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라이프와 CSM 격차도 좁혀져...3위 수성 어려워져
이 와중 인도네시아 은행, 미국 증권사에 수천억 투자
김동원 사장 계열분리 포석? 주주들은 실망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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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생명의 상반기 순이익이 급감하면서 생명보험업계 '빅3' 구도가 재편될 조짐을 보이고 다. 보험·투자손익이 모두 급감하면서 컨센서스를 한참 하회하는 성적을 보였다. 주요 계열사인 한화손해보험 등의 연결 효과를 제외하면 신한·KB라이프보다 부진한 실적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배당을 기대하기 어려운 가운데, 해외 확장에 수천억원을 쏟아부으며 내실보다는 확장에 무게를 둔 행보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 의문이 제기된다. 결국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의 계열분리를 위한 포석이 아니겠느냐는 시각이다.
한화생명의 올 상반기 연결 당기순이익은 461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0% 감소했다. 자회사를 제외한 별도기준 순이익은 1797억원으로 같은 기간 48%(1681억원) 감소한 수치다. 보험손익은 36% 감소한 1759억원을 기록했고, 투자손익은 405억원으로 75% 줄었다.
시장에선 한화생명의 실적에 대해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실적 발표 다음 영업일이었던 14일 한화생명 주가는 전일 대비 6.3% 하락한 3125원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불과 한 달 전 고점 대비 28% 급락하며, 지난해 8월과 비슷한 수준으로 주가가 되돌아갔다.
상반기 실적이 부진했던 건 부채할인율 강화 등 제도적 요인에 따라 손실부담계약이 확대된 영향이다. 상반기 손실부담계약은 마이너스 (-)1600억원 인식됐다. 예실차에서도 670억원의 손실을 봤다. 건강보험 중심의 판매를 지속하면서 사고보험금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분석이다.
투자 부문에선 대체투자 손익이 부진했고, 변액보험 관련 헤지 손익 부담이 반영되며 손익이 크게 줄었다. 지급여력(킥스,K-ICS) 비율은 161%로 전분기 대비 7%포인트 상승했다. 지난 6월 10억 달러(약 1조365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함에 따라 10%포인트의 개선 효과를 본 것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개선세는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연결 효과를 제외한 별도 실적으로 따지면, 생보업계 '빅3' 지위도 내줬다. 상반기 생보사 별도기준 순이익은 삼성생명 1조2004억원, 신한라이프 3443억원, KB라이프 1891억원 순으로 높았으며, 한화생명은 1797억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비상장사로 아직 상반기 실적을 공개하지 않은 교보생명이 이미 1분기에만 별도 3152억원의 순익을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빅5'에 간신히 명함만 걸친 수준으로 분석된다.
생보업계는 삼성·교보·한화생명의 3개사가 오랫동안 상위권을 차지해왔다. 지난해까지만해도 연간 별도 기준 순이익이 삼성생명 1조4869억원, 한화생명 7205억원, 교보생명 6987억원 등이었다. 신한라이프는 5336억원으로 빅3에는 못 미치는 성적을 보였다. 신한라이프는 올 상반기 영업에 드라이브를 걸며 전년동기 대비 순익이 30%가량 급등했는데, 주로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의 '파이'를 빼앗아왔을 거라는 게 보험업계의 관전평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한화생명 순이익이 (별도 기준) 2000억원도 나오지 않았다는 게 충격"이라며 "일회성 비용이 컸기 때문에 반짝 역전일 수도 있겠지만, 신한라이프 출범 이후 빅3가 깨질 수 있다는 예측이 처음으로 힘을 얻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빅3'에서 밀려난 한화생명의 약세는 계속될까. 아직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생보사는 규모의 경제로 돌아가는 업종이라 보유 자산을 무시할 수 없는 까닭이다. 부채 듀레이션을 맞추면서 수익성까지 제고하는 건 풍부한 자산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로 통한다.
지난해 말 기준 생보사 자산 순위는 삼성생명 275조원, 교보생명 122조원, 한화생명 122조원, 신한라이프 59조원, KB라이프 33조원 순이다. 한화생명이 아직 '도전자들'에 비해 두 배 이상의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미래수익 지표인 보험계약마진(CSM) 차이를 줄여가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한화생명이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란 분석도 제기한다. 상반기 한화생명의 보유계약 CSM은 8조8330억원, 신한라이프는 7조2646억원이다. 작년 말 기준으론 양사의 CSM 차이가 2조381억원이었지만, 상반기엔 1조5684억원으로 약 4700억원 줄었다.
한화생명에 대한 증권가의 시각도 이미 보수적으로 변한 상황이다. 강승건 KB증권 연구원은 "보험사 가치 성장을 위해서는 신계약 뿐만 아니라 보유계약 관리가 중요하며 수익성 확보가 동반되어야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며 "하반기 회사의 노력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설용진 SK증권 연구원도 "주요 지표 및 제도 관련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는 만큼 보수적 관점의 접근을 추천한다"고 짚었다.
본업이 흔들리며 수익성은 악화일로인데, 회사가 글로벌 중심 확장 정책을 지속하고 있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화생명은 지난 6월 3100억원을 투자한 인도네시아 노부은행 지분 40% 인수작업을 마무리한 데 이어, 지난달 말 미국 증권사 벨로시티 인수를 완료했다. 한화생명은 벨로시티 지분 75%를 2500억여원에 인수한 것으로 파악된다.
노부은행은 자산 3조원 규모의 인도네시아 30위권 은행으로, 지난해 기준 연간 순이익 규모는 200억원대로 확인된다. 그룹 금융업 비즈니스 포트폴리오상 이익 기여도는 크지 않다. 수익성보단 한화생명이 인도네시아 현지에 보험사, 증권사에 이어 은행까지 보유하게 됨으로써 소규모 '은행지주회사'를 설립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가 가장 크다는 분석이 많다.
벨로시티는 청산결제 기능에 특화된 소형 증권사로, 리테일ㆍ자산관리ㆍ기업금융 기능은 거의 갖추지 않고 있다. 한화생명은 "세계 최대 금융시장인 미국에서 직접 금융 상품을 조달하고 판매할 수 있는 중요한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설명인데, 한화생명의 자산운용 중 외화증권의 비중은 14%에 지나지 않는다.
킥스 비율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주주들에게 배당도 못하고 있는데, 수천억원을 들여 해외에 지금 투자를 감행할 필요성이 있었냐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때문에 보험업계 일각에서는 김동원 사장을 중심으로 한 금융업 계열분리를 감안해 규모 확장에 먼저 나선 것 아니겠느냐는 분석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여승주 부회장이 그룹으로 돌아가며 한화생명도 각자대표체제로 회귀했는데, 이전만큼 최고경영자의 강력한 리더십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며 "새 대표이사들에겐 언더라이팅 능력과 운용 능력을 함께 강화시키는 동시에, 해외 투자부문까지 관리해야 하는 중책이 맡겨졌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화생명 관계자는 "해외 부문은 올 상반기 350억원의 순익을 내며 실적에 기여했고, 중장기적인 전략으로 확장을 추진 중인 내용"이라며 "계열분리는 현재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