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딜 안 봐요"…상법 개정에 PEF 공개매수·교환 전략 제동
입력 2025.08.20 07:00
    주주충실 의무 강화…상장사 딜 검토 중단
    판례·해석 부재 속 '첫 타자' 회피 기류 확산
    포괄적 주식교환 위축…자본시장 전반 영향
    법적 불확실성에 M&A 시장 위축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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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사모펀드(PEF) 업계에서 상장사 인수합병(M&A) 딜 검토를 사실상 중단하는 기류가 확산하고 있다. 지난달 공포된 상법 개정안이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크게 강화하면서, 그동안 관행처럼 활용돼 온 '공개매수 후 포괄적 주식교환' 방식이 법적 리스크에 직면한 탓이다.

      이 같은 제도적 변화가 재무적투자자(FI)의 상장사 인수 전략 전반을 뒤흔들 수 있다는 평가다. 아직 판례가 쌓이지 않은 탓에 법조계에서도 '포괄적 주식교환'의 위법성과 관련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지만, PEF들 사이에서는 '첫 타자'가 되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이사가 회사뿐 아니라 모든 주주에 대해 충실하게 직무를 수행하고, 총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할 의무를 명시했다. 과거에도 유사한 취지의 의무는 있었지만, 이번 개정으로 그 범위와 해석이 보다 구체화되고 강화됐다는 평가다. 

      특히 소액주주 권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규정이 정비되면서, 대주주와의 거래에서 소액주주가 불리한 조건을 강제당하는 구조는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그동안 PEF 업계는 상장사 인수 시, 먼저 공개매수를 통해 80~85% 이상의 지분을 확보한 뒤, 잔여 지분은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해 강제 매수하는 전략을 활용해왔다. 하지만 이번 개정으로 주식교환 절차가 소액주주의 의사에 반해 진행될 경우, 충실 의무 위반으로 형사책임까지 물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업계가 특히 부담을 느끼는 대목은 해석의 불확실성이다. 자본시장법과 달리 상법은 민상사 일반법이라 금융당국의 공식 유권해석을 기대하기 어렵고, 최종 판단은 법원 판례에 의해 쌓일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첫 타자'가 돼 소송·수사에 휘말리는 상황을 피하려는 보수적 태도가 확산하고 있다. 

      개정 상법 하에서 포괄적 주식교환을 실행했다가 소송이나 수사로 이어질 경우, 그 사례가 선례로 남아 이후 거래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포괄적 주식교환은 소수지분을 보유한 주주가 자신의 의사에 반해 주식을 강제 매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에, 자칫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규정을 위배할 가능성이 있다.

      한 PEF 운용사 관계자는 "지금은 새로운 구조를 시도하기보다, 기존 상장사 딜 자체를 미루거나 대체 구조를 찾는 게 업계 공통된 분위기"라고 전했다.

      실제로 현재 대형 로펌들에는 PEF들로부터 관련 문의가 빗발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법조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이사의 충실 의무 위반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의미하는지, 법원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는 해석이 엇갈릴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피부 미용의료기기 기업 비올의 경영권 인수를 추진했던 VIG파트너스는 상장폐지를 위한 지분 공개매수 과정에서 상당히 고심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 공개매수 후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해 상장폐지를 하려고 했지만, 개정 상법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장내매수를 통해 상장폐지에 필요한 95%의 지분을 확보했다.

      상법 개정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히 포괄적 주식교환 방식의 축소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유상증자, 제3자 배정, 전환사채(CB) 발행 등 주식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자본거래에서 소액주주 보호 원칙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서는 이번 상법 개정으로 M&A 시장이 위축될 것으로 우려하는 분위기다. 불명확한 기준과 과도한 형사책임 가능성이 투자자의 위험회피 성향을 자극해 거래 자체를 줄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당분간은 법적 해석이 축적되지 않는 한, PEF들의 보수적 행보와 상장사 딜 회피 흐름은 이어질 전망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PEF가 상장사 딜에서 빠지면 결국 전략적투자자(SI)만 남는데, 이는 시장 경쟁을 줄이고 소액주주에게도 장기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