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 부실 책임을 왜 우리까지"…전통 IB, 동일 규제에 '불만'
퇴사 땐 잔여 성과급 '0원'…"차라리 다른 직무로 간다"
WM 등 리테일 예외…부서 간 보상 격차 확대에 박탈감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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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IB 부서에서 이연성과급으로 인한 '역차별'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2분기 중 지급된 성과급 명세서를 받아든 전통 IB 부문(주식ㆍ채권 발행부서) 뱅커들이 불만을 터뜨리며 잇따라 이직에 나선 것이다. 부동산PF 사고 이후 '책임성 강화' 목적으로 도입된 이연성과급제가, 사후 리스크가 낮은 전통 IB 부문까지 전면 확대 적용된 여파다.
재직 중에도 이연 지급 탓에 성과급을 온전히 받지 못하고, 이직 시 내규에 따라 잔여 인센티브를 전혀 지급받지 못하는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전통 IB 부문 인력 유출과 보상 불균형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증권가에 따르면 최근 한 중소형 증권사 인수금융 부서 차장은 잔여 인센티브를 포기하고 사모펀드(PEF)로 이직했다. 한 대형사 ECM 부서 차장도 남은 인센티브를 포기하며 벤처캐피탈(VC)로 옮겼다. 두 사람 모두 이연 지급 등 IB 실무자에 대한 급여 제한을 주요 이직 사유로 꼽았다.
중간 관리자급뿐만 아니라 주니어급 실무자들의 불만도 크다. 한 중형 증권사 과장급 실무자는 최근 벤처캐피탈의 심사역 경력 채용에 응시했다. 지난해 상장 건수가 줄어들며 성과급이 반 토막 났는데, 이마저도 분산해서 수령해야 한다는 점에 실망한 까닭이다.
다른 중소형사 ECM 부문 주니어는 1000만원 수준의 인센티브도 3년에 걸쳐 나눠 받게 됐다며 "동기들 사이에서 '이럴 거면 아예 다른 직무로 가겠다'는 말이 나온다"고 전했다. 특히 저연차 시기 이직이 잦은 업종 특성상, 이연된 성과급은 사실상 '떼인 돈'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다른 한 증권사 IPO 실무자는 "주니어들은 업무 강도가 높은 데 비해 기본급이 많지 않다"며 "그런데 성과급까지 쪼개 받다 보니 백오피스(관리직)보다도 보수가 적은 경우가 종종 있어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업무 강도 대비 낮은 보수에 대한 불만이 실제 퇴사로 이어지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이연성과급제는 성과급의 40% 이상을 3년 이상 나눠 지급하는 구조다. 각 증권사마다 지급 비율과 기간은 다르지만, 대체로 3~4년에 걸쳐 지급한다. 지난해부터 금융투자업무담당자로 범위가 넓어지고 1억원 미만 성과급에도 적용이 권고되면서 국내 주요 증권사 기준 이연대상 인원은 전년 대비 최대 4배 가까이 증가했다.
각 증권사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이연 지급에 해당하는 인원은 NH투자증권이 163명에서 543명, 삼성증권이 82명에서 249명, 키움증권이 136명에서 174명으로 늘었다.
문제는 제도의 본래 취지가 부동산PF처럼 '하이리스크·하이리턴' 구조의 단기 성과 추구를 지양하는 데 있는데도 ECM·DCM 등 사후 리스크가 낮은 부문까지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ECM은 증자나 상장 등 절차 종료 후 수수료를 받는 구조로 이후 손실 가능성이 낮고, DCM 역시 발행 주관 이후 리스크가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이연 지급이 똑같이 적용되면서 형평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IB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부서 간 ‘상대적 박탈감’이 깊어지고 있다. 부동산 PF 부문 일부는 과거 최대 수십억원대 성과급을 받았지만, 부실 사태 이후에도 기존 계약에 따라 일부 금액을 수령했다.
반면 전통 IB는 PF 부실 책임과 무관한데도 동일한 규제를 적용받아 성과급 규모가 줄고 이연액이 늘었다. 한 대형사 IB 관계자는 "부동산 PF 부문이 만든 문제를 왜 우리까지 감당해야 하는지 납득이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증권사들이 주요 먹거리로 삼으며 실적을 빠르게 늘린 자산관리(WM) 중심의 리테일 부문 역시 IB 실무자들에게 '역차별'로 비친다. 리테일 부서는 이연 지급 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인센티브를 일시 지급받는다. 실적 개선으로 억대 인센티브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IB와 달리 이연 적용이 없어 부서·직무 간 차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성과급 지급 기준은 법률에 명문화돼 있지 않기 때문에, 각 회사의 취업규칙·근로계약서·보수규정 등 내부 규정에 따라 정해진다. 규정에 '퇴직 시 잔여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명확히 기재돼 있다면, 이를 지급하지 않더라도 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
실제로 일부 대형 증권사는 퇴사 직전 '잔여 인센티브 미지급' 서약서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적으로 이를 강제해 받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IB 실무자가 자진 퇴사할 경우 남은 인센티브를 챙길 수 있는 길은 사실상 막혀 있다.
금융당국은 제도의 목적이 특정 부서가 아닌 업권 전반의 '단기 성과주의' 완화에 있다고 설명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증권업권은 그동안 공격적·단기적 영업 성향이 강해 부동산 PF 부실 사고 등 부작용이 반복돼 왔다"며 "당국 권고를 적용받는 일부 실무자들이 불만을 가질 수 있지만, 제도가 생긴 배경과 취지를 고려해달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연성과급 전면 확대가 장기적으로 IB 인력 이탈을 촉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최근 전통 IB 실무자들이 PE, VC 등 타 금융업종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으며, 이연 적용이 적거나 없는 분야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는 분석이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특히 커리어 초·중반의 주니어 실무자들은 이연성과급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직 제약 요소로 작용할 것을 우려해, 아예 그 전에 이직을 결정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