 상장 추진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벤처캐피탈(VC) 업계의 한 실무자는 "정부의 AI 산업 육성과 증시 반등 흐름이 맞물리면서, 그간 주춤했던 기술특례상장이 다시 주목받는 분위기"라며 "자금 조달뿐 아니라 밸류에이션 기대치 자체가 높아질 수 있어, 시장 접근 수단으로 보는 시각도 여전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술평가기관과 거래소의 반응은 다르다. 시장 분위기와 달리 기술특례상장 평가 문턱은 여전히 높고, 기술력과 시장성을 고루 갖춘 '내실 있는 기술기업'이 아니면 통과가 쉽지 않다는 게 공통된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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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수치도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한다. 최근 3년간 기술특례상장 신청 기업 수는 2023년과 2024년 각각 52개소로 유사한 수준을 유지했으나, 2025년 상반기에는 23개소에 그쳤다. 연간 기준 절반이 지난 시점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신청 건수 자체가 감소한 셈이다.
같은 기간 실제 상장에 성공한 기업 수도 2023년 35개소, 2024년 42개소에서 2025년 현재까지는 15개소에 불과하다. 거래소의 심사 기조가 한층 보수적으로 전환됐다는 평가에 힘이 실린다.
올해 상반기에만 노벨티노빌리티, 레드엔비아, 엠틱스바이오 등 바이오 기업뿐 아니라, AI 솔루션 기업 에이모, 사물인터넷 기반 메틀로랩 등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이 상장 예비심사를 자진 철회했다. 이달 초에는 탄소포집·활용 기술을 보유한 빅텍스가 기술특례상장을 추진하다 철회했다.
통상적으로 예비심사를 청구한 기업은 약 45영업일(약 2개월) 내에 거래소로부터 결과를 통보받는다. 이 기간이 지나도록 회신이 없을 경우, 기업 측은 이를 '사실상 부정적 검토'로 받아들이고 자진 철회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보수적 분위기는 기술성평가 단계에서도 확인된다. 피노바이오와 카나프테라퓨틱스는 과거 기술평가를 통과한 이력이 있었지만, 올해 재평가에서는 더 낮은 등급을 받아 상장을 추진하지 못했다. 업계 내부에선 연 매출 100억원 미만의 기술기업은 기술평가 통과 가능성이 낮다는 인식이 공공연하게 퍼진 상황이다.
한 기술평가기관 관계자는 “최근 전반적인 기술력 수준이 높아지면서, 단순히 AI 알고리즘을 도입했다고 해서 기술평가를 통과하긴 어렵다”며 “기술력과 시장성 두 요소 모두에서 객관적인 검증이 필요한데, 증시가 반등했다고 이를 기준 없이 밀어붙이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증권업계도 신중한 시각이다. 한 증권사 IPO 담당자는 "최근 들어 AI를 테마로 기술특례상장을 추진하는 기업들이 늘었지만, 실제 심사 통과 가능성은 여전히 낮은 편"이라며 "시장 테마에 편승한 기업이 아닌, 실질적인 기술력과 확장성을 갖춘 기업 중심의 선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